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4장 두 광주리의 무화과

환상이 임하다

1 느부갓네살 바벨론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Jeconiah · ㉸ 여코니아)와 유다의 지도자들과 목수들과 대장장이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간 뒤에, 야훼께서 내게 보여주셨다. 야훼의 전 앞에 두 광주리의 무화과가 놓인 것을.

2 한 광주리에는 매우 좋은 무화과들이 있었다. 처음 익은 무화과 같았다. 다른 광주리에는 나쁜 무화과들이 있었다. 먹기에 매우 나빴다. 나빠서 먹을 수 없었다.

3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말했다. “무화과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매우 좋고 나쁜 것은 나빠서 먹을 수 없습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평화의 상징이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다”(열왕기상 4:25; 미가 4:4). 처음 익은 무화과(히브리어: 비쿠라 — בִּכּוּרָה)는 제철 첫 수확으로 가장 달고 귀했다. 호세아 9:10은 이것을 이스라엘의 초기 상태, 야훼의 사랑을 비유하는 데 쓴다. 예레미야의 환상은 이 상징을 역전시킨다 —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어느 쪽인가.


좋은 무화과 — 포로들

4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곳에서 바벨론 땅으로 보낸 유다 포로들을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여길 것이다. 좋게 여길 것이다.

6 내가 그들에게 눈길을 주겠다. 선을 위하여. 내가 그들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않겠다. 그들을 심고 뽑지 않겠다.

7 내가 그들에게 나를 알 마음을 주겠다. 야훼임을. 그들이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들이 온 마음으로 내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이 여기 있다. 바벨론 포로가 된 자들 — 패배하고 끌려간 자들 — 이 좋은 무화과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자신들을 생존자라 여기는 자들이 나쁜 무화과다. 신학적 교훈은 분명하다. 심판이 구원의 통로가 된다. 부수어지는 것이 빚어지는 시작이다. 토기장이의 물레가 여기서 다시 돌고 있다. 24:6의 “세우고 헐지 않겠다, 심고 뽑지 않겠다”는 1:10의 예레미야 소명 언어 — “뽑으며 파괴하며 … 세우며 심으라” — 의 반전이다. 심판의 언어가 회복의 언어로 뒤집힌다.


나쁜 무화과 — 남은 자들

8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쁜 무화과들, 먹기에 너무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것들 같이 유다 왕 시드기야(Zedekiah · ㉸ 치드키야)와 그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과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그렇게 여길 것이다.

9 내가 그들을 세상 모든 나라에 공포와 재앙이 되게 하겠다. 내가 그들을 몰아낼 모든 곳에서 치욕과 속담과 조롱거리와 저주가 되게 하겠다.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겠다.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애굽 땅에 사는 자들” — 기원전 609년 이후 애굽의 영향력 아래 유다 사람들 중 일부가 애굽으로 갔다. 예레미야는 이 애굽으로 간 자들을 나쁜 무화과로 포함시킨다. 예레미야 42-44장에서 이 문제가 다시 다뤄진다 — 예레미야 자신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가는 장면과 함께.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고, 애굽에 의존하는 것이 멸망의 길이라는 예레미야의 일관된 신학이 이 환상에 압축되어 있다. 좋은 무화과는 낮은 곳으로 내려간 자들이다. 나쁜 무화과는 제 힘으로 버티려는 자들이다.


다음 장 — 70년 포로 예언. 예레미야가 그릇에 담긴 진노의 포도주를 열방에 마시게 하는 환상.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