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장 진리와 사랑, 그리고 경계
인사
1 장로인 나는 택함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한다. 나는 그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 나만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렇다.
2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때문이다.
3 아버지 하나님과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평강이 진리와 사랑 안에서 너희와 함께하기를.
“택함을 받은 부녀(ἐκλεκτῇ κυρίᾳ — 에클렉테 퀴리아)“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 여성 신자와 그 가정. 또는 어떤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인격화한 것. 고대 서신에서 교회를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것은 흔했다. 요한계시록 21:2에서 새 예루살렘이 “신부”로 묘사된다. 이 서신의 수신자가 교회 공동체라면, “부녀의 자녀들”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장로’라고 자신을 밝히는 저자는 요한일서와 요한삼서에서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
진리 안에 걷기
4 네 자녀들 중 일부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진리 안에 걷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5 그리고 이제 부녀여, 새 계명으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계명으로 간청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6 사랑은 이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들에 따라 걷는 것. 계명은 이것이다. 처음부터 들은 것처럼 사랑 안에서 걷는 것.
거짓 교사를 경계하여라
7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세상에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다.
8 너희 스스로를 조심하여라. 우리가 수고하여 이룬 것들을 잃지 않고 완전한 상을 받도록.
9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앞서 나가는 자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지키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것이다.
10 누가 이 가르침을 가지고 오지 않거든 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의 악한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다.
10-11절은 초기 교회의 여행 선교사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집에서 모였다. 순회 선교사들은 신자 가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요한은 거짓 교사에게 그 환대를 제공하지 말라고 한다. 집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한 숙박이 아니다. 그 가르침을 후원하고 전파를 돕는 행위다. 오늘날 개인 차원의 예절 문제처럼 읽히지만, 당시 맥락에서는 거짓 복음의 확산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요한이 그토록 강하게 금지하는 이유다.
마지막 말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지만, 종이와 잉크로 쓰기 원하지 않는다. 대신 너희에게 가서 얼굴을 마주보고 말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도록.
13 택함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한다.
12절의 “종이와 잉크” — 파피루스와 먹이다. 1세기 지중해 세계의 서신 문화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단어다. 짧은 서신임에도 저자는 더 할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는 것으로 미룬다. 문자보다 직접 대화를 더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드러난다. 이 서신에는 처음과 끝에 대칭이 있다. 1절에서 “나는 그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고 열고, 12절에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도록”으로 닫는다. 진리와 사랑과 기쁨 — 요한 문학의 세 주제어다.
다음 책 — 요한삼서.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 1세기 교회 안의 권력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