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장 공정, 안식, 세 절기
공정한 재판
1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마라. 악인과 손잡아 거짓 증인이 되지 마라.
2 많은 사람이 악을 따른다고 해서 거기 휩쓸리지 마라. 재판에서 다수 편에 서서 정의를 비틀지 마라.
3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재판에서 편들지도 마라.
3절이 눈에 띈다 — 가난한 자를 편들지 말라니. 22장에서 가난한 자를 보호하라던 그 법이 여기서 뒤집히는 게 아니다. 보호는 생활에서, 재판은 사실로 — 원칙이 다르다. 동정심이 사실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4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보내어라.
5 네가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눌려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그 곁을 그냥 지나치지 마라. 반드시 함께 일으켜 주어라.
원수 돕기 — 이 두 절은 놀랍다. 단순한 재산 반환이 아니다. 감정을 넘어서는 행동을 요구한다. 미움이 있어도 — 행동은 달라야 한다. 신약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 토라가 이미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6 가난한 자가 너희와 다투는 재판에서 그 권리를 빼앗지 마라.
7 거짓 말을 멀리 하라. 죄 없는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마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는다.
8 뇌물을 받지 마라. 뇌물은 밝은 눈을 멀게 하고 의인의 말을 뒤집는다.
9 이방인을 억압하지 마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으니 — 이방인의 마음을 안다.
안식년과 안식일
10 6년 동안은 땅에 씨를 뿌리고 거두어라.
11 7년째는 땅을 쉬게 하고 묵혀두어라. 네 백성 중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하라. 포도원과 올리브나무도 마찬가지다.
안식년(Sabbatical Year) — ‘샤밋타(שְׁמִטָּה)’, 해방·쉼의 해. 7년마다 땅을 쉬게 한다. 현대 농학에서도 윤작과 휴경의 가치는 입증됐다. 그러나 이 법의 핵심은 농학이 아니다 —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은 관리인이라는 신학적 선언이다. 가난한 자에게 수확이 개방된다는 점에서 사회 재분배 기능도 있었다.
12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어라. 네 소와 나귀도 쉬어야 한다.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도 숨을 돌려야 한다.
13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켜라. 다른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마라. 네 입에서 그 이름이 들려서도 안 된다.
세 절기
14 1년에 세 번, 내 앞에서 절기를 지켜라.
15 무교절(Feast of Unleavened Bread)을 지켜라.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라. 내가 명한 대로 아빕월(春의 달, 나중의 니산월)에 지켜라. 이집트에서 나온 달이니까. 빈손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16 맥추절(Feast of Harvest)을 지켜라. 밭에 심어 거둔 첫 열매의 절기다.
수장절(Feast of Ingathering)도 지켜라. 연말에 밭의 수확을 다 거두었을 때 지키는 절기다.
17 1년에 세 번, 모든 남자가 주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한다.
세 절기 — 무교절(유월절과 결합, 봄), 맥추절(오순절·칠칠절, 초여름), 수장절(초막절, 가을). 농경 절기와 역사 기억이 결합됐다. 무교절은 이집트 탈출, 수장절은 광야 40년 기억. 절기는 매년 반복되는 집단 기억 장치였다. 성인 남자는 예루살렘(후에는 성소)에 반드시 올라가야 했다.
18 유월절 제물의 피를 누룩 있는 빵과 함께 드리지 마라. 절기의 기름진 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마라.
19 땅의 첫 열매 중 최상품을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라.
새끼 염소를 어미 젖에 삶지 마라.
“새끼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 — 이 짧은 문장은 유대교 식사 규례(카슈루트, Kashrut)의 근거가 됐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 규율이 여기서 나왔다. 가나안 다산 제의와 연관됐을 가능성도 학자들이 논의하지만 — 정확한 배경은 확실하지 않다.
가나안 정복 약속
20 내가 천사를 네 앞에 보내어 길에서 너를 지키고 내가 준비한 곳으로 인도하게 하겠다.
21 그 앞에서 삼가 그 말을 들어라. 그를 거슬러 반항하지 마라. 그는 너희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22 네가 그 말을 잘 듣고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면 — 나는 네 원수의 원수가 되고, 네 대적의 대적이 되겠다.
23 내 천사가 너를 인도하여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에게로 이끌 것이다. 나는 그들을 없애겠다.
24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지 마라. 섬기지 마라. 그들이 하는 대로 하지 마라. 그것들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돌 기둥들을 깨뜨려라.
25 주 너희 하나님을 섬겨라. 그러면 나는 네 빵과 물에 복을 주겠다. 너희 중에서 병을 없애겠다.
26 너희 땅에서 유산하거나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가 없을 것이다. 너희 수명을 채워 주겠다.
27 내 두려움을 네 앞에 보낼 것이다. 네가 만날 모든 백성을 혼란에 빠뜨리겠다. 네 원수들이 모두 등을 돌려 도망치게 하겠다.
28 땅벌을 네 앞에 보내어 히위 사람, 가나안 사람, 헷 사람을 네 앞에서 몰아내겠다.
“땅벌(hornet)“을 보낸다는 표현 — 히브리어 ‘침라(צִּרְעָה)’. 실제 벌인지 은유인지, 학자들의 해석이 갈린다.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파라오를 상징하는 벌 문양(비에, bee)이 있었다는 점에서 — 이집트 군사력이 가나안을 약화시켰다는 역사적 표현으로 읽는 견해도 있다.
29 한 해 안에 다 몰아내지는 않겠다. 땅이 황무지가 되어 들짐승이 너를 해치게 될 테니.
30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씩 몰아내겠다.
31 홍해에서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 강까지를 네 경계로 정하겠다. 그 땅 주민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몰아낼 것이다.
32 그들이나 그 신들과 언약을 맺지 마라.
33 그들이 네 땅에 살지 못하게 하라.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 것이다.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가나안 정복의 점진성 — 하나님이 한꺼번에 다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한다. 생태적 이유(황무지화, 들짐승)를 든다. 성경 본문 자체가 정복이 왜 오래 걸렸는지 설명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즉각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고, 여러 세기에 걸쳐 공존·충돌·흡수가 반복됐다.
다음 장 — 시내산에서 언약 비준 의식이 거행된다. 모세와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 고대 근동에서 유례없는 장면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