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장 거짓 예언자와 의로운 가지

나쁜 목자들에게

1 내 목장의 양들을 멸하고 흩는 목자들은 화로다. 야훼의 말이다.

2 내 백성을 목축하는 목자들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어버리고 그들을 몰아내고 돌보지 않았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한 행위들을 너희에게 갚겠다. 야훼의 말이다.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자를 그들을 몰아낸 모든 나라에서 모을 것이다. 그들을 그들의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들이 번성하고 많아질 것이다.

4 내가 그들을 목양할 목자들을 세우겠다.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겠고 떨지 않겠고 없어지지도 않겠다. 야훼의 말이다.”

“목자”는 고대 근동 왕권의 표준 이미지다.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도 왕을 백성의 목자로 표현한다. 구약에서 야훼 자신이 목자이고(시편 23편), 왕들은 대리 목자다. 나쁜 목자 — 양을 먹이지 않고 자기만 먹는 — 는 에스겔 34장에서 더 길게 다뤄진다. 예수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며 이 예언자적 전통을 이어받는다.


의로운 가지

5 보라, 날들이 온다. 야훼의 말이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다. 그는 왕으로 다스리며 지혜롭게 행하고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다.

6 그의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것이다. 야훼 우리의 의.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히브리어: 체마흐 차디크 — צֶמַח צַדִּיק)” — 이것은 구약의 가장 명시적인 메시아 예언 중 하나다. 스가랴 3:8, 6:12에서도 “가지”(체마흐)가 메시아적 칭호로 쓰인다. 이사야 11:1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 이미지와 연결된다. “야훼 우리의 의(히브리어: 야훼 치드케누 — יְהוָה צִדְקֵנוּ)“는 시드기야(히브리어로 “야훼는 나의 의”라는 뜻)의 이름과 동일한 어근에서 온다. 부패한 왕 시드기야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을 진짜 메시아가 실현할 것이라는 아이러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이 이름은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 예수가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바울의 신학(고린도전서 1:30)과 연결된다.

7 그러므로 보라, 날들이 온다. 야훼의 말이다.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올려내신 야훼’로 맹세하지 않을 것이다.

8 ‘이스라엘 집의 자손을 북방 땅과 그들을 몰아낸 모든 나라에서 올려내신 야훼’로 맹세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 땅에 살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 — 민족의 재앙

9 예언자들에 대하여. 나의 마음이 내 속에서 부서졌다. 내 뼈가 다 떨린다. 나는 포도주 때문에, 야훼 때문에, 그의 거룩한 말씀 때문에 취한 사람 같다.

10 이 땅이 간음하는 자들로 가득했다. 저주 때문에 땅이 슬퍼하고 광야의 목장들이 말랐다. 그들의 달음질이 악하고 그들의 힘이 정의롭지 않다.

11 “제사장도 예언자도 다 불경건하다.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했다. 야훼의 말이다.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미끄러운 곳의 어둠 속이 되겠다. 그들이 거기서 밀려 쓰러질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겠다. 그들의 방문 해에.”

13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에게서 나는 어리석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바알로 예언하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잘못 이끌었다.

14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나는 무서운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간음하며 거짓말로 행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여 아무도 그 악에서 돌아서지 않게 한다. 그들이 내게 다 소돔 같고 그 주민들이 고모라 같다.

북왕국(사마리아)의 예언자들은 바알을 섬겼다 — 종교적 배신이다. 남왕국(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은 야훼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며 악인을 격려한다 — 도덕적 타락이다. 예레미야는 후자가 더 무서운 것이라 본다. 이름이 바른데 내용이 틀린 것이 이름부터 틀린 것보다 더 위험하다.


거짓 꿈과 참 말씀

15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가 예언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고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하겠다.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 불경건함이 온 땅에 퍼졌기 때문이다.”

16 만군의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마라. 그들이 너희를 헛된 것으로 채운다. 그들은 야훼의 입의 환상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환상을 말한다.

17 그들은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계속 말한다.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마음의 고집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너희에게 오지 않겠다’고 한다.

18 누가 야훼의 회의에 서서 그의 말씀을 보고 들었느냐? 누가 그의 말씀을 주의하여 들었느냐?

19 보라, 야훼의 폭풍이 나왔다. 진노의 회오리바람. 악인들의 머리에 휘몰아칠 것이다.

20 야훼의 진노가 그의 마음의 계획을 실행하고 이룰 때까지 돌아서지 않겠다. 끝날에 너희가 이것을 완전히 깨달을 것이다.”

21 “나는 그 예언자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달려갔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언했다.

22 만약 그들이 내 회의에 섰다면 내 말을 내 백성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들을 그들의 악한 길에서, 그들의 악한 행위들에서 돌아서게 했을 것이다.”

“야훼의 회의(히브리어: 소드 야훼 — סוֹד יְהוָה)” — 천상의 신적 회의를 가리킨다. 이사야 6장의 “거룩하다 거룩하다” 장면, 욥기 1-2장의 천상 궁정, 열왕기상 22장의 거짓 영이 나오는 장면이 이 개념의 배경이다. 참 예언자는 이 회의에 서서 야훼의 실제 말씀을 가지고 온다. 거짓 예언자는 자기 마음의 꿈을 말한다. 문제는 외부에서 그 둘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명기 18:22가 제시하는 검증 기준 — “예언이 이루어지느냐” — 은 사후적이다. 이루어지기 전에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 질문이 예레미야 시대의 핵심 갈등이다.


꿈과 말씀의 차이

23 야훼의 말이다. “내가 가까이 있는 하나님이요,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니냐?

24 은밀한 곳에 숨는 자가 나의 눈에 안 보이겠느냐? 야훼의 말이다. 내가 하늘과 땅을 채우지 않느냐? 야훼의 말이다.”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이 말했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

26 거짓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의 마음이 언제까지 그러하겠느냐? 그들은 자기 마음의 속임의 예언자들이다.

27 그들은 각각 자기 이웃에게 자기 꿈을 말하여 내 백성이 바알로 인해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처럼 내 이름을 잊게 하려는 계획이다.

28 꿈을 꾼 예언자는 꿈을 말하여라. 내 말을 가진 자는 내 말을 신실하게 말하여라. 지푸라기가 밀과 무엇이 같으냐? 야훼의 말이다.

29 내 말이 불 같지 않느냐? 바위를 부수는 망치 같지 않느냐? 야훼의 말이다.”

“꿈”은 고대 근동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 합법적 통로였다. 야훼도 꿈으로 말씀하셨다(창세기 28장의 야곱, 37장의 요셉). 예레미야는 꿈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꿈이 있으면 꿈을 말하라.” 그러나 꿈과 야훼의 실제 말씀은 다르다 — 지푸라기와 밀처럼. 야훼의 말씀은 불이고 망치다. 실제로 태우고 실제로 부순다. 꿈은 그 무게를 가지지 못한다.


”야훼의 경고”라는 말에 대하여

30 야훼의 말이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 예언자들을 대적한다. 각각 자기 이웃에게서 내 말을 훔치는 자들을.

31 보라, 내가 그 예언자들을 대적한다. 자기 혀를 사용하여 ‘야훼께서 말씀하신다’고 말하는 자들을.

32 보라, 내가 거짓 꿈을 예언하는 자들을 대적한다. 야훼의 말이다. 그들이 그 꿈들을 말하며 거짓과 경솔함으로 내 백성을 잘못 이끈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않았고 명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 백성에게 전혀 유익함이 없다.”

33 “이 백성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네게 묻기를 ‘야훼의 경고가 무엇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경고다. 내가 너희를 내버리겠다.’ 야훼의 말이다.

34 야훼의 경고라는 말을 사용하는 예언자나 제사장이나 백성은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을 벌하겠다.

35 각각 자기 이웃과 자기 형제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느냐?’ ‘야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6 ‘야훼의 경고’는 다시는 언급하지 마라. 각 사람의 말이 그에게 경고가 되었다.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야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37 너는 그 예언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네게 무엇이라 응답하셨느냐?’ ‘야훼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8 그러나 ‘야훼의 경고’라 하면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 말을 사용했으므로 내가 ‘야훼의 경고’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보냈는데도

39 보라, 내가 너희를 완전히 잊겠다.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던지겠다.

40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치욕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영원한 수치를 줄 것이다.”

23:33-40의 “야훼의 경고(히브리어: 마싸 야훼 — מַשָּׂא יְהוָה)” 단락은 언어 자체의 오염에 관한 비판이다. 마싸는 “짐/경고/신탁”을 뜻하는 단어다. 거짓 예언자들이 이 단어를 남발하여 야훼의 이름을 가볍게 썼다. 예레미야는 그 단어 사용 자체를 금지한다. 언어가 오염되면 그 언어로 전하는 진리도 오염된다. 거룩한 언어가 진부해지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이다.


다음 장 — 두 광주리의 무화과 환상.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바벨론에 간 자와 이집트로 간 자의 운명이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