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항상 기뻐하라

한마음으로 서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Euodia · ㉸ 에보디아)를 권하고 순두게(Syntyche · ㉸ 신티케)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Clement · ㉸ 클레멘스)와 나의 다른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2절은 빌립보서 전체의 한마음 권고가 실제로 교회 내 분열을 배경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두 여성의 이름이다. 3절에서 바울은 이들을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단순한 신자가 아니라 동역자다. 그 동역자들 사이의 갈등이 한마음 권면의 배경이다.


항상 기뻐하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절 “항상 기뻐하라” — 바울이 이것을 쓸 때 그는 감옥에 있었다. 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었고 사형 선고 가능성이 있었다. 이 맥락에서 “기뻐하라”는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 기쁨을 전제한다. “주 안에서”가 핵심 수식어다. 기쁨의 조건이 환경이 아니라 관계다.

6-7절은 염려 → 기도 → 평강의 흐름이다. 염려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온다. 이 평강은 이해를 넘어선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것을 생각하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이든지 경건하며, 무엇이든지 옳으며, 무엇이든지 정결하며, 무엇이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이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8절의 목록은 신약 성경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형태다.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 받을 만한 것, 칭찬 받을 만한 것. 이 목록은 구체적 덕목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제시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바울의 인지 윤리학이다.

9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모델로 내세운다.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인물을 따르라는 것이다. 바울에게 이것은 오만이 아니다. 그는 3:12에서 “아직 얻지 못했다”고 고백한 사람이다. 다만 달리고 있는 방향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족을 배웠노라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13절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종종 맥락을 벗어나 사용된다. 원래 맥락은 스포츠 경기도, 사업의 성공도, 시험 합격도 아니다. 11-12절이 말하는 “자족”의 맥락이다. 배고픔에서도, 풍부에서도, 비천함에서도 “할 수 있다” — 곧 자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의 내용이 물리적 성취가 아니라 상황을 초월한 내적 만족이다.

11절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 “배웠노라”(헬라어: 에마톤)는 과거 경험을 통한 학습이다. 자족은 선천적 성품이 아니다. 훈련으로 얻어진다. 바울은 비천함과 풍부함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이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스토아 철학에서도 자족(아우타르케이아)은 최고의 덕목 중 하나였다. 바울은 스토아의 언어를 빌리지만 내용을 바꾼다. 스토아의 자족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아에서 온다. 바울의 자족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온다. 뿌리가 자아가 아니라 그리스도다.


마지막 인사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다 그러하느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22절 “가이사의 집 사람들” — 로마 황실 관련 종들과 해방 노예들, 혹은 넓게는 황실 행정 직원들을 가리킨다. 황제의 집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옥중 선교의 결실이 여기도 보인다. 황제의 경호원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1:13)는 것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