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장 눈에는 눈, 손에는 손
종에 관한 규례
1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들 앞에 세워야 할 규례들이다.
2 히브리 남자 종을 사면, 그는 6년을 섬기고 7년째에 값없이 자유인이 된다.
3 혼자 들어왔으면 혼자 나간다. 아내가 있었다면 아내도 함께 나간다.
4 주인이 아내를 맺어주어 자녀를 낳았다면, 아내와 자녀는 주인의 것이다. 그 종만 홀로 나간다.
5 그런데 만약 그 종이 말한다면 — ‘나는 주인을 사랑한다. 아내와 자녀도 사랑한다. 나는 자유인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
6 주인은 그를 재판관들 앞으로 데리고 간다. 문이나 문기둥 앞에 세우고, 송곳으로 그 귀를 뚫는다. 그러면 그는 평생 그 주인을 섬긴다.”
귀를 뚫는 의식 — 히브리어 ‘아와드(עָבַד, 섬기다)‘와 ‘에베드(עֶבֶד, 종)‘는 같은 어근이다. 귀는 듣는 기관, 순종의 상징. 문기둥은 가정의 경계를 표시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이 의식은 “나는 이 집에 속한다”는 공개 선언이었다.
함무라비 법전(BC 18세기 바빌로니아)과의 비교 — 메소포타미아 법에서도 노예는 귀표(耳標)로 신분을 표시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에서는 6년 해방 규정이 없다. 이스라엘 법의 핵심 차이는 — 해방이 기본값이라는 것. 종신 예속은 스스로 선택하는 예외였다.
7 남자가 딸을 여종으로 팔면, 남종처럼 7년째에 자유인이 되지 않는다.
8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 했던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팔 생각이면, 낯선 사람에게는 팔 수 없다. 그녀를 배신한 거니까. 그녀의 친정 식구가 그녀를 되살 수 있게 해야 한다.
9 주인이 그녀를 아들에게 주려 했다면, 그녀를 딸처럼 대해야 한다.
10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도 — 그녀의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줄여서는 안 된다.
11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그녀는 값없이 자유인이 된다.
여종 보호 조항 — 고대 근동에서 딸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흔했다. 극빈 가정이 딸을 부유한 집에 넘기면, 그 딸은 통상 첩(妾) 신분이 됐다. 이 법은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 보호 의무를 주인에게 지운다. 방치하면 자유를 준다.
폭행과 살인에 관한 규례
12 사람을 쳐서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13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그리된 것이면 — 내가 그를 위해 피할 곳을 정해 주겠다.
14 그러나 교활하게 이웃을 속여 계획적으로 죽인 자는, 내 제단 곁에서도 끌어내어 죽여라.
15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반드시 죽인다.
16 사람을 납치한 자 — 팔았든 손에 두고 있든 — 반드시 죽인다.
17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한 자는 반드시 죽인다.
도피성 — 13절에서 언급된 “피할 곳”은 나중에 여호수아 시대에 구체화된다. 이스라엘 영토에 6곳의 도피성을 두어, 고의가 아닌 살인자가 피신해 공정한 재판을 기다릴 수 있게 했다(민수기 35장). 보복 살인을 막는 안전망이었다.
18 사람들이 싸우다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상대를 쳤는데, 죽지 않고 누워 있다가
19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면 — 때린 사람은 무죄다. 다만 그가 일하지 못한 기간을 보상하고 완전히 낫도록 돌봐야 한다.
20 종을 막대기로 때려 그 자리에서 죽으면 반드시 처벌받는다.
21 그러나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 죽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그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종에 대한 폭력 — 이 조항은 불편하다. “주인의 재산”이라는 논리는 오늘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당시 맥락에서 보면: 고대 근동 어떤 법도 주인의 종 학대를 처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법은 즉사 시 처벌한다는 점에서 — 당대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놓은 것이다.
22 사람들이 싸우다 임신한 여자를 쳐서 조산이 됐는데, 더 큰 해가 없으면 —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 배상한다.
23 그러나 더 큰 해가 있으면 — 생명으로 생명을 갚아야 한다.
24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손에는 손, 발에는 발,
25 화상에는 화상, 상처에는 상처, 멍에는 멍을 갚아라.
“눈에는 눈(Lex Talionis)” — 라틴어 lex talionis, ‘동등 보복의 법’. 현대인 귀에는 잔인하게 들리지만, 이 법의 본래 기능은 정반대였다. 당신이 내 눈 하나를 멀게 했으면 — 나는 당신 눈 하나만 요구할 수 있다. 당신의 두 눈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의 마을도 요구할 수 없다. 무한 보복을 금지하는 비례 원칙(proportionality). 함무라비 법전에도 같은 원칙이 있다(BC 18세기). 실제 집행에서는 금전 배상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26 종의 눈을 쳐서 멀게 했으면 — 눈 값으로 그 종을 자유인으로 놓아주어야 한다.
27 종의 이를 부러뜨렸으면 — 이 값으로 그 종을 자유인으로 놓아주어야 한다.
가축으로 인한 사고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 죽이고 고기는 먹지 않는다. 소 주인은 무죄다.
29 그러나 그 소가 전에도 받는 습성이 있었고, 주인이 경고를 받았는데도 가두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면 — 소도 죽이고 주인도 죽인다.
30 주인에게 몸값을 내라는 요구가 있으면, 자기 목숨을 대신할 값은 요구받는 대로 낸다.
31 아들이나 딸을 받아도 이 규례로 처리한다.
32 종을 받았으면 소 주인은 그 종의 주인에게 은 30세겔을 주고, 소는 돌로 쳐 죽인다.
은 30세겔 — 후에 유다가 예수를 판 값이 은 30세겔이다(마태복음 26:15). 당시 노동자 한 달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 종 한 명의 법정 가치를 표시하는 숫자였다.
33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덮지 않아 소나 나귀가 거기 빠졌으면,
34 구덩이 주인이 짐승 값을 물어주고, 죽은 짐승은 자기가 갖는다.
35 한 사람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값을 반반 나누고, 죽은 소도 반반 나눈다.
36 그러나 그 소가 전에도 받는 습성이 알려져 있었는데 주인이 가두지 않았다면 — 소로 소를 갚는다. 죽은 소는 자기가 갖는다.
다음 장 — 도둑질과 배상 규례, 그리고 이웃을 대하는 도덕 규례가 이어진다. 법이 다루는 범위가 재산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로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