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표지

고린도전서 1장 십자가의 어리석음

인사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Paul · ㉸ 바오로)과 형제 소스데네(Sosthenes · ㉸ 소스테네)는,

2 고린도(Corinth · ㉸ 코린토)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또한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주이기도 하고 우리의 주이기도 하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이어주는 지협 위의 도시였다. 동쪽 사로니코스 만과 서쪽 코린트 만, 두 항구를 동시에 쥔 교역의 중심지였다. 아크로코린트 산 위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서 있었고, 고대에 1000명의 신전 매춘부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로마 시대 재건 이후엔 다신교와 극단적 도덕적 자유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바울이 이곳에서 18개월을 머물며 교회를 세웠고(사도행전 18장), 이후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썼다. 기록 시기는 AD 54-55년경으로 추정된다.


감사

4 나는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너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5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서 풍족하게 된 까닭이다.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가운데 견고해진 대로,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으니,

8 주가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9 너희를 부르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


분파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모두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Chloe · ㉸ 클로에)의 집 사람들이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렸다.

12 이것을 내가 말하노니, 너희 각각이 이르되 “나는 바울(Paul)에게,” “나는 아볼로(Apollos · ㉸ 아폴로)에게,” “나는 게바(Cephas · ㉸ 케파)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라 한다는 것이다.

13 그리스도가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Crispus · ㉸ 크리스포)가이오(Gaius)를 제외하고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15 이는 아무도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게 하려 함이다.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Stephanas · ㉸ 스테파나)의 집에도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 다른 아무에게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17 이는 그리스도가 나를 보내신 것이 세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의 지혜로써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 이것은 교사를 추종하는 파벌이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웅변가였고(사도행전 18:24), 게바는 베드로의 아람어 이름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 지도자를 철학 학파의 스승처럼 여겼고, 그 이름을 배지처럼 달았다. 바울의 응수는 단호하다. 십자가는 분파를 허용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어리석음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대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23은 바울 신학 전체의 핵심 명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십자가는 노예와 최하층 범죄자를 처형하는 도구였다. 로마 시민은 법으로 십자가형을 면제받았다. 이것을 구원의 도구로 선포하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는 철학적 추문이자 정치적 위험이었다. 유대인에게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신명기 21:23)였으므로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이었다. 헬라인에게는 신이 인간의 형태로 처형당한다는 것 자체가 철학적으로 무의미했다. 바울은 이 역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부르심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27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셨다.

28 하나님이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셨다.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이 하려 함이라.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고린도 교회는 사회 상류층 중심이 아니었다. 노예, 이방인, 여성, 하층 장인들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요점은 사회학적 관찰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역설적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방식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자랑할 토대가 없는 자들이 모인 것이, 모든 자랑의 근거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