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장 에스라의 통곡

소식이 왔다

1 이 일들이 다 끝난 후에 방백들이 내게 와서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이집트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신들을 더럽혔습니다.

2 그들이 그 딸들을 취하여 자신들과 그들의 아들들의 아내로 삼아 거룩한 씨를 그 땅의 이방 민족들과 섞었으며 방백들과 지도자들이 이 죄과에 앞장섰습니다.”

“거룩한 씨” — 이 표현은 이사야 6:13에서 유래한다. 에스라서에서만 이렇게 쓰인다. 씨앗 언어다. 타협 없이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이방 결혼의 문제는 인종적 혐오가 아니라 신앙적 순수성의 문제였다 — 구약 율법이 이방 결혼을 금지한 이유는(신명기 7:3-4) 이방 신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네 아들들을 유혹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다.” 에스라의 위기감은 여기에 있었다. 70년 포로에서 돌아와 겨우 성전을 세웠는데, 다시 신앙의 혼합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장면은 신학적 긴장을 품는다. 룻기의 룻은 이방 여인이었다. 모압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했고, 다윗의 증조모가 됐다. 같은 율법 전통 안에서 에스라의 강경한 입장과 룻기의 포용적 흐름이 공존한다. 본문은 그 긴장을 해결하지 않는다.

3 내가 이 일을 듣고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고 기가 막혀 앉았다.

4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는 자들이 다 모여 내게로 왔다. 나는 저녁 제물을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아 있었다.

에스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옷을 찢고 앉아 있었다. 저녁까지. 이 침묵이 이 장면에서 가장 강렬한 부분이다. 지금 막 위험한 4개월 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말 대신 몸으로 반응했다. 옷을 찢는 것은 극도의 슬픔과 수치의 표현이다. 내 죄가 아니었는데 자신의 옷을 찢었다.


에스라의 기도

5 저녁 제물을 드릴 때에 내가 굴욕 가운데서 일어나 내 찢긴 겉옷과 속옷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내 하나님 여호와를 향해 두 손을 펴고

6 말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 감히 내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나이다. 이는 우리의 죄악이 많아 우리 머리 위에 넘치고 우리의 허물이 커서 하늘에 닿았음이니이다.

7 우리 조상들의 날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도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이 이 땅의 왕들의 손에 넘겨져 칼과 사로잡힘과 노략질과 얼굴의 부끄러움을 당하였사오니 오늘과 같습니다.

8 이제 잠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입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남은 자들을 위해 의지할 곳을 주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에서 잠시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9 우리는 종이오나 하나님이 우리가 종 됨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페르시아 왕들 앞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게 하사 우리에게 소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그 황폐한 것을 수축하게 하시고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 후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이까? 우리가 주의 명령을 저버렸나이다.

11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들어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그 땅의 더러움이 그 이방 민족들의 더러움이 되어 거기 가득하고 사방이 불결한 더러움으로 가득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12 이제 너희 딸들을 그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해 취하지 말며 그들의 평안을 영원히 구하지 말고 그들의 번영을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하여 그 땅의 좋은 것을 먹으며 또 그 땅을 자손에게 영원히 물려주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를 인하여 이러한 일이 다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 주께서는 우리 죄악 이하로 벌을 내리시고 또 우리에게 이와 같이 남은 자들을 주셨사오니

14 이제 우리가 주의 명령을 반역하여 이 가증한 백성들과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 옳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남김이 없이 진멸하시기까지 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공의로우시므로 우리가 오늘 남은 자가 됨이 주의 은혜로우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 앞에 있사오니 우리는 허물이 있은 즉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하나도 설 수 없나이다.”

에스라의 기도는 “나의 허물”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 시작된다. 에스라 자신이 이방 결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공동체의 죄를 자신의 죄로 삼았다. 느헤미야의 기도(느헤미야 1장), 다니엘의 기도(다니엘 9장)도 같은 구조다 — 개인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이것은 대표 기도다. 중재자의 자리다.

에스라를 “두 번째 모세”라 부른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금송아지 사건(출애굽기 32장) 이후 모세가 취한 자세와 에스라의 자세가 닮았다. 자신의 죄가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는 사람.

이방 결혼 해소는 신약의 관점에서 윤리적 질문을 낳는다. 고린도전서 7:14에서 바울은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한다. 관점이 다르다. 에스라는 정결의 율법으로 접근했고, 바울은 복음의 전파로 접근했다. 같은 문제에 대한 두 답이 성경 안에 함께 있다.


다음 장 — 에스라가 울고 있는 사이에 회중에서 한 목소리가 났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