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표지

빌레몬서 1장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

인사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Philemon · ㉸ 필레몬)과,

2 자매 압비아(Apphia)와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Archippus · ㉸ 아르키포)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빌레몬서는 신약에서 가장 짧은 편지다. 25절. 그러나 담겨 있는 것은 가볍지 않다. 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그 관계를 법적 관계에서 형제 관계로 전환하도록 요청하는 편지다.

빌레몬은 골로새(Colossae · ㉸ 콜로사이) 교인으로 추정된다(골 4:9 오네시모 언급). 그의 집에 교회가 모였다. 부유한 신자였으며 바울의 동역자였다.

편지의 수신자가 특이하다. 빌레몬 개인에게 보내면서 압비아·아킵보·집 교회 전체를 함께 언급한다. 사적인 요청을 공동체 앞에서 한다. 빌레몬이 혼자 결정하기 어렵도록 공개적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감사와 칭찬

4 내가 기도할 때에 너를 생각하며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를 향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라.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기를 원하노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4-7절은 빌레몬을 칭찬하는 서두다. 바울은 본론에 앞서 상대방의 덕을 충분히 인정한다. 이 구조는 고대 설득 수사학(rhetoric)의 전형적 기법이다. 상대방이 자신이 칭찬받은 대로 행동하도록 자아상을 먼저 세워준다.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 빌레몬이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관대하게 살아온 사람임을 전제한다. 바울이 요청할 내용이 그가 이미 해왔던 것의 연장이라는 논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오네시모를 위한 간청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네가 마땅히 할 일을 담대히 명할 수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Onesimus)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의 매임 속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가 아닌 자원함으로 되게 하려 함이라.

10절 — 오네시모(Onesimos). 이 이름은 헬라어로 “유익한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11절에서 이 이름을 가지고 워드플레이를 한다.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ἄχρηστον, 아크레스톤)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εὔχρηστον, 에우크레스톤).” ‘유익함(χρηστός, 크레스토스)‘과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의 발음이 당시 유사했다. 이름 오네시모스가 가진 의미대로 이제 진정으로 유익한 자가 되었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다. 도망쳤다. 어떤 경위로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바울이 있는 감옥 근처에서 체포되었다는 추정, 바울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추정 등이 있다. 바울이 그를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했다(“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이제 오네시모는 개종한 신자이며 바울의 “심복”이다.

8-14절 — 바울의 설득 전략이 드러난다. 그는 명령할 수 있다(8절). 그러나 명령하지 않는다(8-9절). 사랑으로 간구한다. 그리고 자신이 오네시모를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빌레몬의 허락 없이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13-14절). 이 연쇄는 빌레몬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여지를 준다. 그러나 그 여지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더 이상 종이 아니라

15 그가 잠시 떠난 것이 어쩌면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16 이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보다 낫게 곧 사랑받는 형제처럼 할 것이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여기거든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이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리라. 네가 이 외에 네 자신 곧 너를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줄을 확신하므로 이것을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하노라.

15절 “잠시 떠난 것이 어쩌면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 바울이 오네시모의 도주를 섭리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우연이 목적이 된다. 노예가 도망쳤다는 것을 법적 사건이 아니라 신학적 사건으로 읽는 것이다.

16절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보다 낫게 곧 사랑받는 형제처럼” — 이것이 편지 전체의 핵심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해방하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보다 낫게, 사랑받는 형제처럼” 대하라고 한다. 형제는 노예가 아니다. 이 요청이 실현된다면, 오네시모는 법적으로는 종일 수 있지만 관계적으로는 이미 종이 아니다.

이 구절이 19세기 미국 노예제 폐지 논쟁에서 양측에 모두 인용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노예 소유자들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돌려보냈다는 것을 사용했다. 폐지론자들은 “형제처럼”이라는 표현이 노예제 자체를 부정한다고 주장했다. 빌레몬서는 노예제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가장 복잡한 성경적 핵심 본문으로 남는다.

18-19절 “내 앞으로 계산하라” —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대신 갚겠다는 보증서다.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가 법적 효력을 강화한다. 이것은 중세의 채무 대리인(surety) 관행과 같다. 그리고 19절 후반이 비틀린다. “네 자신 곧 너를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의 영적 빚이 이미 더 크다는 암시다.

21절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 해방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빌레몬이 스스로 해방까지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한다. 명령하지 않으면서 명령보다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내는 수사의 절정이다.


방문 예고와 인사

22 오직 나를 위하여 숙소도 준비하라. 너희의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바브라(Epaphras · ㉸ 에파프라스)와,

24 나의 동역자들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22절 “숙소도 준비하라” — 바울이 석방될 것을 기대한다. 또는 빌레몬에게 자신이 직접 올 것이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우했는지 바울이 직접 확인하러 온다는 함의가 있다. 부드러운 편지의 마지막에 위치한 조용한 압박이다.

23절 에바브라 — 골로새서 1:7에서 골로새 교회를 세운 인물로 언급된다. 바울과 함께 갇혀 있다. 빌레몬서와 골로새서의 연결 고리다.

24절 마가·아리스다고·데마·누가 — 이 이름들이 골로새서 4:10-14에도 나온다. 빌레몬서와 골로새서가 같은 시기, 같은 상황에서 쓰였다는 증거다. 데마는 여기서 동역자로 등장하지만, 디모데후서 4:10에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자로 나온다. 같은 인물의 다른 시점이다.

빌레몬서는 25절에 불과하지만 신학적으로 풍부하다. 노예제, 용서, 중재, 섭리, 형제 관계, 복음이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가 — 이 모든 주제가 개인 편지 안에 압축되어 있다. 신약 정경에 포함된 이유가 있다. 작은 편지가 큰 질문들을 안고 있다.

오네시모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2세기 안디옥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약 35-108년)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네시모”라는 주교를 언급한다. 같은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도망친 노예가 주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