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표지

요나 1장 도망치는 예언자

일어나 가거라

1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Jonah)에게 왔다. 아밋대(Amittai)의 아들이었다.

2 “일어나라. 큰 성읍 니느웨(Nineveh · ㉸ 니네베)로 가거라. 그 성읍을 향해 외쳐라. 그들의 악이 내 앞에 올라왔다.”

요나 아밋대의 아들 — 열왕기하 14:25에 단 한 번 언급되는 예언자다. 여로보암 2세(BC 793-753년) 시대에 활동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Galilee)가드헤벨(Gath-Hepher)이 그의 고향이다(열왕기하 14:25). 이것이 성경 전체에서 이 예언자에 대해 알려주는 전부다.

니느웨 — 아시리아(Assyria) 제국의 수도.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Mosul) 강 건너편에 해당한다. 고대 세계의 초강대국 수도였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니느웨는 곧 아시리아이고,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BC 722년) 제국이다. 요나가 받은 명령은 그 원수의 도시로 가라는 것이었다.


다시스로

3 요나가 일어났다. 여호와의 낯을 피해 다시스(Tarshish · ㉸ 타르시스)로 도망치러 갔다. 욥바(Joppa · ㉸ 야파)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찾았다. 요금을 내고 그 배에 올랐다. 여호와의 낯을 피해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 했다.

다시스 — 정확한 위치는 논란이다. 스페인의 타르테소스(Tartessos)라는 견해가 유력하지만, ‘먼 서쪽 끝’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지중해 서쪽 끝이다. 니느웨는 동쪽이다. 요나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여호와의 낯을 피해 — 두 번 반복된다. 본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요나가 단순히 위험을 피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현존 자체를 피하려 했다. 고대인들에게 신의 얼굴을 피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 밖으로 나간다는 뜻이었다. 욥바에서 서쪽 배를 탄다는 행위 자체가 신의 관할 밖으로 나가려는 몸짓이었다.


바다 위의 폭풍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던지셨다. 큰 폭풍이 바다에 일었다. 배가 부서질 것 같았다.

5 사공들이 두려워했다. 각자 자기 신에게 부르짖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바다에 던졌다.

요나는 배 밑 선창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들었다.

깊이 잠들었다 — 히브리어 ‘라담’(וַיֵּרָדַם)은 깊은 혼수 상태의 잠을 가리킨다. 요나의 잠은 피로한 자의 잠이 아니다. 주변의 위기와 단절된, 도피의 잠이다. 선원들은 살기 위해 소리치는데, 예언자는 혼자 가장 깊은 곳에서 자고 있다.

6 선장이 그에게 왔다. “왜 자고 있소? 일어나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혹시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소.”

7 선원들이 서로 말했다. “자, 제비를 뽑아서 이 재앙이 우리에게 누구로 인해 왔는지 알아봅시다.” 그들이 제비를 뽑았다.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다.

8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이 재앙이 우리에게 누구로 인해 왔는지 알려주시오. 당신의 일이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민족이오?”

9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오.”

10 그러자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그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당신이 이 일을 했소?” — 그가 여호와를 피해 달아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오 — 아이러니가 극적이다. 요나가 도망치면서 내뱉는 첫 자기소개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두려워했다면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이교도 선원들은 두려워서 신에게 부르짖는데, 하나님을 안다는 예언자는 자고 있었다.


바다에 던지라

11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잠잠해지겠소?” 바다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12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너희에게 잠잠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나로 인해 너희에게 왔다는 것을 내가 아오.”

13 그래도 사람들이 육지로 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바다가 그들을 향해 점점 더 거세졌기 때문이다.

14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여, 이 사람의 목숨으로 인해 우리가 망하지 않게 하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여호와여, 당신이 뜻하신 대로 하셨나이다.”

15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다. 바다의 노함이 그쳤다.

이교도 선원들 —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올바로 행동하는 것은 이교도들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요나를 죽이지 않으려 했다. 버티다가 방법이 없을 때 던졌다. 던지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이 대조가 요나서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다. 이방인은 회개하고, 선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니느웨는 돌아서는데 — 예언자 혼자 끝까지 좁다.

16 그러자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했다.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세웠다.


큰 물고기

17 여호와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 삼 일 삼 야를 있었다.

큰 물고기 — 히브리어 원문은 ‘달 가돌(דָּג גָּדוֹל)’, 그저 ‘큰 물고기’다. 고래라는 단어는 없다. 마태복음 12:40의 그리스어 ‘케토스(kētos)‘가 후대에 ‘고래’로 번역되면서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본문 자체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인지 말하지 않는다. 본문의 관심은 물고기의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하나님이 도망치는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삼 일 삼 야 — 마태복음 12:40과 16:4에서 예수는 이것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표적으로 인용한다.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삼 일 삼 야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땅 속에 삼 일 삼 야 있을 것이다.” 요나서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도망치는 예언자의 이야기가 기독교 신학에서 부활의 예표가 된 것이다.

다음 장 —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가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