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9장 예루살렘 함락, BC 587

성이 뚫리다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 성을 포위했다.

2 시드기야의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벽이 뚫렸다.

열왕기하 25장은 이 날짜를 같이 기록한다. 사월 구일 — 유대력으로 아브(Av)월이 아니라 담무즈(Tammuz)월이다. 학자들은 성벽이 뚫린 날(사월 구일)과 성전이 불탄 날(오월 칠일, 혹은 십일)을 구분한다. BC 588년 포위 시작, BC 587년 7월 성벽 함락. 약 18개월의 포위였다.


시드기야가 도망치다

3 바벨론 왕의 모든 신하들이 들어와 중간 문에 앉았다. 네르갈사레셀(Nergal-sharezer · ㉸ 네르갈-사레체르), 삼갈느보(Samgar-nebo), 내시장 살스김(Sarsechim), 고관 네르갈사레셀, 바벨론 왕의 모든 나머지 고관들.

4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들이 그들을 보고 밤에 왕의 동산 길을 통해 두 성벽 사이 문으로 성에서 도망쳤다. 아라바 길로 나갔다.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뒤쫓아 여리고(Jericho · ㉸ 예리코) 평원에서 시드기야를 따라잡았다. 그를 잡아 하맛(Hamath)리블라(Riblah)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데려갔다. 느부갓네살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6 바벨론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죽였다. 바벨론 왕이 유다의 모든 귀족들도 죽였다.

7 그런 다음 그가 시드기야의 눈을 뽑았다. 바벨론으로 데려가려고 청동 쇠사슬로 결박했다.

시드기야가 마지막으로 본 것 — 그것이 아들들의 처형 장면이었다. 두 눈이 뽑히기 전, 눈으로 본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었다. 그 기억이 영원히 남았다. 에스겔 12:13이 미리 예언했다 — “그가 바빌론을 볼 것이나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예루살렘에서 도망쳤으므로 여리고에서 잡혔다. 살아서 바빌론으로 끌려갔지만 두 눈이 없었다. 바빌론을 볼 수 없었다. 예언이 그렇게 성취됐다.

구약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 중 하나다. 아버지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것. 그것을 마지막으로 보게 하고 눈을 뽑는 것. 이것은 고대 근동의 반역자에 대한 처벌로 알려진 형식이다.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 다윗 왕조의 후계자들을 제거하고, 시드기야를 살려두되 무력화하는 것.


예루살렘이 불타다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들을 불태웠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헐었다.

9 성 안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들과 자기에게 항복한 사람들과 나머지 무리를 호위대장 느부사라단(Nebuzaradan · ㉸ 느부자르아단)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

10 그러나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 일부를 유다 땅에 남겨두었다. 그 날 그들에게 포도원과 밭을 주었다.


예레미야를 부탁하라

1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해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령했다.

12 “그를 데려다가 잘 돌봐라. 그에게 아무 해도 가하지 마라.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에게 해주어라.”

13 호위대장 느부사라단과 느부삿스반(Nebushazban) 내시장과 고관 느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고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14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려왔다. 그를 사반(Shaphan)의 손자 아히감(Ahikam)의 아들 그달리야(Gedaliah)에게 넘겨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그가 백성 가운데 살게 했다.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를 보호하라고 명령한다. 수십 년간 자국에서 박해받고 감옥에 갇혔던 예언자가 적국 왕에 의해 자유를 얻는다. 아이러니가 극적이다. 예레미야가 “바빌론에 투항하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바빌론 왕이 그를 친다.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은 살았다. 그의 말을 거부한 자들은 죽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옳았다는 역설적 증명이 그 자신의 자유다.


에벳멜렉에게 주어진 약속

15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가 아직 감옥 뜰에 갇혀 있을 때 임했다.

16 “가서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한 내 말씀을 — 재앙이요 선이 아니라 — 이루겠다. 그 날에 그것들이 네 앞에서 성취될 것이다.

17 그러나 그 날에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야훼의 말이다. 너는 두려워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지지 않을 것이다.

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하겠다. 너는 칼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신뢰했기 때문에 네 목숨이 노획물처럼 네 것이 될 것이다. 야훼의 말이다.”

에벳멜렉 — 38장에서 왕에게 청하여 예레미야를 진흙 구덩이에서 끌어올린 에티오피아 환관. 야훼가 그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이방인, 환관, 하인. 그러나 그가 야훼를 신뢰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지 않은 것을 그가 했다. 그 신뢰가 구원의 약속을 받는다. 예레미야서에서 진정한 믿음의 행위를 보이는 사람들은 종종 변두리 사람들이다 — 이방인 에벳멜렉, 외성에 살던 기생 라합(여호수아서), 모압 여인 룻. 중심에서 가장 멀었던 자들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

예루살렘 함락(BC 587년)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깊은 단절이다. 성전이 불탔다. 다윗 왕조가 포로로 끌려갔다. 이 사건은 신앙의 언어 전체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시온에 계신다” — 그 신앙은 어떻게 되는가? 시온이 무너졌는데. 예레미야는 이미 그 질문에 답했다. 장소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율법. 성전이 아니라 야훼와의 직접적 관계. 새 언약은 건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이 포로기 신학의 출발점이다.


예레미야 39장 끝. 예루살렘이 무너졌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살아남아 그달리야의 집에 머물렀다. 이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