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장 눈물의 근원

물이 되고 싶다

1 내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이 눈물의 근원이 되었으면. 내가 밤낮으로 울리라 내 백성의 딸이 죽임 당한 것 때문에.

히브리어 원문에서 9장은 8:23으로 시작한다. 절 구분이 다르지만 내용은 이어진다. 예레미야는 자기 몸이 눈물 자체가 되기를 원한다 — 고통의 크기에 눈물이 충분하지 않다. 예레미야는 유대 전통에서 “눈물의 예언자(הַנָּבִיא הַבּוֹכֶה)“라고 불린다. 실제로 예레미야애가(Lamentations)가 그의 저작으로 전통적으로 귀속된다. 눈물로 쓴 책.

2 내가 광야에 나그네들의 숙소를 가졌으면! 내가 내 백성을 떠나 그들에게서 나갔으면. 그들은 모두 간음하는 자들이다. 반역자들의 집단이다.

예레미야가 광야로 도망가고 싶다 — 이것이 진정한 탈진이다. 선포자가 선포 대상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못한다. 야훼의 말씀이 그를 붙든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고통의 본질이다 —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자.


혀가 활처럼

3 “그들이 그들의 혀를 활처럼 당겼다. 거짓이 땅에서 강해졌다. 진실이 아니라. 그들이 한 악에서 다른 악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4 각자 자기 이웃을 조심하라. 어떤 형제도 신뢰하지 마라. 모든 형제가 야곱처럼 속인다. 모든 이웃이 중상하며 돌아다닌다.

5 각자가 자기 이웃을 속인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거짓말하도록 혀를 훈련시켰다. 피곤하도록 비뚤어지게 행동했다.

6 네가 있는 것은 속임 한가운데다. 속임 때문에 그들이 나를 알기를 거부한다.

야훼의 말씀이다.

“야곱처럼 속인다(יַעְקֹב יַעְקֹב)” — 야곱의 이름 자체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속임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정체성과 연결된 이름을 동사로 사용한다. “형제를 야곱처럼 대한다” — 형제 관계가 신뢰의 근거가 아니라 위험의 신호가 된 사회.


야훼의 분노

7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그들을 녹여서 시험하겠다. 내 딸 백성 때문에 내가 어떻게 달리 하겠느냐?

8 그들의 혀는 살상하는 화살이다. 입으로 속임수를 말한다. 각자가 자기 이웃에게 화평하게 말하지만 그 속으로는 그를 올가미에 걸리게 한다.

9 내가 이것들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느냐?”

야훼의 말씀이다.

“이런 민족에게 내 영혼이 복수하지 않겠느냐?”


산들을 위한 통곡

10 산들을 위해 나는 울부짖음과 통곡을 높이겠다. 광야의 목초지들을 위해 애가를 부르겠다. 그것들이 황폐하여 지나가는 자가 없다. 짐승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공중의 새들도 짐승들도 다 도망가 떠났다.

11 “내가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겠다. 자칼들의 소굴로 만들겠다. 유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겠다. 주민이 없도록.”

12 이것을 이해할 만큼 지혜로운 자가 누구냐? 야훼의 입이 말씀하신 자가 누구에게 그것을 선포할 수 있느냐? 왜 이 땅이 멸망하고 광야처럼 황폐하여 지나가는 자가 없는가?

13 야훼가 말씀하셨다.

“그들이 내 율법을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 앞에 놓은 것을.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것을 따라 걷지 않았다.

14 오히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을 따라 걸었다. 그들의 조상들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바알들을 따라서.”

15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고 독의 물을 마시게 하겠다.

16 내가 그들을 민족들 가운데 흩겠다. 그들도 그들의 조상들도 알지 못했던 민족들 가운데. 내가 모든 악을 갚을 때까지 그들 뒤에 칼을 보내겠다.”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라

17 만군의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려하라.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라. 와서 그들에게 보내라. 지혜로운 여인들에게.

18 그들이 서두르게 하라. 우리를 위해 통곡하게 하라. 우리 눈에서 눈물이 내려오게,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흘러내리게.”

19 시온에서 애가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어떻게 황폐해졌는가! 우리가 어떻게 수치를 당했는가! 우리가 이 땅을 떠났다. 우리의 거처들이 우리를 내던졌다.”

20 곡하는 여인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가 그의 입의 말씀을 받게 하라. 너희의 딸들에게 통곡을 가르쳐라. 각자 자기 이웃에게 슬픔의 노래를.

직업적 곡하는 여인들 — 고대 근동에서 장례는 전문 곡녀(哭女)들을 고용했다. 이집트 벽화에도, 우가릿 문헌에도 이들이 등장한다. 예레미야는 국가적 재난을 장례 의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곡하는 여인들에게 야훼의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 슬픔 자체가 예언자적 행위가 된다.


죽음의 침입

21 “죽음이 우리 창문들로 올라왔다. 우리 궁전들에 들어왔다. 밖의 아이들을 끊어내기 위해. 광장의 젊은이들을 끊어내기 위해.”

22 “말하여라 — 야훼의 말씀이다.

사람의 시체들이 들판의 거름처럼 쓰러질 것이다. 추수하는 자 뒤에 떨어진 곡식 단처럼. 모아줄 자가 없을 것이다.”

죽음이 창문으로 올라오는 이미지 —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창문은 귀신들이 침입하는 통로였다. 예레미야는 이 이미지를 가져와서 바빌로니아 군대의 침공을 묘사한다. 전쟁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곳, 궁전의 창문으로 들어온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23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마라. 용사는 그의 힘을 자랑하지 마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마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하라 — 나를 깨달아 알고 있다는 것으로. 내가 이 땅에서 인자와 공의와 의를 행하는 야훼라는 것으로. 나는 이것들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고린도전서 1:31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가 이것을 인용한다. 사도 바울이 지혜, 힘, 부를 나열하는 것도 이 구절 구조를 따른다. 자랑의 기준이 바뀐다 — 소유에서 관계로, 업적에서 앎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

25 “보라, 날들이 온다.”

야훼의 말씀이다.

“내가 할례받은 모든 자를 그들의 할례받지 않은 것과 함께 처벌할 것이다 —

26 이집트, 유다, 에돔, 암몬 자녀들, 모압, 그리고 광야에 거주하는 모든 삭발한 자들. 모든 민족들이 할례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온 집도 마음에 할례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할례받지 않은” — 3:4에서 예레미야가 명령한 “마음의 할례”가 여기서 심판의 기준이 된다. 몸의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이스라엘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같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여는 신학적 씨앗이 된다 — 몸의 표식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기준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다음 장 — 우상들을 향한 풍자. 그것들을 만든 손과, 만들지 않은 야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