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 당신의 백성이 내 백성
흉년과 이주
1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룻기의 첫 문장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이 이야기가 놓인 시대를 단번에 알려 준다. 사사기의 끝과 사무엘서의 시작 사이, 이스라엘이 가장 어두웠던 시대. 그 어둠 속에 이 작은 이야기가 놓여 있다.
베들레헴(Bethlehem · ㉸ 베들레헴 — 유다 지파 지역, 현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 살던 한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Moab)으로 이사했다.
모압은 사해 동쪽 고원 지대다. 이스라엘에서 직선으로 강을 건너면 닿는 이웃 땅이었지만, 관계는 복잡했다. 신명기 23장 3절은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못 박는다. 그 땅으로 유다 가족이 이주하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출발이었다.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Elimelek)이었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Naomi)였다. 두 아들은 말론(Mahlon)과 기룐(Kilion)이었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 에브라다 사람들이었다. 모압 땅에 들어가 거기서 살았다.
이름이 이미 이야기를 앞당긴다. 엘리멜렉(אֱלִימֶלֶךְ)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이다. 나오미(נָעֳמִי)는 “즐거운, 기쁜”이라는 뜻이다. 말론(מַחְלוֹן)은 “병약한”, 기룐(כִּלְיוֹן)은 “소모, 끝남”으로 풀이된다. 이름들이 결말을 예고하는 셈이다.
세 번의 죽음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 두 아들이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하나는 오르바(Orpah · ㉸ 오르파), 다른 하나는 룻(Ruth)이었다. 거기서 대략 십 년을 살았다.
5 말론과 기룐도 둘 다 죽었다. 나오미는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채 혼자 남았다.
“말론과 기룐도 둘 다 죽었다.” 짧은 문장 하나가 열 해를 덮는다. 성경의 서술은 서두르지 않다가 핵심에서는 망설이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나오미
6 나오미가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땅에서 돌아가려 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7 살던 곳을 떠났다. 두 며느리도 그녀와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남편들과 나를 대했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빈다.”
9 “여호와께서 너희로 하여금 각각 새 남편을 만나 안식을 얻게 해 주시길 빈다.”
그녀가 그들에게 입맞추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10 두 며느리가 말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번의 설득과 두 갈래 길
11 나오미가 말했다.
“내 딸들아, 돌아가거라. 왜 나와 함께 가려 하느냐? 내 뱃속에 너희 남편이 될 아들이 있느냐?
12 돌아가거라, 내 딸들아. 나는 이미 너무 늙어 재혼할 수 없다. 설령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는다 해도,
13 그 아이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그를 위해 시집을 안 가고 그냥 있겠느냐? 아니다, 내 딸들아. 나는 너희 때문에 매우 슬프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나오미의 논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연혼(레비르 결혼, 신명기 25장 5-10절)’ 제도에 기대고 있다. 남편이 죽으면 그 형제가 과부를 아내로 맞아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야 한다. 나오미는 이 제도를 스스로 적용해 ‘내게는 이을 아들이 없다’고 말한다. 절망의 수사이지만, 나중에 보아스가 이 제도를 실제로 실행한다.
14 그들이 다시 소리를 높여 울었다. 오르바가 시어머니에게 입맞추고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붙어 있었다.
15 나오미가 말했다.
“네 동서는 그 민족과 그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당신의 백성이 내 백성
16 룻이 말했다.
“저를 떠나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나도 죽고, 거기 묻히겠습니다. 죽음으로 어머니와 나를 갈라놓는다면 모를까,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렇게 하시고 더하시기를 빕니다.”
이 선언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충성 서약 가운데 하나다. 모압 여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한다. 강요받은 것이 아니었다. 나오미는 세 번이나 돌아가라고 설득했다. 룻은 스스로 선택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더는 말리지 않았다.
베들레헴에 들어서다
19 두 사람이 함께 걸어 베들레헴에 이르렀다. 온 성이 그들로 인해 들썩였다. 여자들이 말했다. “이 분이 나오미 아닌가요?”
20 나오미가 말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마십시오. ‘마라(Mara — 쓴, 쓴맛)‘라고 부르십시오. 전능하신 이가 나를 몹시 쓰게 만드셨으니까요.
21 내가 가득 채워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나를 빈 몸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나를 대적하셨고, 전능하신 이가 나를 치셨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이름을 바꿔달라 한다. 나오미(기쁨)에서 마라(쓴맛)로. 자기 삶의 무게를 이름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름 바꾸기는 성경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다. 그러나 나오미의 이름 변경은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상실이 강요한 변화였다.
22 나오미가 모압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땅에서 돌아왔다.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 이른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라는 한 줄이 다음 장 전체를 예비한다. 룻기의 시간은 추수철이다. 빈 몸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들판이 열리려 한다.
다음 장 — 룻이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다. 그 밭의 주인 이름이 보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