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장 의로운 자 하나를 찾아라

거리를 살피는 자

1 “예루살렘 거리들을 누벼라. 살펴보고 알라. 그 광장들을 찾아보아라. 공의를 행하는 자를, 진리를 추구하는 자를 하나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겠다.”

2 “야훼의 살아 계심으로”라고 맹세할지라도 그들은 실제로 거짓으로 맹세한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흥정한 이야기와 구조가 같다(창세기 18:22-33). 열 명에서 하나로 내려갔다. 여기서 야훼는 단 하나를 찾으신다. 그 하나도 없다. 예레미야가 쓴 가장 혹독한 진단이다. 아나톨리아의 허탈함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직접 보고 들은 자의 증언이다.

3 야훼여, 당신의 눈이 진리를 바라보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들을 치셨으나 그들은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소멸하셨으나 그들은 교훈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얼굴을 바위보다 더 굳게 했습니다. 돌아오기를 거부했습니다.

4 나는 말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은 미련하다. 야훼의 길을, 그들의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

5 내가 위대한 자들에게 가서 그들과 말할 것이다. 그들은 야훼의 길을, 그들의 하나님의 규례를 알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함께 멍에를 부수었다. 띠를 끊었다.

예레미야는 처음에 무지를 변명으로 내세운다 — 가난한 자들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배운 자들에게 가도 마찬가지다. 무지가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문제였다. 지식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쁜 배신이다.


사자, 늑대, 표범

6 그러므로 수풀의 사자가 그들을 칠 것이다. 저녁에 광야의 늑대가 그들을 황폐하게 할 것이다. 표범이 그들의 성읍들을 향해 지킬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찢길 것이다. 그들의 죄가 많고, 그들의 배신들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들이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했다. 내가 그들을 배부르게 먹였을 때 그들이 간음하고, 창녀의 집으로 몰려갔다.

8 그들은 잘 먹인 말처럼 이웃의 아내를 향해 울부짖었다.

9 내가 이것들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느냐?”

야훼의 말씀이다.

“이런 민족에게 내 영혼이 복수하지 않겠느냐?”


포도나무를 벗기는 자

10 “그 성벽들로 올라가서 파괴하라. 그러나 완전히 끝내지는 마라. 그 가지들을 제거하라. 야훼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1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나를 완전히 배신했다.”

야훼의 말씀이다.

12 그들이 야훼를 부인하고 말했다.

“그가 아니다.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는다. 칼도, 기근도 우리가 보지 않을 것이다.

13 예언자들은 바람에 불과하다. 말씀이 그들 안에 없다. 그들에게 그대로 되게 하라.”

“야훼가 아니다” — 이것이 실용적 무신론의 언어다. 야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가 신경 쓰지 않는다. 재앙은 없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바람”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는 이 신학에서 나온다.


말씀이 불이 되리라

14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이 말씀들을 말했기 때문에 보라, 내가 내 말씀을 네 입에 불로 만들겠다. 이 백성을 나무로 만들겠다. 불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15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너희에게 먼 나라에서 한 민족을 데려올 것이다.”

야훼의 말씀이다.

“그것은 굳건한 민족이다. 오래된 민족이다. 네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는 민족이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쓰는 민족이다.

16 그들의 화살통은 열린 무덤 같다. 그들은 모두 용사들이다.

17 그들이 네 수확물과 네 양식을 먹을 것이다. 네 아들들과 딸들을 먹을 것이다.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을 것이다.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먹을 것이다. 네가 의지하는 요새 성읍들을 칼로 무너뜨릴 것이다.”

언어를 알 수 없는 민족 — 고대 근동에서 이방 언어는 혼돈의 상징이었다. 이사야 28:11도 같은 이미지를 사용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2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방언을 설명한다. 예레미야의 침략자 비유가 방언의 신학적 근거가 된다 — 먼 길을 돌아서 이어지는 구절들이다.


그러나 완전히 끝내지 않겠다

18 “그러나 그 날들에도 내가 너희를 완전히 끝내지는 않겠다.”

야훼의 말씀이다.

19 “그리고 그들이 ‘왜 우리 하나님 야훼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고 말할 때, 너는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가 야훼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듯이, 그러므로 너희 땅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들을 섬길 것이다.’”


눈도, 귀도 없는 백성

20 야곱 집에 이것을 선포하라. 유다에 들려라.

21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분별한 백성아, 이것을 들으라.

22 야훼가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않느냐? 내가 모래를 바다의 경계로 놓았다. 영원한 규례로, 그것을 넘지 못한다. 파도가 일어도 이기지 못한다. 소동을 일으켜도 넘지 못한다.

23 그러나 이 백성의 마음은 거역하고 반역하는 마음이다. 그들이 돌아서서 떠나갔다.

24 그들은 마음속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맞추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야훼를 두려워하자. 추수를 위해 정해진 주들을 지켜주시는 분을.’”

바다의 경계 — 고대 근동 신화에서 바다는 혼돈의 힘이다. 그 혼돈을 모래로 경계 짓는 야훼. 그런데 이 경계를 아는 바다가, 경계를 모르는 이스라엘보다 야훼를 더 잘 “섬기는” 셈이 된다. 자연이 야훼를 순종하는데 사람이 거부한다 — 이사야 1:3(“소는 그 주인을 알고”)의 같은 아이러니다.


악인들이 살찌다

25 “너희의 죄악이 이것들을 막았다. 너희의 죄들이 너희에게서 좋은 것을 막았다.

26 내 백성 가운데 악인들이 발견된다. 그들은 새를 잡는 자처럼 몸을 숨기고 기다린다. 그들은 덫을 놓는다. 그들은 사람들을 잡는다.

27 새들이 가득한 새장처럼 그들의 집은 속임수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이 위대하고 부자가 되었다.

28 그들이 살지고 번질번질해졌다. 그들은 악한 일에서 뛰어넘어갔다. 그들은 고아의 대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번창했는데도. 가난한 자의 권리를 판결하지 않았다.

29 내가 이것들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느냐?”

야훼의 말씀이다.

“이런 민족에게 내 영혼이 복수하지 않겠느냐?

30 이 땅에 두렵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31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한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손으로 다스린다. 내 백성은 그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끝에 너희가 어떻게 하겠느냐?”

“내 백성은 그것을 사랑한다” — 거짓 예언자들이 번창하는 이유. 사람들이 달콤한 말을 원하기 때문이다. 공급이 있는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을 원하는 대중을 함께 고발한다. 디모데후서 4:3 “그들이 건전한 교훈을 견디지 못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쌓아올릴 것이다”가 이 구조를 반복한다.

다음 장 — 다가오는 포위군을 피해 도망가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