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 헛되고 헛되다
선언
1 전도자(Qohelet · ㉸ 코헬렛)의 말이다.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다윗의 아들이다.
‘전도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헬렛(קֹהֶלֶת)은 ‘모인 자들에게 말하는 사람’, 곧 교사 혹은 설교자를 뜻한다. 여성형 분사지만 남성 주어로 쓰인다 — 히브리 문학에서 드문 형태다. 이 책은 스스로를 솔로몬과 동일시하지만, 학자들 대다수는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4세기) 이후 작품으로 본다. 본문 안에 페르시아어 외래어가 여럿 포함된 것이 언어학적 단서다.
2 “헛되고 헛되다, 전도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הֶבֶל)은 본래 ‘입김’, ‘증기’, ‘숨결’이다. 눈에 보이는 순간 사라지는 것. 불잡으려 하면 없는 것. 이 단어가 전도서 전체에 38회 등장한다. 가장 농도 높은 신학 언어가 가장 물리적인 단어에서 온다.
해 아래에서
3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슨 유익한가?
4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온다. 땅은 영원히 있다.
5 해도 떠오르고 해도 지며, 그 곳으로 서둘러 돌아가고, 거기서 또 떠오른다.
6 바람은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온다.
7 모든 강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돌아가서 다시 흐른다.
8 모든 말이 피곤하다. 사람이 다 말할 수가 없다. 눈은 보아도 족하지 않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
‘해 아래(תַּחַת הַשֶּׁמֶשׁ — 타하트 하셰메쉬)‘는 코헬렛의 핵심 표현으로 이 책에 29회 등장한다.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 — 하늘 위를 보지 못하는 존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 자연의 순환이 아름다우면서도 피곤한 이유는 그것이 어디에도 닿지 않기 때문이다.
새것은 없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 것이니,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
10 무엇을 가리켜 ‘이것이 새것이다’라고 말하겠느냐? 우리보다 먼저 있었던 세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11 이전 세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 올 세대도 그들 다음에 올 자들에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의 소멸은 헤벨의 가장 쓴 형태다. 살아 움직였던 자들이 흔적 없이 지워진다는 것. 코헬렛은 불멸을 약속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본다.
지혜를 시험하다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13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지혜로 궁구하고 탐구하기로 마음을 다하였다. 이는 괴로운 것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인생에게 주시어 수고하게 하셨다.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다. 보라, 모두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רְעוּת רוּחַ)‘은 전도서에만 나오는 표현이다. 히브리어 직역으로는 ‘바람을 먹음’, 또는 ‘바람을 치심’.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는 수고. 코헬렛은 이것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15 “굽은 것은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은 셀 수가 없다.”
16 내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내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모든 자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지혜를 얻었다.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경험하였다.”
17 내가 마음을 다해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침과 어리석음도 알고자 했더니, 이것도 바람 잡는 것임을 알았다.
18 “지혜가 많으면 슬픔도 많고, 지식을 더하면 근심을 더한다.”
1장의 마지막 절은 일반 지혜 전통과 정반대다. 잠언은 지혜를 권한다. 코헬렛은 지혜도 결국 아픈 것임을 말한다. 이 긴장이 전도서와 잠언이 정경 안에서 나누는 대화다.
다음 장 — 전도자는 지혜를 넘어 쾌락을 시험한다. 집을 짓고 포도원을 만들며 재산을 쌓는다. 그리고 그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