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다른 복음은 없다
인사
1 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않고 사람으로 말미암지도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Paul · ㉸ 바오로)은,
2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Galatia · ㉸ 갈라티아)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 첫 절부터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의 기원을 명시한다. “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않고, 사람으로 말미암지도 않고.”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논쟁의 선제 방어다. 편지 전체가 사도권을 향한 공격에 대한 응수다.
갈라디아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는 학계에서 두 학설이 대립한다. ‘북갈라디아 학설’은 소아시아 중북부 켈트족(갈라티아인) 정착지를 가리킨다고 본다. ‘남갈라디아 학설’은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에서 세운 도시들, 곧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 등을 가리킨다고 본다. 남갈라디아 학설이 사실이라면 갈라디아서는 신약 성경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서신일 가능성이 높다(기원후 48–49년경). 북갈라디아 학설은 2차 혹은 3차 선교 여행 이후, 기원후 55년 이후 기록으로 본다.
다른 복음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저주를 받을지어다”(헬라어: 아나테마)는 가장 강한 표현 중 하나다. 바울은 같은 저주를 8절과 9절에서 반복한다. 반복 자체가 수사적 강조다. 심지어 “하늘로부터 온 천사”까지 조건에 포함한다. 이것은 복음의 내용이 전달자의 권위보다 우선한다는 선언이다.
갈라디아를 혼란에 빠뜨린 이들을 흔히 “유대화주의자들”(Judaizers)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율법 — 특히 할례 — 을 지켜야 온전히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지 않았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느니라.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Jerusalem)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Arabia)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Damascus · ㉸ 다마스쿠스)으로 돌아갔노라.
바울이 회심 후 곧장 아라비아로 간 것은 사도행전이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아라비아”는 광야 지역, 오늘날 요르단 동부와 시리아 남부 일부에 해당한다. 일부는 이 기간을 예수가 광야에서 지낸 것과 평행한 준비 기간으로 해석한다. 바울 자신은 이 기간을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시간으로 이해한다.
예루살렘 첫 방문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Cephas · ㉸ 케파)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열다섯 날을 머물렀으나,
19 주의 형제 야고보(James)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Syria · ㉸ 시리아)와 길리기아(Cilicia · ㉸ 킬리키아) 지방들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게바”는 아람어로 “바위”를 뜻하며, 헬라어로는 “페트로스”, 곧 베드로다. 바울은 여기서 바울과 게바의 관계가 독립적임을 강조한다. 열다섯 날의 짧은 방문, 만난 사람은 둘뿐. 이것이 바울이 내세우는 증거다. 자신의 복음은 예루살렘 사도단에서 ‘전수’받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