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잠자는 자들과 휴거
거룩함으로 살라
1 끝으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그와 같이 행하되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행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몸을 다스릴 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보응하시는 자이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이토록 명확하게 지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거룩함(ἁγιασμός, 하기아스모스)이 그것이다. 추상적인 신학이 아니라 성적 행동 규범으로 즉각 구체화된다.
이방인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성적 기준은 유대-기독교 공동체와 달랐다. 신전 매춘, 노예와의 성관계, 축제의 혼음이 일상화된 문화에서 바울이 구별된 삶을 요구한 것이다.
4:8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성적 윤리를 어기는 것이 인간적 규칙 위반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배반이라는 논리다. 윤리의 근거를 신학에 놓는다.
형제 사랑과 손수 일함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에 대하여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과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4:9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 θεοδίδακτοι(테오디닥토이),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신 자들”이라는 헬라어 합성어다. 신약에서 이 단어가 나오는 유일한 곳이다. 성령을 통한 직접적 교육이라는 개념을 암시한다.
4:11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 이 명령이 5:14, 데살로니가후서 3:6-15에서 반복된다. 데살로니가 공동체 일부가 종말 기대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림이 곧 올 것이라면 왜 일하느냐는 논리다. 바울은 그 논리를 거부한다.
잠자는 자들에 대하여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4:13-18은 신약에서 가장 많이 논쟁된 종말론 본문 중 하나다. 핵심 단어는 17절의 “끌어올려”다. 헬라어 ἁρπαζω(하르파조)는 잡아채다, 빼앗아가다는 뜻의 격렬한 동사다. 이것이 라틴어 성경(불가타)에서 rapiemur(라피에무르)로 번역되었고, 여기서 영어 rapture(랩처)가 나왔다.
“휴거”(携擧) 교리는 19세기 아일랜드 신학자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다비는 이 본문을 근거로 성도들이 대환난 이전에 하늘로 들림받는다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종말론을 전개했다. 이 해석은 특히 미국 복음주의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학자 다수는 다비의 읽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이미지는 당시 로마 황제나 고위 관료가 도시를 방문할 때 시민들이 성문 밖으로 나가 영접하는 관습(ἀπάντησις, 아판테시스)과 유사하다. 즉 신자들이 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하러 나갔다가 함께 땅으로 돌아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4:13 “자는 자들” — 죽은 자를 잠에 비유하는 표현은 유대 문학과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공통이다. 부활을 전제하기 때문에 “잠”이 가능하다. 죽음이 끝이면 잠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단락이 쓰인 배경: 데살로니가 교인 일부가 죽었다.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되는가라는 실제적 슬픔이 이 편지를 낳았다. 바울의 대답은 신학이자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