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9장 주께서 나를 살피셨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나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통찰하십니다.
3 주께서 내가 다니고 누울 것을 살피시며, 내 모든 길을 익히 아십니다.
4 내 혀에 말이 오르기 전에 여호와여, 주께서 그것을 이미 다 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로 나를 둘러싸시고 주의 손을 내 위에 얹으셨습니다.
6 이 지식이 내게는 너무 놀랍습니다. 너무 높습니다. 내가 그것에 이를 수 없습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의 전지(全知)와 전재(全在)에 관한 가장 친밀한 시다. 전지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 적어도 이 시편에서는 — 깊이 알려진 것의 경험이다. “살피시고 아셨다” —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단순한 정보적 앎이 아니다. 친밀한 앎, 경험적 앎이다. 부부 사이의 앎에도 쓰이는 단어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아신다.
어디로 피하리이까
7 내가 주의 영을 피하려면 어디로 가리이까? 주의 얼굴을 피하려면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고, 스올에 자리를 깔아도 거기 계십니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실 것입니다.
11 내가 말한다 해도. “어둠이 나를 덮겠다.” 심지어 밤도 내 주위에서 빛이 됩니다.
12 주 앞에서는 어둠도 어둡지 않습니다. 밤이 낮처럼 밝습니다.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새벽 날개를 치며” — 아침의 빛살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미지다. 빛처럼 빠르게, 가장 먼 곳까지 도망쳐도 하나님의 손이 거기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감시의 이미지가 아니다 — “인도하시고”, “붙드실 것이다”는 보살핌의 언어다. 피할 수 없는 분이 동시에 붙드시는 분이다.
모태에서 알려지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만드셨습니다.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 나를 엮으셨습니다.
14 내가 주께 감사합니다. 나는 두렵고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주의 작품이 기이합니다. 내 영혼이 그것을 잘 압니다.
15 내가 은밀하게 만들어질 때, 땅 깊은 곳에서 정교하게 짜여질 때, 내 뼈들이 주께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16 주의 눈이 내 형질을 보셨습니다. 내 모든 날들이 아직 하나도 없었을 때, 이미 주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두렵고 놀랍게 만들어졌습니다(נוֹרָאוֹת נִפְלֵיתִי)” — 직역하면 “나는 두렵도록, 놀랍도록 만들어졌다”이다. 경이로움의 대상이 외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으로서의 인간 몸에 대한 경이. “땅 깊은 곳에서 정교하게 짜여질 때” — 땅이 창조 이전 원래 질료의 상징이다. 어머니의 자궁이 땅의 깊음처럼 표현된다.
하나님의 생각의 깊이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롭습니까. 그 합계가 얼마나 광대합니까.
18 내가 그것들을 세려 해도 모래보다 많습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 나는 아직 주와 함께 있습니다.
악인들을 향한 기도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악인들을 죽이시기를. 피 흘리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20 그들이 주를 욕하면서 말하고,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기 때문입니다.
21 여호와여,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주를 대적하는 자들을 내가 혐오하지 않겠습니까?
22 나는 그들을 극도로 미워합니다. 그들은 내 원수들이 되었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가장 불편한 단락이다. 친밀한 신앙고백이 갑자기 적들을 향한 저주로 바뀐다. 이 전환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 이것이 시편의 정직함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적들을 미워한다. 그 감정도 하나님 앞에 가져온다. 이 단락 없이 마지막 기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나를 살펴보소서”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펴보사 내 마음을 아소서.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을 아소서.
24 내게 혹시 악한 행위가 있는지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처음과 끝이 응답한다. 시편은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셨다”(1절)로 시작하여 “나를 살펴보소서”(23절)로 끝난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고백이 자발적인 점검의 요청으로 이어진다. “나를 시험하사” —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의 언어다. 알려지기를 원하는 자의 기도. 마지막 소원은 간단하다: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다음 장 — 환난의 날에 나를 건져 주소서. 폭력한 자들의 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