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타지 않는 떨기나무
호렙 산 기슭에서
1 모세가 장인 이드로(Jethro · ㉸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광야 깊숙이 몰고 가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Horeb)에 이르렀다.
호렙(Horeb)과 시내산(Sinai) — 같은 산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신명기는 주로 호렙, 출애굽기·민수기는 주로 시내산이라 부른다. 두 전승이 같은 지점을 다른 이름으로 전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단의 ‘제벨 무사(Jebel Musa, 모세의 산)‘가 전통적으로 지목되지만, 학계에서 위치 비정 논쟁은 계속 중이다.
2 그때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불꽃 한가운데서 나타났다.
모세가 봤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타지 않았다.
3 모세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가서 좀 봐야겠다. 왜 저 떨기나무는 타지 않는 거지?”
‘떨기나무(히브리어 스네, סְנֶה)‘는 시나이 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시덤불 식물로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일부 학자들은 이 불을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본문의 핵심은 불이 아니라 ‘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그것이 모세를 멈추게 만든 것이었다.
하나님의 첫 말씀
4 주님이 보셨다 — 모세가 보려고 다가오는 것을.
하나님이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불렀다.
“모세야, 모세야.”
“여기 있습니다.”
5 “더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신발을 벗어라.”
6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가 얼굴을 가렸다.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신발을 벗는 행위 — 고대 근동에서는 신성한 장소에 들어가거나 주인 앞에 엎드릴 때 신발을 벗는 것이 관습이었다. 여호수아 5:15에서도 같은 명령이 반복된다. 맨발은 땅과의 직접 접촉 — 거룩함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신체적 표현이었다.
내가 보았다
7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똑똑히 보았다. 감독관들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고통을 잘 안다.”
8 “내가 내려가겠다.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겠다. 그 땅에서 데리고 나와 넓고 좋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 —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이 사는 곳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이스라엘 전통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 중 하나다. 신화적 과장이 아니라 농경과 목축 모두에 적합한 비옥한 땅을 가리키는 관용구다. 실제로 가나안 지역은 레반트 해안의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고대부터 다양한 농산물이 가능한 땅이었다.
9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닿았다.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얼마나 짓밟는지 내가 보았다.”
10 “그러므로 이제 —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겠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라.”
나는 누구입니까
11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다.
“제가 누구라고 파라오에게 갑니까? 제가 누구라고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냅니까?”
‘내가 누구냐’ — 이 질문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40년 전 모세는 스스로 동족의 구원자가 되려 했다가 실패했다. 그 실패가 이 질문 뒤에 있다. 자신감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의심이었다.
1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다.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뒤 —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13 모세가 다시 물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그 이름이 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뭐라고 합니까?”
14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I AM WHO I AM · 히브리어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라. ‘스스로 있는 자(I AM)‘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 ‘나는 있다 무엇인 나는 있다’. 히브리어 동사 하야(hayah, 있다·되다·존재하다)의 1인칭 미완료형.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문장 중 하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있을 자다”, “나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등 다양하게 옮긴다. 핵심은 이름을 정의 내리지 않는다는 것 — 어떤 범주에 가두기를 거부하는 이름이다.
15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주님, 너희 조상의 하나님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이 나를 보내셨다. 이것이 영원한 내 이름이다. 대대로 기억될 내 이름이다.”
임무 설명
16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아라. 그들에게 말하라 — 주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너희가 이집트에서 당하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내가 이집트의 고통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겠다.’”
18 “그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이집트 왕에게 가서 말하라 — ‘주님,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셨습니다. 사흘 길쯤 광야로 나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허락해 주십시오.’”
19 “그러나 이집트 왕은 강한 손에 압도되지 않으면 너희를 보내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20 “내가 손을 뻗어 이집트를 칠 것이다. 내가 그 안에서 행할 모든 놀라운 일로. 그 뒤에야 그가 너희를 보낼 것이다.”
21 “내가 이집트 사람들이 이 백성에게 호의를 갖도록 하겠다. 너희가 빈손으로 나가지 않도록.”
22 “이스라엘 여자들은 각각 이웃 이집트 여자에게 은금 패물과 옷을 달라고 해라. 그걸 아들딸에게 입혀라. 그렇게 이집트 것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빈손으로 나가지 않겠다’ — 이 약속은 창세기 15:14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의 성취다.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수백 년 전 예고가 이집트 여자들의 패물 한 보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다음 장 — 모세가 또 거절한다. 지팡이가 뱀이 된다. 손이 나병에 걸렸다가 낫는다. 하나님이 아론을 대변인으로 보내신다.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