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표지

데살로니가전서 1장 본받는 자

감사와 기억

1 바울(Paul · ㉸ 바오로)실루아노(Silvanus · ㉸ 실바노)디모데(Timothy · ㉸ 티모테오)데살로니가(Thessalonica · ㉸ 테살로니카)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쓰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1 — 데살로니가전서는 현재 남아 있는 바울 서신 중 가장 오래된 문서다. 작성 연대는 서기 50–51년으로 추정된다. 역사학자 마틴 헹엘(Martin Hengel)을 비롯한 학자들은 이 편지가 신약 문서 전체에서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점에 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였다(현대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 주요 로마 도로인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가 지나는 항구 도시였으며, 유대인 회당이 있었다.

1:3 “믿음의 역사·사랑의 수고·소망의 인내” — 세 쌍이다. 이 세 덕목은 이후 13장에서 믿음·소망·사랑이라는 바울 공식으로 응축된다. 여기서는 각각 행동이 뒤따른다. 믿음은 역사(일)를 낳고, 사랑은 수고를 낳고, 소망은 인내를 낳는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우리가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Achaia · ㉸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5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 바울은 데살로니가 복음 선포가 로고스(말)에 그치지 않고 뒤나미스(능력), 성령, 확신을 동반했다고 쓴다. 바울 편지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선포의 내용과 선포의 방식이 둘 다 중요하다.

1:6 “많은 환난 가운데서” — 사도행전 17:1-9은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 당시 상황을 전한다. 유대인 일부가 폭동을 일으켰고, 바울은 밤에 도주해야 했다. 이 편지의 배경에는 그 소란이 있다.

1:7 “본이 되었느니라” — 헬라어 τύπος(튀포스). 도장을 찍어 남긴 자국, 즉 원형에서 복사된 형상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먼저 바울과 주를 본받은 자(μιμηταί, 미메타이 — 모방자)가 되었고, 그다음 다른 이들의 본(튀포스)이 되었다. 수신과 발신의 연쇄다.


우상에서 돌아선 자들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린다 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9-10은 이방인 회심의 정형 공식처럼 보인다.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옴” + “아들의 재림을 기다림”. 이 짧은 두 절에 바울 신학의 뼈대가 담겨 있다. 과거의 전향, 현재의 섬김, 미래의 기다림.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 구약의 표현을 이방인 청중에게 적용한다. 우상들이 죽었고 거짓이라는 대조가 전제되어 있다.

“장래의 노하심” —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언급이다. 이 단어는 데살로니가전서 전체에 흐르는 종말의 긴장감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1장은 재림 기대로 끝난다. 4-5장이 그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