시편 88장 흑암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표제
예배 지도자를 위한 노래. 고라 자손의 시. 에스라히(Ezrahite · ㉸ 에즈라히)인 헤만(Heman)의 마스킬.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를 위한 가락. 시편 150편 중 가장 어두운 시편. 어떤 위안도, 어떤 반전도 없이 끝난다. 응답 없는 탄원이 그 자체로 거룩한 본문이 되었다.
밤에 부르짖었나이다
1 야훼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낮에는 부르짖고 밤에는 주 앞에 있습니다.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내 영혼이 고난으로 가득하고 내 목숨이 스올에 가까웠나이다.
4 나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들과 함께 여겨졌고 힘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5 죽은 자들 가운데 자유롭게 내버려진 자 같습니다. 무덤에 누운 자들 — 주께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는 자들,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들처럼.
주께서 나를 내려놓으셨습니다
6 주께서 나를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어두운 곳에 깊음 속에 두셨습니다.
7 주의 진노가 나를 무겁게 눌렀고 주의 파도가 나를 모두 덮쳤습니다.
8 주께서 나의 아는 자들을 내게서 멀리 하셨습니다. 주께서 나를 그들에게 혐오스럽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갇혀 나갈 수 없습니다.
9 고난으로 내 눈이 흐릿해졌습니다. 야훼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를 향하여 두 손을 폈습니다.
죽은 자들이 주를 찬양하겠습니까
10 주께서 죽은 자들을 위해 기이한 일을 행하시겠습니까? 떠난 자들이 일어나 주를 찬양하겠습니까?
11 무덤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포되겠습니까? 멸망한 곳에서 주의 성실하심이 선포되겠습니까?
12 흑암 속에서 주의 기이한 일들이 알려지겠습니까?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가 알려지겠습니까?
10-12절은 수사학적 질문들이다. 대답은 모두 “아니오”다. 이것은 반어법적 탄원이다. “그러니 지금 살아있는 동안 도우소서.” 그러나 주목할 것은 — 그 탄원 이후 이 시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께서 응답하신다는 기록이 없다. 반전이 없다.
아침에 다시 부르짖었나이다
13 그러나 야훼여, 나는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렀습니다.
14 야훼여, 어찌하여 내 영혼을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외면하십니까?
15 나는 어릴 때부터 고난 받았고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주의 두려운 것들을 당하여 망연자실했습니다.
16 주의 진노가 내 위에 지나갔습니다. 주의 두려운 일들이 나를 끊어버렸습니다.
17 그것들이 물처럼 종일 나를 에워쌌습니다. 모두 함께 나를 둘러쌌습니다.
18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하셨습니다. 나의 아는 자들은 흑암 속에 있습니다.
시편 88편은 여기서 끝난다. “흑암”이 마지막 단어다. 위안도, 신뢰의 확언도, 찬양으로의 전환도 없다. 이것이 이 시편의 위대함이다 — 신앙이 항상 해결책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정직하게 말한다. 어떤 고난은 밤이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이 이 시편이 전하는 유일한 신학이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자체가 믿음의 한 형태다. 응답이 없어도.
이 시편은 신앙 공동체가 설명 없는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우리도 이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욥기와 마찬가지로, 쉬운 답을 거부하는 정직성이 이 시를 살아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