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장 북방의 칼
돌아오는 조건
1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야훼의 말씀이다.
“네 역겨운 것들을 내 얼굴 앞에서 치워라. 그러면 방랑하지 않을 것이다.
2 야훼의 살아 계심을 두고 진실하게, 공의롭게, 의롭게 맹세하라. 그러면 민족들이 그 안에서 스스로 복을 빌 것이다. 그 안에서 자랑할 것이다.”
3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묵은 땅을 갈아라.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마라.
4 야훼를 위해 할례를 받아라. 너희 마음의 포피를 제거하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그렇지 않으면 내 분노가 불처럼 터져 나와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 너희 행동의 악함 때문에.”
“마음의 할례” — 신명기 10:16에서 처음 등장한 은유. 예레미야는 그것을 명령으로 만든다. 할례는 몸의 표식이지만, 야훼가 원하는 것은 내면의 변화다. 바울이 로마서 2:29에서 이 개념을 가져간다 — “마음의 할례”. 예레미야의 언어가 바울의 신학이 된다.
북방에서 오는 재앙
5 유다에 선포하라. 예루살렘에 들려라. “이 땅에서 나팔을 불어라!” 크게 외쳐라. “모여라! 요새 성읍들로 들어가라!”
6 시온을 향해 신호기를 세워라. 피신하라. 지체하지 마라. 내가 북쪽에서 재앙을, 큰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다. 민족들을 파괴하는 자가 길을 떠났다. 네 땅을 황폐하게 하러 나왔다. 네 성읍들이 쓰러질 것이다. 주민 없이.
8 이것 때문에 굵은 베를 걸쳐라. 통곡하고 소리 높여 울어라. 야훼의 맹렬한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아서지 않았다.
“사자가 수풀에서” — 예레미야서에서 사자는 바빌로니아의 상징이다. 실제로 바빌로니아의 건물들과 행렬 도로에는 사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바빌론에서 발굴한 이슈타르 문(Ishtar Gate, 기원전 575년경)의 유약 벽돌에 사자들이 행진한다. 예레미야가 사자라고 부른 것이 실제 사자를 새긴 나라였다.
예레미야의 탄식
9 “그 날에”
야훼의 말씀이다.
“왕의 마음도, 고관들의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제사장들은 경악할 것이다. 예언자들은 놀랄 것이다.”
10 그 때 내가 말했다.
“아, 주 야훼여! 당신이 정말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완전히 속이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것이다’고 하셨지만, 칼이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예레미야의 항변 — 거짓 예언자들이 “평강이 있을 것이다”라고 선포했는데, 야훼가 그것을 허용하신 것이 마치 야훼가 속이신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평생 싸울 질문이다 — 왜 거짓 예언자들이 말할 때 야훼는 막지 않으시는가? 예레미야서는 이 질문에 단순하게 답하지 않는다.
11 그 때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말할 것이다.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서 민둥산을 지나 내 딸 백성을 향해 불어온다 — 타작하거나 까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내게서 올 것이다. 이제 나도 그들에게 심판을 선고하겠다.”
구름처럼 올라오는 적군
13 “보라, 그가 구름처럼 올라온다. 그의 병거들은 폭풍처럼.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다. 우리에게 화가 있다. 우리가 망했다.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라. 구원받기 위해. 언제까지 네 안에 허무한 생각들이 머물겠느냐?
15 한 목소리가 단(Dan)에서 선포한다.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재앙을 알린다.
16 민족들에게 알려라. 보라, 예루살렘에 선포하라. 포위자들이 먼 땅에서 온다. 유다 성읍들을 향해 소리를 높인다.
17 들을 지키는 자들처럼 그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18 “네 길과 네 행실이 이것을 네게 행하였다. 이것이 네 악이다. 쓰디쓰다. 그것이 네 마음에 이르렀다.”
창자가 뒤틀린다
19 아, 내 창자여, 내 창자여! 나는 뒤틀린다. 아, 내 마음의 벽이여! 내 마음이 내 안에서 떤다. 잠잠히 있을 수 없다. 내 영혼이 나팔 소리를, 전쟁의 경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20 파멸에 파멸이 선포된다. 온 땅이 황폐하다. 내 장막들이 갑자기 파괴되었다. 내 천막 휘장들이 순식간에.
21 언제까지 내가 깃발을 보아야 하는가?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심판을 선포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그 심판을 마음으로 경험하는 자다. 이 두 역할이 그를 찢는다. 창자(내장)가 뒤틀린다는 표현 — 히브리어 메아이(מֵעַי)는 가장 깊은 내면, 감정의 자리다. 예레미야는 선포하면서 운다. 이것이 그를 “눈물의 예언자”로 만든다.
혼돈으로의 역행
22 “내 백성은 어리석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미련한 자녀들이다. 이해력이 없다. 악을 행하는 데는 지혜로우나 선을 행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23 나는 땅을 보았다. 보라, 혼돈이요 공허했다. 하늘을 보았다. 그 빛이 없었다.
24 산들을 보았다. 보라, 그것들이 흔들렸다. 모든 언덕들이 요동쳤다.
25 나는 보았다. 보라, 사람이 없었다. 하늘의 새들도 다 날아갔다.
26 나는 보았다. 보라, 기름진 땅이 광야가 되었다. 모든 성읍들이 야훼 앞에서,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서 무너졌다.
창세기 1:2의 역전 — “혼돈이요 공허하다(תֹּהוּ וָבֹהוּ, 토후 와보후).” 창조 이전의 상태다. 예레미야는 심판을 창조의 역전으로 본다. 새들이 없다, 사람이 없다, 빛이 없다 — 창세기 1장의 순서를 거꾸로 밟아간다. 이것은 문명의 붕괴를 넘어 창조 자체의 해체다. 그러나 야훼는 땅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단서가 붙는다.
27 야훼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온 땅이 황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끝내지는 않겠다.
28 이것 때문에 땅이 슬퍼할 것이다. 위의 하늘이 어두워질 것이다. 내가 말했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내가 작정했고, 돌이키지 않겠다.”
단장하는 자의 헛수고
29 온 성읍이 말 탄 자들과 활 쏘는 자들의 소리에 도망쳤다. 그들이 수풀로 들어갔다. 바위로 기어 올라갔다. 모든 성읍이 버려졌다. 거기 사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30 그리고 황폐한 자여, 네가 무엇을 하려느냐? 진홍색 옷을 입어도 금 장신구로 꾸며도 눈을 화장으로 크게 그려도 소용없다. 너는 헛되이 단장했다. 연인들이 너를 경멸했다. 그들이 네 생명을 찾는다.
31 내가 듣는다 — 처음 출산하는 여자처럼 떠드는 소리를. 딸 시온의 번뇌를 — 그녀가 손을 펼친다.
“아, 내게 화가 있다! 내 영혼이 살인자들 앞에 기진맥진하다.”
전쟁이 오는데 화장을 고치는 장면 —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에워쌀 때 외교적 책략을 꾸미는 유다 지도부에 대한 풍자다. 화장하고 장신구를 달아봤자 포위된 성읍이다. 단장으로 구원받는 자는 없다. 마지막 이미지는 딸 시온 — 산고의 고통 속에서 두 손을 펼치는 여자. 출산이 아니라 죽음의 진통이다.
다음 장 —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예루살렘 거리로 보내신다. 의로운 자 하나를 찾아보라고. 소돔의 열 명을 떠올리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