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표지

에스라 1장 고레스의 입에서 나온 귀환 명령

페르시아의 첫해

1 페르시아(Persia)고레스(Cyrus · ㉸ 키루스) 원년에, 여호와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그가 자기 나라 방방곡곡에 조서를 내리고 또 공문을 써서 말했다.

고레스가 바빌론을 정복한 해는 BC 539년이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칙령이 내려왔다. 70년 포로 — 예레미야 25:11과 29:10의 예언이다. BC 605년(첫 번째 포로, 다니엘과 왕족)부터 BC 538년까지 계산하면 67년, BC 587년(예루살렘 함락)부터 BC 516년(성전 완공)까지 계산하면 71년이다. 학자마다 기산점이 다르다. 정확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다린다. 그리고 이루어진다.

2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이같이 말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가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다. 그가 내게 명하여 유다(Judah)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3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가 있으면 다 그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다. 예루살렘에 계신 그분에게로 올라갈지어다.

4 이 백성의 남은 자가 어느 곳에 거류하든지 그 곳 사람들이 그를 도와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우라.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게 하라.”

고레스 원통(Cyrus Cylinder) — 1879년 호르무즈 라삼(Hormuzd Rassam)이 이라크 남부 바빌론 유적지에서 발굴한 아카드어 점토 원통이다. 현재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BC 539년경 제작. 비문에는 고레스가 바빌론 신 마르둑의 명령으로 여러 민족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그들의 신상과 신전을 복구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을 특정하지는 않지만, 고레스의 일반 정책 — 피정복민에게 자국의 종교와 귀환을 허용한다 — 과 에스라 1장의 칙령이 정확히 평행을 이룬다. 유엔은 이 원통을 인권 선언의 최초 문서 중 하나로 거론한 바 있다. 성경과 세속 역사 자료가 교차하는 드문 지점이다.


일어나는 사람들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이 다 일어났다.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올라갈 채비를 했다.

6 그들의 사방 이웃이 다 은 그릇과 금과 기구와 짐승과 귀한 물건으로 그 손을 강하게 하고 자원하는 예물을 드렸다.

“마음이 감동을 받은 자들” — 이것이 핵심이다. 칙령은 허락이었지 강제가 아니었다. 50년 가까이 바빌론에서 살아온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그곳에 집을 짓고 가계를 꾸리고 있었다. 칙령이 났다고 해서 다 떠난 것이 아니었다. 에스라 2장에 나오는 귀환자 수 약 5만 명은 당시 바빌론 유대인 전체 수에 비하면 일부였을 가능성이 크다. 두려움과 익숙함과 현실적 계산을 넘어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심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다.


성전 기물의 귀환

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기물들을 꺼내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다가 자기 신들의 성전에 두었던 것들이다.

8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창고 감독 미드르닷(Mithredath)에게 그것들을 꺼내게 하여 유다 방백 세스바살(Sheshbazzar · ㉸ 세스바차르)에게 계수하여 주었다.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동일인인지 여부는 학자들 사이에서 오래된 논쟁이다. 두 이름 모두 바빌론식 이름이다. 에스라 5:14에서 세스바살이 성전 기초를 놓은 자로 언급되고, 스가랴 4:9에서는 스룹바벨이 기초를 놓은 자로 나온다. 동일인이라면 한 인물의 두 이름, 별개 인물이라면 연속적 지도자다. 본문은 두 이름을 나란히 쓰면서도 그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9 그 수는 이러했다. 금 쟁반 서른 개, 은 쟁반 천 개, 칼 스물아홉 개,

10 금 그릇 서른 개, 값진 은 그릇 사백열 개, 다른 기구 천 개.

11 금, 은 기구의 합계가 모두 오천사백 개였다. 세스바살이 사로잡혀 간 자들을 데리고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왔다.

성전 기물들이 돌아왔다 — 이것은 단순한 행정적 반환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BC 605년과 597년, 그리고 587년에 걸쳐 성전 기물들을 가져갔다(열왕기하 24-25장). 그것은 전리품이자 신학적 굴욕이었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셨다’는 상징이었다. 기물들의 귀환은 그 결론을 뒤집는다. 하나님의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온다.


다음 장 —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약 5만 명. 이름과 숫자가 나열되는 지루한 목록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 하나하나가 결심 하나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