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거짓 교사 정죄와 에녹의 예언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Jude)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지켜진 자들에게 편지한다.
2 자비와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풍성하기를.
유다는 마태복음 13:55과 마가복음 6:3에서 예수의 형제로 언급된다. “야고보의 동생” —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고 야고보서의 저자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의 형제가 아닌 야고보의 동생으로 소개한다. 이 겸손한 자기 소개 방식이 야고보서 1:1에서 야고보가 스스로를 “종”이라 부른 것과 같은 결을 가진다. 형제라는 혈연적 특권보다 섬기는 관계를 앞세운다.
경고를 쓰게 된 이유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구원에 대해 너희와 함께 쓰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진 믿음을 위해 싸우라고 권면하는 편지를 써야 하게 되었다.
4 어떤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심판이 옛날부터 기록된 사람들. 경건치 않은 자들로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함으로 바꾸고,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며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역사의 심판 선례들
5 너희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주님이 이집트에서 백성을 구원하신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는 것을 상기시키겠다.
6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버린 천사들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사슬에 묶어 어두운 곳에 가두셨다.
7 이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성들도 간음하며 다른 육체를 따르다가, 영원한 불로 형벌받음으로써 본보기가 되었다.
8 이들도 꿈을 꾸는 것 같이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무시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비방한다.
9 천사장 미가엘(Michael · ㉸ 미카엘)이 모세의 몸에 대해 마귀와 논쟁할 때, 비방하는 판결을 감히 내리지 않고 “주님이 너를 꾸짖으시기를” 이라고만 했다.
10 그러나 이 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비방한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성으로 아는 것에서는, 그것으로 스스로를 부패시킨다.
9절은 ‘모세 승천기(Assumption of Moses)‘라는 외경을 인용한다. 이 외경에 따르면 모세가 죽은 후 마귀가 그 몸에 권리를 주장했고, 미가엘이 마귀와 논쟁했다. 유다서는 이 이야기를 정경적 권위를 가진 자료처럼 사용한다. 6절의 “자기 처소를 버린 천사들”도 에녹서의 ‘파수꾼들’ 이야기와 연결된다. 정경 문서가 외경 전통을 직접 인용한 사례다. 이것이 오랫동안 유다서의 정경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던 요소이기도 하다.
세 유형의 반역자들
11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들은 가인의 길로 걸어갔고, 이익을 위해 발람의 오류에 빠졌으며, 고라의 반역으로 멸망했다.
가인, 발람, 고라 — 세 구약의 반역자들이 한 절에 나란히 선다. 가인(창 4장)은 형제를 살해했다. 발람(민 22-24장)은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 고라(민 16장)는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 이 세 인물은 유대 전통에서 불경함의 원형들이었다. 유다서는 이 세 고전적 유형을 통해 자기 시대 거짓 교사들의 성격을 정의한다.
에녹의 예언
12 이 자들은 너희의 사랑의 잔치에 숨어들어 두려움 없이 자기를 먹이는 암초들이다. 바람에 끌려다니는 물 없는 구름이다. 열매도 없고 두 번 죽어 뿌리까지 뽑힌 가을 나무들이다.
13 자기 수치를 거품처럼 뱉는 거친 바다 파도들이다. 영원히 어둠이 예비된 떠도는 별들이다.
14 아담의 칠 대손 에녹(Enoch)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언했다. “보라, 주님이 그의 수만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셨다.
15 모든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고,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이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행위들에 대해, 그리고 경건치 않은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한 모든 완악한 말에 대해 그들을 정죄하시려고.”
16 이 자들은 불평하고 불만을 품는 자들이다. 자기 정욕대로 걷는다. 그 입은 과장된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해 사람을 추켜세운다.
14-15절은 에녹서 1:9를 거의 직접 인용한다. 에녹서는 기원전 3세기부터 작성된 유대 외경으로, 쿰란 사해 문서에서도 에티오피아어 번역본에서도 발견된다. 에녹서 1:9 — “보라, 그가 수만의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신다, 모든 자에게 심판을 실행하시려고.” 유다서는 이것을 예언으로 인용한다. 외경이 예언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4세기 교회가 유다서의 정경성을 논의할 때 이 인용이 주요 쟁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서는 정경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17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여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했다. “마지막 때에 자기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사는 비웃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19 이들은 분리하는 자들이다. 영적이지 않고 혼에 속한 자들이다.
20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려라.
22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라.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낚아채듯 구원하여라.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자비를 베풀어라. 육체의 욕심으로 더럽혀진 속옷도 미워하면서.
송영
24 능히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보전하시고 기쁨으로 그 영광 앞에 흠 없이 서게 하실 수 있는 분께.
25 우리 구주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세세 무궁토록 있기를. 아멘.
24-25절의 송영(doxology)은 기독교 예배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축도 중 하나다. “넘어지지 않게 보전하신다(ἀπταίστους — 압타이스투스)” —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다. 이 단어도 신약에서 유일하게 여기서만 쓰인다. 유다서는 격렬한 정죄와 경고로 채워진 서신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은 안전하게 붙들리는 것, 기쁨으로 서는 것, 흠 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을 향한 심판의 언어가, 신자들을 향한 보호의 언어로 전환된다. 마지막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유다서 전체가 이 한 문장을 향해 달려온다. 유다서는 신약의 마지막 서신이다.
「21세기 성경」 야고보서·베드로전서·베드로후서·요한일서·요한이서·요한삼서·유다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