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장 두 길
표제 없음. 시편 전체의 머리말.
의인의 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조롱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2 그의 기쁨은 야훼의 율법에 있다. 밤낮으로 그 율법을 묵상한다.
3 그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아서 제철에 열매를 맺는다. 그 잎이 시들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한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 — 고대 근동에서 물은 생명 그 자체다. 관개 수로 옆에 심긴 나무는 가뭄에도 시들지 않는다. 에스겔 47장과 예레미야 17:8도 같은 이미지를 쓴다. 시편은 첫 편 첫 그림을 물가의 나무로 시작한다.
악인의 길
4 악인은 그렇지 않다. 바람에 날리는 겨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 때 서지 못할 것이다.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끼지 못할 것이다.
6 야훼께서는 의인의 길을 아신다.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문이다. 두 가지 길 —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 을 대비하는 이 구조는 신명기 30:15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문학적으로 펼친 것이다. 잠언 4장의 두 길 교훈과도 평행한다. 시편 전체는 이 두 길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모든 탄원, 찬양, 고통, 감사다.
히브리어 ‘아쉬레(אַשְׁרֵי)‘는 “복 있는”으로 옮기지만, 단수 감탄사에 가깝다. “오, 얼마나 행복한가!” 복의 선포이자 탄성이다. 이 단어로 시작하는 시편은 40편이 넘는다. 예수의 팔복(마태복음 5장)도 같은 구조와 같은 어감이다.
“묵상한다(하가, הָגָה)” — 소리 내어 중얼거리는 것이다. 고대 독서는 소리 없이 읽지 않았다.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은 밤낮으로 입술로 반복하며 몸에 새기는 것을 뜻한다.
다음 편 — 열방이 야훼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 왜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