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표지

출애굽기 1장 새 왕이 일어났다

야곱의 가족

1 야곱(Jacob)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 각자 자기 식구를 데리고 갔다. 이름은 이렇다.

2 르우벤(Reuben), 시므온(Simeon · ㉸ 시메온), 레위(Levi), 유다(Judah).

3 잇사갈(Issachar · ㉸ 이사카르), 스불론(Zebulun · ㉸ 즈불룬), 베냐민(Benjamin · ㉸ 벤야민).

4 단(Dan), 납달리(Naphtali · ㉸ 납탈리), 갓(Gad · ㉸ 가드), 아셀(Asher · ㉸ 아세르).

5 야곱의 자손은 모두 70명. 요셉(Joseph)은 그보다 먼저 이집트에 가 있었다.

6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요셉이 죽었다. 형제들도 다 죽었다. 그 시대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야곱이 일흔 명을 데리고 도착한 그 가족 — 한 세대가 통째로 막을 내렸다.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녀를 낳고 또 낳았다. 점점 강해지고, 점점 많아져, 그 땅이 그들로 가득 찼다.

창세기 1장 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라” — 그 명령이 약속의 땅이 아니라 이방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새 왕이 일어났다

8 그런데 새 왕이 이집트에 일어났다. 요셉을 모르는 왕이었다.

‘모르는’ — 못 들어봤다는 게 아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한 왕조가 다른 왕조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앞 시대의 영광은 통째로 지워진다. 요셉이 세웠던 모든 것 — 일곱 해 풍년의 곡식, 외국인 총리의 위엄 — 한순간에 잊혔다.

역사·고고학 — 이 “새 왕”이 누구냐가 출애굽 연대 가설의 핵심이다. 두 견해가 있다. (1) 신왕국 18왕조 초기, 셈족 외국 왕조였던 힉소스(Hyksos)가 추방된 직후의 토착 왕(아흐모세 1세 ~ 투트모세 1세, BC 16세기 후반). (2) 19왕조 람세스 2세 시대(BC 13세기). 11절의 라암셋 도시 이름이 람세스에서 왔다는 점이 후자의 근거다. 어느 쪽이든 — 셈족이 우대받던 시대가 끝나고 외국인이 위협으로 보이는 시대로 분위기가 바뀐 정황은 발굴로 분명히 확인된다.

9 그가 자기 백성을 모아놓고 말했다.

“봐라.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해졌다.”

10 “우리가 똑똑하게 대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저들이 더 늘어날 거다. 전쟁이 터지면 저들이 우리 적과 손잡고 우리를 칠 거고, 결국 이 땅을 떠나버릴 거다.”

이 한 단락에 모든 비극의 씨가 들어 있다. 새 왕은 이스라엘을 위협이 아니라 이미 적으로 본다. “똑똑하게 대처하자”는 말 아래 — 압제가 시작된다.


노예 노동

11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노동 감독자들을 세웠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히려는 거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파라오(Pharaoh · 개역 성경 표기 ‘바로’)를 위해 곡식 창고 도시 두 곳을 지었다 — 비돔(Pithom · ㉸ 피톰)라암셋(Raamses · ㉸ 라메세스).

비돔과 라암셋 — 둘 다 나일 삼각주 동부에서 발굴된 실재 도시다. 라암셋은 텔 엘딥아(Tell ed-Dab’a) 일대로, 람세스 2세(BC 13세기)가 거대 수도로 재건한 곳. 그전 이름은 힉소스 시대의 아바리스(Avaris). 비돔은 텔 엘레티베(Tell el-Retabeh)로 추정된다. 두 곳 모두 외국인 노동력 — 셈족 양식 가옥과 외국인 묘지 — 의 흔적이 발굴됐다.

12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 이스라엘은 더 번성했다. 더 퍼졌다.

이집트인들은 무서워졌다.

압제가 번식을 막지 못했다. 도리어 반대였다. 두려움이 압제를 낳고, 압제가 다시 두려움을 키우는 — 그 악순환의 첫 회전이다.

13 이집트인들은 일을 더 가혹하게 시켰다.

14 진흙 반죽, 벽돌 굽기, 들에서 하는 온갖 일. 그들의 삶을 쓴맛으로 가득 채웠다.

룩소르 서안의 18왕조 재상 레크미레(Rekhmire) 무덤 벽화에는 이 노역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 외국인 노동자가 진흙을 밟고 거푸집에 부어 벽돌을 찍는 장면, 그 위에서 채찍을 든 감독관들. 본문의 묘사는 그 시대 일상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두 산파

15 이집트 왕이 히브리 산파들을 불렀다. 한 명은 십브라(Shiphrah · ㉸ 시프라), 다른 한 명은 부아(Puah · ㉸ 푸아).

16 왕이 명령했다.

“히브리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잘 봐라. 사내아이면 죽여. 딸이면 살려둬도 된다.”

사내아이만 죽이는 정책 — 단순한 잔혹이 아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 이집트 가정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사내아이는 잠재적 군사 위협. 인구를 직접 학살하지 않고 출산 단계에서 끊는 — 잔혹한 합리주의다.

17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왕이 시킨 대로 하지 않았다. 사내아이들을 살렸다.

성경에서 누군가를 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부를 때, 그건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 — 그분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 신앙의 가장 기본을 인정해 주는 칭찬이다. 그 칭호가 성경 전체에서 처음으로 어떤 사람에게 붙는 자리가 — 바로 여기다. 모세보다, 아론보다, 어떤 지도자보다 먼저 — 권력에 가장 취약한 두 산파가 그 칭호를 받았다.

18 왕이 산파들을 다시 불렀다.

“왜 그랬느냐? 왜 사내아이들을 살렸느냐?”

19 산파들이 대답했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 달라요. 너무 강건해서 —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낳아버립니다.”

거짓말이었을까. 절반쯤 사실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 산파들은 권력 앞에서 자기 백성을 지켰다. 왕에게 “너희보다 강하다”고 받아친 것 자체가 작은 저항이었다.

20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잘해주셨다. 백성은 더 번성했고, 더 강해졌다.

21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가정을 세워주셨다.

이름이 본문에 두 번 적혔다(15절, 17절). 무명의 두 산파가 — 그 시대 어떤 파라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정작 그들에게 명령한 파라오는 — 이름조차 적히지 못했다. 본문이 누구를 기억하기로 선택했는지, 그 침묵이 말한다.


나일강

22 그래서 파라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렸다.

“히브리인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는 모두 나일강(Nile)에 던져라. 딸은 살려두어도 된다.”

산파들의 거역으로 한 번 좌절된 정책이 — 이제 나라 전체에 떨어진다. 비밀스러운 살해에서 공공의 강제로. 다음 장, 나일강에 던져지는 것은 한 갓난아기다. 그러나 그 아기는 죽지 않는다. 갈대 상자 안에서 떠내려간다.


다음 장 — 한 레위 가족이 사내아이를 낳는다. 어머니는 석 달 동안 숨긴다.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역청을 발라 아기를 그 안에 누인다. 그리고 강에 띄운다. 파라오의 명령이 떠내려가 — 파라오의 딸 앞에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