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장 에스라가 온다

80년의 공백

1 이 일들 후에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Artaxerxes ·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의 치세에 에스라(Ezra · ㉸ 에즈라)바빌론(Babylon) 에서 올라왔다.

“이 일들 후에” — 6장의 성전 완공(BC 515)에서 7장 에스라의 등장(BC 458년경)까지 약 57년의 공백이다. 에스라서는 그 57년을 한 문장으로 건너뛴다. 그 사이에 에스더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왕 때다. 성경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 에스라서와 에스더서는 같은 시대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 에스라 7장의 아닥사스다가 아닥사스다 1세인지 2세인지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아닥사스다 1세라면 BC 458년, 느헤미야보다 13년 앞선다. 아닥사스다 2세라면 BC 398년, 느헤미야보다 수십 년 뒤다. 다수설은 아닥사스다 1세로 본다.

에스라는 아론(Aaron)의 후손이다. 아론의 자손 계보가 이어진다.

2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의 아들 비느하스, 비느하스의 아들 아비수아,

3 아비수아의 아들 북기, 북기의 아들 웃시,

4 웃시의 아들 스라히야, 스라히야의 아들 므라욧,

5 므라욧의 아들 아사랴, 아사랴의 아들 아히둡,

6 아히둡의 아들 사독, 사독의 아들 살룸,

7 살룸의 아들 힐기야, 힐기야의 아들 아사랴,

8 아사랴의 아들 스라야, 스라야의 아들 에스라였다.

이 에스라가 바빌론에서 올라왔다.

9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 위에 있었으므로 왕이 그가 구하는 것을 다 허락하였다.

“율법에 익숙한 학자” — 에스라(עֶזְרָא)라는 이름은 “도움”이라는 뜻이다. 제사장이며 학자였다. 후대 유대 전승은 에스라를 “두 번째 모세”로 부른다. 모세가 율법을 처음 받아 기록했다면, 에스라는 포로 후 공동체에게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확립했다. 탈무드(산헤드린 21b)는 에스라가 히브리어 알파벳을 아람어 방형 문자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 오늘날 히브리어 인쇄체의 기원이다. 미슈나와 탈무드의 기초를 만든 서기관 전통이 에스라에게서 시작된다.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고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세 동사 —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기”. 순서가 있다. 가르치기 전에 준행하고, 준행하기 전에 연구한다. 에스라의 신앙은 지식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교육으로 흘렀다. 배운 것을 살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것을 에스라는 하지 않았다.


아닥사스다의 칙령

11 에스라에게 준 왕 아닥사스다의 편지는 이러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여호와의 명령의 말씀과 율례에 정통한 제사장이요 학자였다.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학자인 제사장 에스라에게 선고하노라.

13 내가 명령을 내리노니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중에서 바빌론에 사는 자 가운데 자원하여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자는 다 함께 갈 것이다.

14 왕과 왕의 일곱 자문관이 에스라를 보내어 왕의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이 어떠한지 살피게 하며

15 또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리는 금, 은을 가지고 가게 하며

16 또 네가 바빌론 온 지방에서 얻는 금, 은과 제사장들과 백성이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과 함께 가게 하라.

17 그러므로 너는 이 돈으로 수소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밀물을 급히 사서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릴 것이며

18 그 나머지 금, 은은 너와 네 형제들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되 오직 너희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

19 네 하나님의 성전의 예배를 위해 네게 맡기는 기물들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 하나님의 성전에 쓸 것이 더 있으면 왕의 금고에서 지출하여라.

21 나 아닥사스다 왕이 강 이편 재무관들에게 명령을 내리노니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인 제사장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신속히 지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소금은 정해진 수량 없이 지급하라.

23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정확히 시행하여 어찌하여 왕과 왕자들에게 진노가 임하게 하리요.

24 또 너희에게 알리노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성전 종들과 이 하나님의 성전의 일꾼들에게는 세금이나 관세나 통행세를 부과할 수 없느니라.

25 에스라야, 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가 아는 재판관과 관리들을 강 이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도록 세우고, 그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너희가 그것을 가르쳐라.

26 누구든지 네 하나님의 율법과 왕의 법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리니 사형이든지 추방이든지 재산 몰수든지 감옥이든지 하라.”

에스라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이다(에스라서의 아람어 단락은 4:8-6:18, 7:12-26). 페르시아 제국 공용어로 작성된 공문서가 그대로 삽입됐다. 이 칙령은 에스라에게 세 가지를 준다 — 재정 지원, 성전 면세, 율법에 따른 사법권. 이방 왕이 유대 율법을 제국의 법으로 인정한 셈이다. 아닥사스다가 왜 이렇게 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정치적 계산인지, 진정한 경외인지 —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하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됐다.


에스라의 찬양

27 에스라가 말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왕의 마음에 이러한 뜻을 두게 하시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영화롭게 하셨도다.

28 왕과 그의 자문관들과 왕의 모든 능력 있는 방백들 앞에서 내게 인자하심을 베푸셨도다. 나는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담대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가게 하였다.”

에스라서에서 에스라의 첫 번째 직접 발화가 찬양이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로 시작한다. 그는 왕의 호의를 자신의 능력이나 운으로 돌리지 않는다.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 그것이 그의 세계관이었다.


다음 장 — 에스라가 함께 올라갈 사람들을 모은다. 레위인이 부족하다.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을 구한다. 위험한 길을 앞두고 군대를 요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