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살든지 죽든지
인사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Timothy · ㉸ 티모테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Philippi · ㉸ 필리피)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현대 그리스 북부) 지방의 도시로, 바울이 유럽에서 세운 첫 번째 교회가 있는 곳이다(사도행전 16장).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퇴역 군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이다. 작성지에 대해 세 가설이 경합한다.
로마 가택 연금설(통설): AD 60-62년. J.B. 라이트풋 의 1868년 빌립보서 주석 이후 표준 입장. 1:13의 “프라이토리움”과 4:22의 “가이사 집 사람들”이 로마 황궁을 가리킨다고 본다.
에베소설: 20세기 초 아돌프 다이스만(Adolf Deissmann) 이 제기. AD 53-55년경. 에베소-빌립보 거리(약 800km)가 로마(2,000km)보다 가깝고, 본문이 전제하는 잦은 왕래에 더 적합하다는 근거.
가이사랴설: 19세기 하인리히 파울루스(H.E.G. Paulus) 가 처음 제시. 사도행전 23-26장의 가이사랴 구금기(AD 57-59년)에 작성되었다는 견해. 현대에는 소수 입장.
빌립보서는 신약 서신 중 가장 따뜻하고 개인적인 편지 중 하나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분쟁의 조정이나 교리적 교정보다 감사와 기쁨을 먼저 표현한다. “감독들과 집사들” — 이 두 직책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은 신약에서 여기가 처음이다.
감사와 기도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너희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실 것이다” — 바울의 확신은 빌립보 신자들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과 완성에 근거한다. 시작한 이와 완성할 이가 같다. 인간의 지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이 보증이다.
8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 헬라어 스플랑크나는 내장, 복부를 뜻하는 단어다. 고대 세계에서 감정의 좌소는 심장이 아니라 내장(창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창자로” — 그리스도의 가장 깊은 애정으로 너희를 사모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진보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유익하게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써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저들은 내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3절 “온 시위대” — 로마 황실 근위대(프라이토리움)다. 바울은 황제의 근위대 병사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 기록한다. 감옥이 선교의 장이 된 역설이다.
15-18절은 바울의 심리적 성숙을 보여준다. 동기가 불순한 자들도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그들의 동기가 나쁘다고 복음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결과로 기뻐한다. 동기의 순수성과 복음의 효과를 분리한다.
살든지 죽든지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필요하리라.
25 내가 살 것을 확신하노니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것이 있는 줄 앎이라.
26 내가 다시 너희와 함께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리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이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1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바울 서신에서 가장 압축적인 인생 정의다. 죽음을 손실로 보는 모든 철학과 다른 방향이다. 죽음이 손실이 아닌 유익이 되는 것은 사는 것의 본질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는 것이 이익이면 죽음은 그 이익을 극대화한다.
23절의 “두 사이에 끼었으니” — 선택의 언어다. 살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것 사이. 그러나 바울은 결국 선택을 자신이 아닌 타인의 유익으로 결정한다.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자신의 선호가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필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