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표지

예레미야 1장 모태에서 부르신 자

예언자의 시대

1 예레미야(Jeremiah · ㉸ 예레미아)의 말씀이다. 그는 베냐민(Benjamin · ㉸ 벤야민)아나돗(Anathoth — 현재 예루살렘 북동쪽 5킬로미터, 아나타)에 살던 제사장 힐기야(Hilkiah · ㉸ 힐키야)의 아들이었다.

2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은 유다 왕 요시야(Josiah)의 아들 중 아몬(Amon)의 아들 요시야 왕 제13년이었다.

3 그 뒤로도 말씀은 계속 임했다 —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Jehoiakim · ㉸ 여호야킴)의 날들에, 또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Zedekiah · ㉸ 치드키야)의 제11년,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기원전 627년부터 587년까지, 40년. 이 숫자는 광야 40년을 떠올린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해에 부름받고,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날까지 서 있었다. 다섯 왕의 시대를 살았고, 다섯 번 죽을 뻔했으며, 한 번도 입을 닫지 않았다.


부르심 — 모태 이전

4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으며 너를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웠노라.”

“알았고(yāda’)” —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단순한 인지가 아니라 친밀한 선택·언약적 앎이다. 창세기에서 남자가 여자를 “알다”고 할 때와 같은 동사다. 모태 이전의 앎 — 소명은 자격에서 오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1:15에서 자신의 소명을 말할 때 이 구절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온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이.” 예레미야의 소명이 바울의 소명 언어가 된다.

6 그 때 내가 말했다.

“아, 주 야훼여. 나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나는 아이일 뿐입니다.”

7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이일 뿐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내는 곳마다 가고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것을 말하여라.

8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질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이 대화의 구조는 이사야 6장, 모세의 부르심(출애굽기 3-4장)과 정확히 같다. 야훼가 부르신다 — 소명 받는 자가 자신의 무능을 내세운다 — 야훼가 “내가 함께한다”로 반박하신다. 예언자 소명 문학의 정형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경우, 그의 항변 “나는 아이입니다”는 앞으로 평생 이어질 탄식의 첫 음절이다.

9 야훼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나의 말씀을 네 입에 두었다.

10 보라, 오늘 내가 너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웠다. 뽑고, 무너뜨리고, 파멸시키고, 헐어내기 위해. 그리고 세우고, 심기 위해.”

여섯 동사 — 네 개의 파괴와 두 개의 건설. 예레미야의 사역 비율이 여기에 암호화되어 있다. 그는 주로 파괴하는 자로 불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두 동사가 있다. “세우고, 심기.” 이 두 단어가 그를 단순한 심판의 예언자와 구분한다.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

11 야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했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살구나무(쇼케드 — שָׁקֵד) 가지를 봅니다.”

12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잘 보았다. 내가 내 말씀을 이루기 위해 깨어 있을 것이다(소케드 — שֹׁקֵד).”

히브리어 수사(修辭) — “살구나무(쇼케드 שָׁקֵד)“와 “깨어 있다(소케드 שֹׁקֵד)“는 발음이 거의 같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예언자 문학의 핵심 기법인 언어 유희(Paronomasia)다. 살구나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 —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분홍빛 꽃을 터뜨린다. “깨어 있는 나무”, “잠들지 않는 나무”. 야훼는 자신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그 살구나무처럼 깨어 있다고 하신다. 한국의 일부 번역은 “살구나무”를 “아몬드나무”로 옮기기도 한다.

13 야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끓는 가마를 보는데, 그것이 북쪽에서 기울어져 있습니다.”

14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재앙이 북쪽에서부터 이 땅의 모든 주민 위에 열릴 것이다.

15 보라,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부를 것이다. 그들이 와서 각자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왕좌를 세우고 그 주변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향하여 칠 것이다.

16 내가 그들에게 나의 심판을 선고할 것이다 —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하고,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한 모든 악 때문에.”

“북쪽에서 기울어진 가마” — 예레미야가 사역하는 내내, 그리고 사역이 끝난 뒤에도, 바빌로니아(Babylonia — 현재 이라크 중남부)가 북쪽 통로를 통해 가나안으로 남하한다. 유프라테스강은 북쪽으로 우회하여 시리아를 가로질러 흐른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지리적으로 북쪽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예레미야의 “북쪽”은 문학적 방향이자 지리적 사실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17 “너는 허리를 묶어라. 일어서서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그들 앞에서 두려워 떨지 마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앞에서 너를 무너지게 할 것이다.

18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온 땅, 유다 왕들, 그 고관들, 제사장들, 이 땅 백성에 맞서는 요새 성읍, 쇠 기둥, 놋 성벽으로 만들었다.

19 그들이 너와 싸우겠지만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건질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요새 성읍, 쇠 기둥, 놋 성벽” — 이 세 이미지는 예레미야가 평생 기대야 할 자원을 알려준다. 그 자신의 담력이 아니라 야훼의 언약이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온 땅이 자신의 적이 되는 경험을 한다 — 고향 아나돗 사람들, 왕, 제사장들, 거짓 예언자들, 군중. 그러나 이 약속이 그를 붙들었다.

다음 장 — 야훼가 이스라엘의 배신을 고발한다. 갓 결혼한 신부처럼 따랐던 광야 시절을 기억하며, 이제 두 가지 죄를 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