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4장 박 넝쿨 아래서

요나의 분노

1 요나는 크게 기분이 나빴다. 분노했다.

2 그가 여호와께 기도했다.

“여호와여, 이것이 내가 내 고향에 있을 때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당신이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크시며, 재앙 내리는 것을 돌이키시는 분이신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여, 이제 내 생명을 내게서 가져가소서.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요나의 신학 고백 — 2절에서 요나가 인용하는 것은 출애굽기 34:6-7의 여호와의 자기 선언이다. “나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 공식 중 하나다. 요나는 이 공식을 알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는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실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 요나가 도망친 이유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자비가 원수에게까지 미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나는 신학을 알았다. 그 신학이 싫었다. 하나님의 보편적 자비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것이 요나가 서 있는 자리다.

4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성읍 동쪽에 앉아

5 요나가 성읍을 나가 성읍 동쪽에 앉았다. 거기서 자신을 위해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성읍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려고.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셨다. 요나 위로 올라가게 하셨다. 그것이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그의 불편함을 없애 주었다.

요나가 그 박 넝쿨 때문에 크게 기뻐했다.

박 넝쿨 — 히브리어 ‘기카욘(קִיקָיוֹן)‘이다. 어떤 식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피마자(아주까리), 조롱박, 혹은 다른 넝쿨 식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식물의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계속 뭔가를 ‘예비’하신다 — 큰 물고기(1:17), 박 넝쿨(4:6), 벌레(4:7), 더운 동풍(4:8). 이 모든 예비가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7 하나님이 새벽이 오를 때 벌레를 예비하셨다. 벌레가 박 넝쿨을 쳤다. 박 넝쿨이 말랐다.

8 해가 뜰 때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다. 해가 요나의 머리에 내리쬐었다. 그가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가 죽기를 구하며 말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너를 아꼈으니

9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박 넝쿨 때문에 화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말했다. “예, 죽어도 좋을 만큼 화가 납니다.”

10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은 이 박 넝쿨을 아꼈다.

11 그런데 나는 오른손과 왼손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 넘고 짐승도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지 않겠느냐?”

이것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 요나서는 질문으로 끝난다. 대답 없이. 요나가 뭐라고 했는지, 성읍이 어떻게 되었는지, 요나가 돌아섰는지 —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독자가 그 질문을 붙들고 가도록 설계된 결말이다.

오른손과 왼손을 분간하지 못하는 — 도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본다. 혹은 도시 전체의 무지와 혼돈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십이만 명은 고대 도시로서는 거대한 숫자다. 하나님은 그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박 넝쿨과 니느웨 — 논리 구조가 선명하다. 요나는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식물이 죽자 화를 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도시와 사람들을 아끼신다. 요나의 좁음과 하나님의 넓음이 이 대조에서 드러난다. 요나서는 교훈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두 개의 반응을 나란히 놓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요나서의 신학 — 이 책은 BC 8-5세기 사이 어느 시점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한(BC 722년) 이후, 이스라엘 신학 안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라는 닫힌 신학이 강화될 수 있었다. 요나서는 그 닫힘에 맞선다. 하나님의 자비는 국경을 모른다. 원수도 회개하면 아끼신다. 이것이 이 짧은 책이 수천 년 동안 읽혀 온 이유다.

역사적 니느웨 — BC 612년에 메대-바벨론 연합군이 니느웨를 함락시켰다. 도시는 철저하게 파괴되어 그 위치조차 잊혔다. 1845년 영국의 오스틴 헨리 라야드(Austen Henry Layard)가 이라크 북부에서 발굴을 시작하여 니느웨와 인근의 니므루드를 찾아냈다. 산헤립(Sennacherib) 왕의 궁전,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왕의 도서관(약 3만 점의 점토판)이 발굴되었다. 나훔서의 묘사가 고고학 발굴 자료와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