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장 홀로보다 둘이

학대받는 자들

1 나는 다시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 있다. 그들에게는 위로하는 자가 없다.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 권력이 있다. 그들에게는 위로하는 자가 없다.

2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이미 죽은 자들을 더 행복하다 했고,

3 이 둘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해 아래서 행해지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를 더 낫다고 했다.

1절의 ‘위로하는 자가 없다’라는 구절이 두 번 반복된다. 학대받는 쪽에도, 학대하는 쪽에도. 코헬렛에게 학대는 단순히 악의 문제가 아니라 위로의 부재 문제다. 권력이 있는 자도, 눈물 흘리는 자도 모두 위로 없이 서 있다. 이 대칭이 섬뜩하다.


수고의 이유

4 내가 모든 수고와 모든 탁월한 일들을 보았더니, 그것은 사람이 이웃에게 시기 받는 것이었다. 이것도 헛되며 바람 잡는 것이다.

5 어리석은 자는 손을 잡고 자신의 살을 먹는다.

6 한 손의 편안함이 두 손 가득한 수고와 바람 잡는 것보다 낫다.

5절의 ‘자신의 살을 먹는다’는 관용 표현 — 게으름으로 자기를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6절은 균형을 이야기한다. 많이 가진 채 불안한 것보다, 조금 가진 채 평안한 것이 낫다. 코헬렛은 근면을 권하지도, 게으름을 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충분함’을 말한다.


혼자보다 둘이

7 나는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다.

8 혼자이고 동무도 없는 자가 있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다. 그런데 그의 모든 수고에 끝이 없다. 그의 눈은 부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를 위해 수고하며 내 영혼을 즐거움에서 빼앗고 있는가?” 이것도 헛되며 힘든 일이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 이는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기 때문이다.

10 넘어지면 한 사람이 그 동무를 일으킨다. 그러나 혼자인 자는 슬프다. 넘어질 때 일으켜 줄 자가 없다.

11 또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이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12 혼자이면 한 사람이 이길 수 있지만, 둘이면 그를 대적할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9–12절은 오늘날에도 결혼식과 공동체 서약에서 자주 인용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혼자 사는 것은 생존 전략으로도 불리했다. 코헬렛의 ‘둘이 낫다’는 윤리적 선언이기 이전에 생존의 관찰이다. 그러나 그 관찰이 결국 다른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정직하게 말해 준다.


왕의 무상함

13 더 이상 충고를 받지 않는 늙은 왕보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청년이 낫다.

14 청년은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기도 한다. 그가 자신의 왕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15 내가 해 아래를 걸어 다니는 모든 산 자들이 그 청년, 그 왕의 뒤에 설 것을 보았다.

16 그의 앞에 선 모든 백성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헛되며 바람 잡는 것이다.

14–16절은 요셉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 감옥에서 나와 통치자가 된 히브리 청년. 코헬렛은 그 성공 이야기에 뒤를 잇는다. 그 위대한 왕도 결국 잊혀진다. 백성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그의 이름은 사라진다.


다음 장 — 성전에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원과 말. 말이 많으면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