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자녀냐 종이냐
상속자와 종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느니라.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때가 차매”(헬라어: 플레로마 투 크로누) — 신약 성경에서 가장 함축적인 시간 표현 중 하나다. 로마의 팍스 로마나(평화), 헬라어의 공용어화, 유대 묵시 문학의 종말 기대가 교차하는 시점. 바울은 예수의 탄생을 이 수렴 지점에 놓는다.
“아빠 아버지” — 아람어 “아빠”와 헬라어 “파테르”가 나란히 온다. 같은 표현이 로마서 8:15에도 등장한다. 예수가 겟세마네에서 사용한 호칭(막 14:36)이기도 하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기도가 믿는 자의 기도가 된다는 의미를 담는다.
그들에게로 돌아가는 것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날과 달과 절기와 해” — 안식일, 월삭, 절기, 안식년 등 유대 달력의 율법 준수를 가리킨다. 갈라디아인들은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이제 유대화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유대교 절기 체계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것을 자유에서 다시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흥미롭게도 그는 유대 율법 준수와 이방인의 신 숭배(8절)를 같은 범주인 “초등학문”에 놓는다. 율법 준수와 우상 숭배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아들 신분에서 종 신분으로의 퇴행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간청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한 것이 없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 있었다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할 때뿐 아니라 항상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지금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여 말하기를 원하노니 나는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노라.
13-15절의 “육체의 약함”이 무엇인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는다. 눈병, 말라리아, 간질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는 표현이 눈병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기도 한다. 바울이 직접 기록한 유일한 자서전적 단편이다. 첫 방문 때의 약함, 그럼에도 그를 그리스도처럼 영접했던 그들의 따뜻함 — 바울은 그 과거를 상기시키며 지금의 이탈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를 호소한다.
“해산하는 수고” — 어머니의 산통 이미지다.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의 영적 출생을 처음 경험했고, 지금 다시 그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고대 세계 남성 저자가 자신을 어머니에 비유한 드문 사례다.
하갈과 사라
21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내게 말하라. 너희가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Mount Sinai · ㉸ 시나이산)에서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Hagar · ㉸ 하가르)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것이니,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나,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해산하지 못하는 자여 환호성을 지르라, 이는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바울의 하갈-사라 알레고리는 유대 랍비 전통의 미드라시 해석 방식을 사용한다. 창세기의 두 아들, 이스마엘(Ishmael)과 이삭(Isaac · ㉸ 이사악)의 이야기를 두 언약, 두 예루살렘, 두 종류의 자녀로 읽는 것이다. 바울의 독창적인 뒤집기가 여기 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육체적 할례와 율법 준수로 정의했다. 바울은 이삭, 곧 약속의 자손을 약속과 믿음으로 정의하며 그것이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