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장 음란한 두 자매
이혼한 아내
1 “만일 남자가 그의 아내를 내보내고 그녀가 그를 떠나 다른 남자의 것이 되면 그가 그녀에게 돌아오겠느냐? 그 땅이 더럽혀지지 않겠느냐? 그런데 너는 많은 연인들과 몸을 팔았다. 그리고 내게 돌아오려 한다.”
야훼의 말씀이다.
신명기 24:1-4의 이혼법 — 한번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아내는 다시 데려올 수 없다. 그런데 야훼는 이스라엘을 다시 데려오려 하신다. 율법이 금지하는 것을 야훼 스스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구조다 — 법을 넘어서는 사랑. 호세아가 창녀 고메르를 다시 사들이는 이야기와 같은 신학이다.
2 “네 눈을 들어 민둥한 곳을 보아라. 너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느냐? 길가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광야의 아랍인처럼. 네 음란함과 네 악으로 땅을 더럽혔다.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다. 늦은 비가 없었다. 그러나 너는 창녀의 이마를 가졌다. 부끄러움을 거부했다.
4 그런데 지금 너는 내게 외치지 않느냐? ‘아버지여, 당신은 내 젊은 날의 친구입니다.
5 당신이 영원히 노하겠습니까? 끝까지 진노를 품겠습니까?’ 보라, 이것이 네가 말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악한 것들을 행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다 했다.”
북이스라엘의 이야기
6 요시야 왕 때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배신하는 이스라엘이 한 일을 보았느냐? 그녀는 모든 높은 산 위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 가서 거기서 몸을 팔았다.
7 그 모든 것을 한 다음에 그녀가 내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배신하는 자매 유다가 그것을 보았다.
8 내가 배신하는 이스라엘을 쫓아내고 이혼 증서를 그녀에게 준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간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 그녀의 배신하는 자매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도 역시 나가서 몸을 팔았다.
9 그녀는 그 음란함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그래서 땅을 더럽혔고, 돌과 나무로 간음했다.
10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배신하는 그녀의 자매 유다는 온 마음으로 내게 돌아오지 않고, 다만 거짓으로만 돌아왔다.”
야훼의 말씀이다.
두 자매 이야기는 에스겔 23장에서 더 길고 노골적으로 반복된다 — 오홀라(Oholah)와 오홀리바(Oholibah),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예레미야의 버전은 더 짧지만 신학적으로 날카롭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멸망한 것을 유다가 눈으로 목격했다. 그것을 경고로 삼았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같은 길을 갔다. 더 나쁜 것은, 진정으로 돌아오지 않고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거짓으로만” 이행했다는 진단이다.
”돌아오라”는 부르심
11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배신하는 이스라엘이 배신하는 유다보다 더 의롭다는 것이 밝혀졌다.
12 가서 북쪽을 향해 이 말씀들을 외쳐라.
‘배신하는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는 네게 진노를 쏟지 않겠다. 나는 자비로운 자다. 나는 영원히 노여움을 품지 않겠다.’”
야훼의 말씀이다.
13 “다만 네 죄악을 인정하라. 네가 야훼 너의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것을. 네 길을 이방인들에게 흩어놓았다는 것을.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야훼의 말씀이다.
기원전 627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이미 95년이 지났다. 백성들은 앗시리아 땅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흩어진 백성에게 “돌아오라”는 부르심이 간다. 지리적 귀환인가, 신학적 귀환인가 — 예레미야에게는 분리되지 않는다.
아들들아, 돌아오라
14 “배신하는 자녀들아, 돌아오라.”
야훼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데려갈 것이다 — 한 성읍에서 하나, 한 씨족에서 둘. 시온으로 데려올 것이다.
15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이해로 먹일 것이다.
16 그 날들에, 너희가 땅에 많아지고 번성할 때”
야훼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야훼의 언약궤’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다.
17 그 때에 예루살렘을 야훼의 왕좌라 부를 것이다. 모든 민족이 거기, 예루살렘의 야훼의 이름으로 모일 것이다. 다시는 자기 마음의 악한 완고함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18 그 날들에 유다 집이 이스라엘 집과 함께 걸어올 것이다. 북방 땅에서 함께 올 것이다. 내가 너희 조상에게 유산으로 준 땅으로.”
언약궤가 더 이상 그리워지지 않는다는 예언 — 이것은 충격적인 발언이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신앙의 최고 상징이었다. 예레미야는 그것보다 더 큰 것, 야훼의 임재 자체가 예루살렘에 충만할 날을 가리킨다. 신약의 관점에서 이것은 성전 없이 이루어지는 예배를 향한 예언으로 읽힌다(요한 4:21-24).
아비를 부를 줄 알았는데
19 “그런데 내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자녀들 중에 두고 아름다운 땅, 만국의 아름다운 유산을 주겠는가?’ 그리고 나는 말했다. ‘너희는 나를 아버지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내게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20 정말로, 아내가 그 친구를 배신하듯이 이스라엘 집도 나를 배신했다.”
야훼의 말씀이다.
21 민둥한 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스라엘 자녀들의 울음과 간청의 소리.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구부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하나님 야훼를 잊었기 때문이다.
22 “배신하는 자녀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신을 고칠 것이다.”
“우리가 왔습니다. 당신께. 당신은 우리 하나님 야훼이십니다.
23 정말로 산들의 소동은 헛것입니다. 수많은 산들에서의 소리는 헛것입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 야훼 안에 있습니다.
24 그러나 수치스러운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수고를 삼켜 버렸습니다 — 그들의 젊은이들과 양 떼들, 소 떼들, 아들들과 딸들.
25 우리는 수치 속에 눕겠습니다. 우리의 창피가 우리를 덮을 것입니다. 우리가 야훼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 우리와 우리 아버지들, 우리 청년 시절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야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장의 마지막은 회개의 고백 형식이다. 누가 말하는가 — 야훼가 이스라엘의 입에 넣어주신 회개의 말들. 돌아오라는 부름 다음에, 돌아온 자가 할 말을 야훼가 먼저 쓰신다. 예레미야서는 심판과 회복을 번갈아 놓는다. 이 장이 그 리듬을 처음으로 보여준다.
다음 장 — 북쪽에서 침략자가 내려온다. 땅이 황폐해진다. 예레미야의 창자가 비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