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 갈대 상자에 누인 아기

레위 가족의 아이

1 레위 지파의 한 남자가 레위 집안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2 여자가 임신했다. 아이를 낳았는데 — 사내아이였다.

아이가 너무 예뻤다.

어머니는 석 달 동안 숨겼다.

본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적지 않는다. 이 아이가 나중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을 독자는 알지만 — 그의 탄생 이야기는 이름 없는 두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이름 없는 어머니, 이름 없는 아버지. 나중에 밝혀지지만, 아버지는 아므람, 어머니는 요게벳이다(민 26:59).

3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하나 구해 역청과 나무진을 발랐다. 방수가 됐다.

그 안에 아이를 누이고, 나일강(Nile) 갈대밭 사이에 살짝 내려놓았다.

갈대 상자(히브리어 테바, תֵּבָה) — 성경 전체에서 이 단어가 쓰이는 곳은 딱 두 군데다. 노아의 방주, 그리고 이 갈대 상자. 규모는 천지 차이지만, 두 이야기 모두 물 위에서 보존되는 생명 이야기다. 갈대(파피루스)는 나일강 삼각주에서 흔하게 자라는 식물이다. 역청은 사해 부근이나 메소포타미아에서 교역으로 들어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배를 만드는 게 일상적인 기술이었다.

4 아이의 누나가 멀리 서서 지켜봤다. 어떻게 될지 보려고.


파라오의 딸

5 파라오(Pharaoh · 개역 성경 표기 ‘바로’)의 딸이 나일강으로 목욕하러 내려왔다. 시녀들이 옆에서 따라 걸었다.

공주가 갈대밭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았다. 시녀 하나를 보내 가져오게 했다.

6 뚜껑을 열었다.

아기가 있었다.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마음이 움직였다.

“이건 히브리 아이네.”

파라오의 딸이 불쌍히 여겼다(히브리어 하말, חָמַל) — 이 동사는 ‘위협으로부터 아끼다, 살려두다’의 뉘앙스가 있다. 공주는 아이가 히브리 사내아이임을 알면서도 — 살리기로 했다. 자기 아버지의 명령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7 그때 아이의 누나가 달려 나왔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데려올까요?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요.”

8 “데려와.”

9 소녀가 달려가서 — 아이의 친어머니를 데려왔다.

공주가 말했다.

“이 아이를 데려가 나 대신 젖을 먹여줘요. 품삯은 내가 줄게요.”

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갔다.

이 장면의 아이러니가 고요하게 흐른다. 아이를 죽이라 명령한 파라오의 나라에서, 파라오의 딸이 살린 아이를 — 친어머니가 공식적으로 키우게 된다. 그것도 왕실의 돈을 받으면서. 억압의 구조가 제 손으로 파국의 씨앗을 돌본다.


모세라는 이름

10 아이가 자랐다. 어머니가 공주에게 데려갔다. 공주가 아들로 삼았다.

이름을 지었다 — 모세(Moses).

“물에서 건져냈기 때문이야.”

모세(מֹשֶׁה) — 이집트어 어원으로 보면 ‘아들, 태어난 자’를 뜻하는 접미사다(투트모세, 아흐모세처럼). 그러나 본문은 히브리어 동사 ‘마샤(mashah, מָשָׁה, 건져내다)‘로 설명한다. 두 언어가 겹치는 자리에서 탄생한 이름 —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지만 히브리 백성에게 속한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의 동족

11 시간이 흘렀다. 모세가 어른이 됐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에게 나갔다. 그들의 노역을 눈으로 봤다.

이집트인 하나가 히브리인 하나를 — 자기 동족 한 사람을 — 때리고 있었다.

12 모세가 사방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집트인을 쳐서 죽이고 모래 속에 묻었다.

모세가 동족을 보러 나갔다는 본문의 짧은 문장 — 그가 왕궁에서 자랐음에도,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알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히브리서 11:24은 모세가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했다”고 말한다. 그 선택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13 다음 날 다시 나갔다.

이번엔 히브리인 둘이 싸우고 있었다. 모세가 잘못한 쪽에게 말했다.

“왜 동족을 때립니까?”

14 그가 쏘아붙였다.

“누가 당신을 우리 지도자, 재판관으로 세웠소? 어제 이집트인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일 거요?”

‘누가 너를 지도자로 세웠느냐’ — 이 질문이 모세의 삶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나중에 광야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그는 같은 질문 앞에 선다. 그때마다 대답은 달랐다. 첫 번째는 달아남이었다.

모세는 무서워졌다.

‘이 일이 알려졌구나.‘


미디안으로

15 파라오도 이 일을 들었다.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 했다.

모세는 도망쳤다. 미디안(Midian) 땅으로 갔다.

미디안 — 시나이 반도 동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 타북 지역 일대로 비정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미디안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땅이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미디안까지 이동한 거리는 대략 400km 이상.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는 여정이었다.

모세가 우물가에 앉았다.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딸 일곱이 있었다. 딸들이 아버지의 양 떼를 몰고 와서 물을 긷기 시작했다.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려 했다.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왔다. 양 떼에게 물을 떠다 줬다.

18 딸들이 아버지 르우엘(Reuel) 에게 돌아왔다.

“오늘은 왜 이리 일찍 왔느냐?”

19 “이집트 사람이 목자들 손에서 우리를 구해줬어요. 직접 물을 길어다가 양에게 먹여줬고요.”

20 “그래?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왜 그냥 두고 왔니? 가서 불러오거라. 밥이라도 먹게.”

르우엘(Reuel, ‘하나님의 친구’)은 나중에 이드로(Jethro, 이트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동일 인물이다(출 3:1). 미디안 제사장이라는 신분이 흥미롭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1899년 독일 학자 칼 부데(Karl Budde) 의 ‘겐 가설(Kenite Hypothesis)’ — 야훼 신앙이 미디안·겐 부족들 사이에 먼저 있었고 모세가 그것을 접해 이스라엘로 연결했다는 입장 — 의 핵심 본문이 18장이다(자세한 논의는 18장 주석).

21 모세가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 르우엘이 딸 시브라(Zipporah · ㉸ 치포라)를 모세에게 주었다.

22 시브라가 아들을 낳았다. 모세가 이름을 지었다 — 게르솜(Gershom).

“나는 이국 땅의 나그네다.”

게르솜 — 히브리어 ‘게르(ger, 나그네)‘와 ‘솜(sham, 거기서)‘의 합성. ‘거기서 나그네 되었다’는 뜻이다. 그 이름 하나가 모세의 정체성을 담는다 — 이집트 왕궁에서도 나그네였고, 미디안에서도 나그네였다. 어디도 그의 집이 아니었다.


부르짖음

23 긴 세월이 흘렀다.

이집트 왕이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노역에 신음했다. 부르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갔다.

24 하나님이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셨던 언약을.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바라보셨다.

하나님이 아셨다.

이 절의 히브리어는 간결하다 — “하나님이 보셨다. 하나님이 아셨다.” 무엇을 아셨는지 목적어조차 적히지 않는다. 그 침묵이 오히려 무겁다. 본문은 400년 가까이의 침묵이 끝나는 지점을 — 이 네 동사로 표시한다. 들으셨다, 기억하셨다, 바라보셨다, 아셨다.


다음 장 — 모세가 양 떼를 몰고 시내산(호렙) 자락으로 갔다. 그곳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타지 않는 떨기나무 하나. 그 불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