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3장 발이 거의 미끄러질 뻔
표제: 아삽의 시. 시편 3권 시작.
결론부터
1 참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하십니다.
73편은 결론으로 시작한다. “참으로 하나님이 선하십니다” — 이것이 1절이다. 그러나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이 시편의 내용이다. 시인은 선언하고 나서 그 선언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고백한다. 구조적으로 역설이다. 욥기가 문학적 서사로 풀어내는 것을 73편은 시적으로 압축한다. 전도서의 주제와 욥기의 위기가 여기서 만난다.
거의 미끄러질 뻔
2 나는 거의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내 발이 거의 엎드러질 뻔했습니다.
3 이는 내가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인들의 번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4 그들이 죽을 때에도 아무 고통이 없습니다. 그들의 몸이 건강합니다.
5 그들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괴롭힘을 당하지 않습니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처럼 걸려 있고 폭력이 그들의 옷처럼 덮습니다.
7 그들의 눈이 기름으로 불거져 나오고 마음의 상상이 넘칩니다.
8 그들이 비웃고 악하게 말합니다. 교만하게 압제를 말합니다.
9 그들이 입을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가 땅을 두루 다닙니다.
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쪽으로 돌아서고 많은 물을 마십니다.
11 그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찌 알겠는가?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지식이 있겠는가?”
12 보라, 이들이 악인들이다. 항상 편안하고 재물을 늘려간다.
4-12절은 악인의 번영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다. 악인들이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4절), 고난을 당하지 않고(5절), 교만이 목걸이처럼 되어 있고(6절), 하늘에 입을 두고 혀가 땅을 다닌다(9절). 이 묘사가 정확할수록 시인의 위기가 깊어진다. 이것이 신학적 위기다 — 하나님이 선하다면 왜 이런가?
헛된 것이었을까
13 참으로 내가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이 헛되고 내 손을 씻어 결백하게 한 것이 헛된가?
14 나는 종일 괴로움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습니다.
15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주의 자녀들의 세대에 대해 배반한 것입니다.
13-14절이 이 시편의 신학적 위기의 정점이다. “내가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이 헛되고” — 이것이 의인이 고통받는 자의 가장 솔직한 표현이다. 도덕적 노력의 무의미함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15절에서 시인이 자제한다 —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 자제가 사고의 전환점이다.
성소에서 깨달음
16 내가 이것을 알려고 생각하였더니 그것이 내게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까지는. 그 때에 내가 그들의 마지막을 깨달았습니다.
18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셨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파멸로 던지십니다.
19 어찌 그리 갑자기 황폐해졌습니까. 그들이 공포로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20 주여, 깨어나실 때 꿈 같이 됩니다. 주께서 일어나실 때 그들의 환상을 멸시하십니다.
17절이 전환점이다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까지는.” 성소 안에서 시인은 시각이 바뀐다. 악인의 번영이 전부가 아님을 본다. 눈앞의 현실만 보면 위기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성소가 새로운 시각의 자리다. 기도와 예배가 신학적 재보정(再補正)의 공간이다.
나는 짐승이었습니다
21 내 마음이 쓸려 근심이 생겼으니 나는 속에서 찔렸습니다.
22 나는 그렇게 어리석고 무지했습니다. 주 앞에서 짐승이었습니다.
23 그래도 나는 항상 주와 함께입니다. 주께서 내 오른손을 잡으셨습니다.
24 주께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22절의 고백 — “나는 주 앞에서 짐승이었습니다” —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언어다. 자기 인식의 전환이다. 23절이 바로 이어진다 — “그래도 나는 항상 주와 함께입니다.” ‘그래도(아니, אֲנִי)’ — “나는 짐승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주와 함께다.” 이 역접이 이 시편의 핵심이다.
24절 “나중에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 49편 15절과 같은 언어다.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실 것이다.” 죽음 너머의 소망이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직접적인 부활 교리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동행이 죽음을 넘는다는 신뢰다.
하나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25 하늘에서 주 외에 내게 누가 있겠습니까? 땅에서도 주 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26 내 육체와 마음이 쇠할지라도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히 내 분깃이십니다.
27 주에게서 멀어지는 자들은 망합니다. 주를 떠나 음행하는 자들을 주께서 끊으십니다.
28 나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선입니다. 나는 주 야훼를 나의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나는 주의 모든 행하심을 전하겠습니다.
25-26절이 73편의 결론이자 시편 3권 전체의 신학적 심장이다. “하늘에서 주 외에 내게 누가 있겠습니까? 땅에서도 주 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 악인의 번영도, 의인의 고난도, 신학적 위기도 다 지나고 나서 남는 것이 이것이다. 하나님 자신이다. 분깃, 몫, 유업이 하나님이다. 이것이 1절의 “참으로 하나님이 선하십니다”가 뜻하는 것이다.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선입니다(טוֹב לִי קָרֳבַת אֱלֹהִים)” — 히브리어 ‘토브(선함)‘가 1절과 28절에 반복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가까이 함으로써 경험된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가까이에서 보인다.
다음 편 —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