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장 영원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시간 이전의 시간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요한복음의 첫 줄은 창세기의 첫 줄을 의도적으로 끌어온다. 창세기 1:1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면, 요한 1:1은 그 창조 이전의 자리에 한 분을 세운다. ‘말씀’으로 옮겨진 그리스어는 로고스(λόγος · Logos)다.
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이토스 이래로 헬라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우주를 관통하는 이성·질서·법칙으로 보았다. 스토아 학파는 로고스를 신적 이성과 동일시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철학자 필로(Philo of Alexandria, 기원전 20년경~기원후 50년경)는 『창조론』과 『알레고리적 주석』에서 로고스를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재자, 곧 하나님의 첫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렸다. 요한복음은 같은 단어를 빌려와 한 사람에게 적용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 필로의 로고스가 중재자였다면, 요한의 로고스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것 가운데 그 없이 만들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어둠이 그것을 이기지 못했다.
“이기지 못했다”로 옮겨진 그리스어 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지닌다 — 압도하다, 그리고 이해하다. 어둠이 빛을 삼키지도 못했고, 알아보지도 못했다. 요한이 단어 하나로 두 의미를 동시에 울리는 방식이다.
빛에 대해 증언하러 온 사람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John)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에 대해 증언하려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고.
8 그 자신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이었다.
9 참 빛이 있었다.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
서론 한가운데에 세례 요한이 끼어든다. 학자 레이먼드 브라운은 『요한복음 주석』(앵커 바이블, 1966)에서 이 삽입을 요한 공동체 안에서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 자체로 떠받들던 일파에 대한 교정으로 본다. “그는 빛이 아니었다”는 단언이 두 번 반복된다. 본문은 친절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단지 명확히 한다.
자기 백성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
그런데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다.
자기 백성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받아들인 사람들, 그 이름을 믿은 사람들 —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통으로 난 것도 아니고, 육체의 욕망으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의 뜻으로 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나게 하신 것이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14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사셨다’로 옮긴 그리스어 에스케노센(ἐσκήνωσεν)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장막을 치셨다”이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광야의 회막 위에 머물던 그 장면을 동사 한 개로 호출한다. 영원한 로고스가 천막 한 장의 부피로 압축되어 사람들 사이에 천막을 쳤다는 것 — 이 한 문장에서 1천 년의 교리 논쟁이 출발했다.
플라톤주의에서 육체는 영혼이 갇힌 감옥이었다. 영지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 자체를 악으로 보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그 두 흐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선언이다. 2세기의 영지주의 도세티즘(Docetism)은 예수가 인간으로 보였을 뿐 실제로 육체를 입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35–108)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서신에서 이 흐름에 맞서 요한복음 1:14를 무기로 사용했다.
15 요한이 그에 대해 증언하여 외쳤다.
“내가 말했던 분이 바로 이분이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 계셨다.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16 우리 모두가 그의 충만함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Moses)를 통해 주어졌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통해 왔다.
18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 품에 계신 독생자 — 그분이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
서론 18절 동안 예수의 이름은 단 한 번 등장한다. 17절이다. 그 전까지는 ‘말씀,’ ‘빛,’ ‘독생자’라는 칭호로만 불린다. 요한은 이름을 마지막에 둠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우주의 처음과 묶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갓난아기가, 그러나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계셨다는 주장 — 이 주장으로 책 전체가 시작된다.
이 장은 요한 1:1-18 한 단락을 풀어쓴 것이다. 마태·마가·누가의 공관복음서에는 이런 선재(先在) 신학이 없다. 마태는 족보로, 누가는 호적령으로, 마가는 곧장 광야의 세례 요한으로 시작한다. 요한만 시간 이전에서 출발한다. 본 통합복음서는 가장 멀리서 카메라를 잡은 요한의 시점으로 첫 장을 열었다.
다음 장 — 한 산골 마을 제사장의 집과, 그 다음에 나사렛의 한 처녀에게 같은 천사가 찾아온다. 두 잉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