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 세상, 교만, 그리고 내일
싸움의 뿌리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서 나고 다툼이 어디서 나느냐? 너희 지체 안에서 싸우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원하지만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한다. 얻을 수 없으므로 다투고 싸운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가 없는 것이다.
3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쾌락에 쓰려고 잘못된 동기로 구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공동체 안의 갈등을 분석한다. 뿌리는 욕망(ἡδονή — 헤도네, 쾌락)이다. 영어 ‘hedonism’이 이 단어에서 왔다. 욕망이 만족되지 않으면 시기가 되고, 시기가 쌓이면 갈등이 된다. 야고보는 이 연쇄를 명확히 본다. “살인”은 문자적 의미일 수도 있고, 마태복음 5:21-22처럼 분노의 격화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해석이 갈려왔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
4 간음한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5 아니면 성경이 헛말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사모하신다.
6 그러나 더 큰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6절의 인용은 잠언 3:34다. 야고보가 이 구절을 인용하고,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5에서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신약에서 두 번 인용되는 잠언 구절이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긴장을 ‘간음’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구약의 전통을 따른다. 호세아, 에스겔에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간음으로 묘사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라
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여라. 마귀를 대적하여라. 그러면 마귀가 너희에게서 도망할 것이다.
8 하나님 가까이 가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 가까이 오실 것이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여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라.
9 슬퍼하고, 애도하고, 울어라. 너희 웃음을 슬픔으로, 너희 기쁨을 우울함으로 바꾸어라.
10 주 앞에서 낮추어라. 그러면 그분이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마라.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네가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수자가 아니라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12 입법자이면서 재판관이신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구원할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으신 분. 네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내일을 자랑하지 마라
13 들어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이러이러한 도시로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보내고 장사하여 이익을 보겠다”라고 말하는 자들아.
14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15 그 대신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아서 이것이나 저것을 하겠다”라고 해야 한다.
16 그런데 너희는 자만하며 으스댄다. 이런 자랑은 모두 악한 것이다.
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죄다.
13-14절의 상인 묘사는 생생하다. 실제 1세기 지중해 무역 세계의 단면이다. 야고보는 장사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주의 뜻이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지 않은 채 내일을 확신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안개의 비유는 시편 39:5-6, 욥기 7:7과 같은 계열이다. 야고보는 전도서의 허무주의와 닮은 언어를 쓰지만, 목적이 다르다. 허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살라는 것이다.
다음 장 — 부자들에게 울라고 명령하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농부의 인내를 주고, 병든 자에게는 기름 바름과 기도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