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자유와 성령의 열매

자유 안에 서라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울은 “종의 멍에”라는 표현을 1절에 쓴다. 이것은 출애굽 언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멍에에서 해방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갈라디아인들은 스스로 다시 멍에를 메려 한다.

“은혜에서 떨어진 자”(ἐξεπέσατε, 엑세페사테) — 이 표현이 구원의 영구적 상실을 뜻하는지, 아니면 은혜의 원리에서 벗어나 율법의 원리로 이동한 것을 뜻하는지 신학적 논쟁이 있다. 16세기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와 17세기 알미니안주의 진영은 진정한 신자가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의 본문 근거로 삼았다. 16세기 칼뱅 과 개혁주의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에 따라, 이 본문이 율법주의로의 신학적 이동을 가리킨다고 읽는다. 문맥은 후자에 가깝다 — 할례를 받아 율법 체계로 진입하는 것은 은혜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작은 누룩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란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다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없어졌으리니,

12 너희를 요란하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2절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날카로운 풍자 표현 중 하나다. 할례를 강요하는 자들이 차라리 완전히 잘라버리라는 것이다. 할례에서 더 나아가 신체 절제를 행하는 이방 종교(키벨레 사제들의 자기 거세)를 빗댄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바울의 분노가 이 한 문장에 압축된다.


자유의 방향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바울의 자유는 목적이 있는 자유다. 율법의 강제로부터의 자유가 곧 모든 섬김으로부터의 자유는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사랑의 종살이를 가능하게 한다. 역설이다. 강제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야 자발적 섬김이 가능해진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를 나열하지만 단수(카르포스)다. 아홉 개의 과일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 육체의 “일”(에르가)은 복수인데 성령의 “열매”(카르포스)는 단수다. 이 문법적 대조는 의도적이다. 육체의 일들은 파편화된 노력이고, 성령의 열매는 하나로 연결된 생명에서 나온다.

아홉 가지를 셋씩 묶으면 구조가 드러난다. 첫 셋(사랑·희락·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 셋(오래 참음·자비·양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마지막 셋(충성·온유·절제)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 구조가 확실히 바울의 의도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성령의 열매에 대해 법이 간섭할 것이 없다. 율법은 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성령이 생산하는 것들은 막을 이유가 없다. 율법 준수와 성령의 열매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다만 성령의 열매는 율법 준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