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시험, 말씀, 들음과 행함
인사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James)가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이다(갈 1:19).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고,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의회를 주재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주의 형제’가 아니라 ‘종’이라 부른다.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는 팔레스타인 밖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편지는 특정 교회가 아닌, 세상 전역에 흩어진 독자들에게 보내진 원형 서신이다.
시험을 기쁨으로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더라도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3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온전하고 완전하여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다.
야고보의 ‘시험(πειρασμός — 페이라스모스)‘은 외부에서 오는 박해와 고난을 먼저 가리킨다. 이 단어는 14절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내면의 욕심에서 비롯된 유혹이다. 같은 단어가 두 방향을 동시에 담는다. 고난이 단련의 도구가 된다는 이 사상은 로마서 5:3-4, 베드로전서 1:6-7과 나란히 놓인다.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6 그러나 의심 없이 믿고 구하여라.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바다 물결 같다.
7 그런 사람은 주님께 무엇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8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그 모든 길에서 불안정하다.
낮은 자와 높은 자
9 낮은 형제는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여라.
10 그러나 부자는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여라. 부자는 풀의 꽃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11 해가 뜨면 뜨거운 바람을 몰고 와 풀을 시들게 한다. 꽃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모양이 없어진다. 부자도 자기 길을 가다가 그렇게 시들어버린다.
이사야 40:6-8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 야고보는 이 구절을 직접 빌린다.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진다는 역설은 마리아의 노래(눅 1:52)와 같은 흐름이다.
시험의 뿌리
12 시험을 견디는 사람은 복이 있다. 시련을 이겨낸 후에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왕관을 받을 것이다.
13 아무도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라고 말하지 마라.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14 각 사람은 자기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는다.
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
야고보가 그리는 죄의 생애는 생물학적 은유다.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 죽음을 낳는다. 세 단계의 연쇄. 원인을 외부(신·운명·타인)에서 찾지 말라는 냉정한 인식론이다.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마라.
17 온갖 좋은 것과 온전한 선물은 모두 위로부터, 빛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아버지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18 그분은 자기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우리가 그의 창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빛의 아버지” — 당시 점성술적 세계관에서 하늘의 빛들은 신적 존재였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그 빛들의 아버지로 두면서, 동시에 그분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계절마다 위치를 바꾸는 별과 달리,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 최고신의 불변성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창조주로서 우리를 낳으셨다는 부성을 함께 강조한다.
들음과 행함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이것을 알아라. 모든 사람은 듣기를 빨리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고,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악을 넘쳐나는 악의를 내버리고, 너희 안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들여라. 그 말씀이 너희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22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23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
24 보고 나면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곧 잊어버린다.
25 그러나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잊지 않는다. 듣고만 있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어 그 행함으로 복을 받는다.
“자유롭게 하는 율법” — 율법을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해방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다. 시편 119편의 정신과 닿는다. 야고보에게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기준이 아니라, 지켜 행함으로써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26 누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혀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다.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경건은 이것이다 —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가운데 돌보고, 자기를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지키는 것.
야고보는 경건의 정의를 내린다. 예배 의식이나 신조가 아니다. 고아와 과부 — 고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두 계층 — 를 돌보는 것, 그리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다. 다음 장에서 야고보는 회당에서 부자를 우대하는 장면을 직접 비판한다. 경건의 정의가 2장의 논쟁을 준비한다.
다음 장 — 회당의 두 자리. 금반지를 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믿음을 죽이는 일임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