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8장 추수가 끝나고 여름이 지났는데

뼈들이 드러나다

1 “그 때에”

야훼의 말씀이다.

“유다 왕들의 뼈들, 그 고관들의 뼈들, 제사장들의 뼈들, 예언자들의 뼈들, 예루살렘 주민들의 뼈들이 그 무덤들에서 꺼내어질 것이다.

2 그리고 그들이 섬기고, 따르고, 구하고, 경배하고, 절했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모이지도 않을 것이다. 장사되지도 않을 것이다. 땅 위의 거름처럼 될 것이다.

3 이 악한 족속의 남은 자들, 내가 쫓아 보낸 모든 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죽음보다 삶을 더 원할 것이다.”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다.

별들과 해와 달에 절한 죄 — 신명기 4:19가 금지한 것이다. 뼈들이 그들이 섬기던 것들 앞에 뿌려진다 — 잔인한 시적 정의다. 섬김의 대상 앞에서 추락하는 것이다. 죽음보다 삶을 싫어하는 것 — 욥기 3장과 같은 심연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것은 개인의 탄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처할 상태다.


돌아오지 않는 자들

4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쓰러지면 일어나지 않느냐? 사람이 돌아서면 돌아오지 않느냐?

5 왜 이 예루살렘 백성이 영속적인 배신으로 돌아서는가? 그들이 속임수를 붙들었다. 돌아오기를 거부한다.

6 내가 귀 기울이고 들었다. 그들이 옳지 않게 말한다. 아무도 자기 악함을 뉘우치며 ‘내가 무엇을 했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말 달리는 사람처럼 자기 행로로 향한다.

7 심지어 황새도 하늘에서 그 계절을 안다. 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올 때를 지킨다. 그런데 내 백성은 야훼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

새들의 본능 — 철새는 계절을 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절을 모른다. 욥기 39장에서 야훼가 말씀하신 자연의 지혜가 여기 뒤집힌다. 자연이 야훼를 따르는데 이스라엘이 따르지 않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반복 모티프다(이사야 1:3, 예레미야 5:22와 이어진다).


율법이 그들에게 있어도

8 “어떻게 너희가 ‘우리는 지혜롭다. 야훼의 율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런데 보라, 서기관들의 거짓 붓이 그것을 거짓되게 만들었다.

9 지혜롭다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허둥댈 것이다. 잡힐 것이다. 보라, 그들이 야훼의 말씀을 거부했다.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는가?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밭을 다른 이들에게 주겠다. 왜냐하면 작은 자에서 큰 자까지 모두가 탐욕스럽게 이득을 취한다. 예언자에서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한다.

11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가볍게 치료했다. ‘평강이 있다, 평강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평강이 없다.

12 그들이 역겨운 것들을 행하여 부끄러워했는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수치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지는 자들 가운데 쓰러질 것이다. 내가 그들을 처벌할 때 그들이 넘어질 것이다.”

야훼가 말씀하셨다.

“평강이 있다, 평강이 있다 — 그러나 평강이 없다” — 6:14에서 이미 나온 구절이 8:11에서 반복된다. 예레미야서의 반복 기법 — 중요한 것은 두 번 말해진다. 거짓 예언자들의 가장 치명적인 죄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상처를 “가볍게” 치료하는 것 — 진단을 가볍게 여기면 치료도 가볍다. 암을 감기로 진단하면 처방전도 달라진다.


포도송이도 없고 무화과도 없다

13 “내가 그들을 완전히 거두겠다.”

야훼의 말씀이다.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다. 잎도 시들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준 것들이 지나가 버릴 것이다.”

14 우리가 왜 여기 앉아 있느냔? 모여라. 요새 성읍들로 들어가자. 거기서 죽어가자. 야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침묵시키셨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셨다. 우리가 야훼께 범죄했기 때문이다.

15 우리가 평강을 바랐지만 좋은 것이 없다. 치유의 때를 바랐지만 공포뿐이다.

16 그 말의 콧소리가 단(Dan)에서부터 들린다. 그 힘센 말들의 울음소리에 온 땅이 진동한다. 그들이 와서 땅과 그 안의 모든 것, 성읍과 거기 사는 자들을 삼킨다.

17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들을 보내겠다. 주술로 부릴 수 없는 독사들을. 그들이 너희를 물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예레미야의 통곡

18 내 슬픔이 나를 위로받을 수 없게 한다. 내 마음이 내 안에서 병들었다.

19 보라, 먼 땅에서, 이 땅 끝에서 내 백성의 딸의 소리다.

“야훼가 시온에 계시지 않느냐? 그녀의 왕이 거기 계시지 않느냐?”

“왜 그들이 그들의 조각한 형상들로, 이방의 허무한 것들로 나를 노하게 했느냐?”

20 “추수가 끝나고 여름이 지났는데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였다.”

21 내 백성의 딸의 파멸 때문에 나는 파멸해 있다. 내가 슬퍼한다.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22 길르앗(Gilead — 요르단강 동쪽 고원, 의약과 향료의 생산지)에 유향이 없는가? 거기에 의사가 없는가? 내 백성의 딸이 왜 고쳐지지 않았는가?

“추수가 끝나고 여름이 지났는데” — 팔레스타인의 농업 달력에서 여름 과일 수확(무화과·포도)이 끝나면 그것으로 한 해의 수확 기회가 닫힌다. 구원의 창이 닫혔다는 말이다. 이것이 예레미야 자신의 탄식인지, 포로 된 백성의 탄식인지 — 구분이 없다. 예레미야는 백성의 고통을 자기 몸으로 살아낸다.

“길르앗에 유향이 없는가” — 유향(발삼)은 의약품이었다. 길르앗은 그 생산지였다. 그런데 고칠 수 없는 상처 앞에서 예레미야가 묻는다 — 치료제가 없는가? 의사가 없는가? 이 탄식에서 19세기 흑인 영가 「There Is a Balm in Gilead」가 태어났다. 노예들은 예레미야의 절망적 질문을 희망의 고백으로 바꾸었다 — “길르앗에 유향이 있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절망이 씨앗이 되어 희망이 피었다.

다음 장 — 예레미야의 통곡이 절정에 이른다. 광야에 울음 방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