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8장 첫 제자들과 가나의 결혼식
다음 날, 요단강가
1 다음 날, 세례 요한이 요단강 건너편에서 다시 두 제자와 함께 서 있었다.
2 예수가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요한이 말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3 두 제자가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4 예수가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셨다.
“무엇을 찾느냐?”
5 두 사람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랍비, 어디서 묵고 계십니까?”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6 예수가 말씀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가서 예수가 묵고 계신 곳을 보았다. 그날 그분과 함께 머물렀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오후 네 시쯤” — 요한복음의 시간 표기는 종종 정확하다. 헬라식 시간법으로 ‘제 십시’는 정오부터 열 시간 뒤가 아니라 해 뜬 뒤 열 번째 시간, 곧 오후 네 시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늦은 오후의 손님은 그날 밤을 함께 지내는 손님이었다. 두 제자가 예수와 보낸 그 하룻밤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7 두 사람 중 하나는 시몬(Simon)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Andrew · ㉸ 안드레아)였다.
8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갔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9 그가 시몬을 예수께 데려갔다.
예수가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다. 너를 게바(Cephas)라 부를 것이다.”
게바는 아람어로 ‘바위’다. 그리스어로는 베드로(Peter)다.
바위 —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별명은 인격을 함축했다. 시몬은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웠다. 예수는 그가 아직 되지 못한 이름을 미리 불렀다. “너는 바위가 될 것이다”가 아니라 “너를 바위라 부른다.” 이 작명 하나로 베드로의 일생이 정해진다.
빌립과 나다나엘
10 다음 날, 예수가 갈릴리로 가려 하셨다. 길에서 빌립(Philip · ㉸ 필립보)을 만나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11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마을 벳새다(Bethsaida · ㉸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12 빌립이 곧장 나다나엘(Nathanael · ㉸ 나타나엘)을 찾아갔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선지자들이 쓴 그분을 만났다. 요셉의 아들, 나사렛(Nazareth · ㉸ 나자렛) 예수다.”
13 나다나엘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14 빌립이 대답했다.
“와서 보라.”
15 예수가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보라. 정말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안에 거짓이 없다.”
16 나다나엘이 놀라 물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17 예수가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18 나다나엘의 입에서 단번에 고백이 나왔다.
“랍비,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19 예수가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人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너희가 보게 될 것이다.”
‘무화과나무 아래’ — 1세기 유대 랍비 문헌에서 무화과나무 아래는 토라를 묵상하는 자리였다. 미슈나(Pirkei Avot)에 학자들이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율법을 논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다나엘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묵상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가 거기 있었던 일을 알았다고만 한다.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 창세기 28장 야곱의 사다리다. 야곱이 광야의 돌을 베고 자다가 본 환상. 예수는 자기 자신을 그 사다리로 지목한다. 하늘과 땅이 한 사람 위에서 만난다는 선언이다.
갈릴리와 요단의 두 부르심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는 첫 제자들의 부르심을 다르게 전한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 세베대와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가 “나를 따라오라” 한 마디로 부르신다. 요한복음은 그보다 한 단계 앞을 비춘다 — 요단강가에서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먼저 예수께 옮겨온 자리.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시간 순서일 가능성이 높다. 레이먼드 브라운(『요한복음 서론』 1979)과 R.E. 브라운, 레오너드 모리스가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견해 — 처음 만남은 요단강가에서, 본격적 부르심은 갈릴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조화안. 이 통합본은 그 시간 순서를 따른다. 요단의 첫 만남이 8장에 오고, 갈릴리 호숫가의 두 번째 부르심이 11장에 온다.
사흘째 되는 날, 가나
2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리(Galilee · ㉸ 갈릴래아) 의 가나(Cana · ㉸ 카나)에 결혼식이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있었다.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잔치에 초대받았다.
23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예수의 어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포도주가 없구나.”
24 예수가 대답하셨다.
“어머니,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25 어머니는 답을 다투지 않았다. 하인들에게 돌아가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대로 하여라.”
“내 때(호라)” —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때’는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는 고정된 표현이다. 7:30, 8:20에서 적들이 그를 잡으려 하지만 “아직 그의 때가 오지 않았다.” 12:23에서 마침내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가나의 이 짧은 거절은 그 긴 여정의 첫 문장이다.
물항아리 여섯
26 거기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쓰이는 것이었다. 각각 두세 동이 들어가는 크기였다.
27 예수가 하인들에게 말씀하셨다.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들이 항아리마다 가득 채웠다.
28 예수가 말씀하셨다.
“이제 떠서 잔치 진행자에게 갖다 주어라.”
29 그들이 갖다 주었다.
잔치 진행자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았다.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떠 온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
30 잔치 진행자가 신랑을 불러 말했다.
“보통은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낮은 것을 냅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아껴두었군요.”
31 이것이 예수가 행하신 첫 표적이었다.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다.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
요한복음은 기적을 ‘표적(세메이온)‘이라고 부른다. 공관복음은 ‘능력 있는 행위(뒤나미스)‘라고 부른다. 표적은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가나의 물항아리 여섯 개는 유대 정결 예식의 물이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 율법이 가리키던 것이 실체로 왔다는 뜻이다.
학자들의 다른 시각도 있다. 루돌프 불트만(『요한복음』 1941)은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 퍼져 있던 디오니소스 신화 — 포도주의 신이 빈 항아리를 포도주로 가득 채우는 매년 의례 — 와의 평행을 지적했다. 본문이 그 신화를 의식적으로 대체하는 헬레니즘적 변증이라는 독법이다. 반면 존 마이어(『변두리의 유대인』 1991, 1권)는 1세기 갈릴리 결혼 잔치의 실제 사회사로 본다. 잔치는 일주일 동안 이어졌고,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은 신랑 가족의 명예가 걸린 사회적 위기였다. 예수의 개입은 한 가족의 수치를 막은 행위이자 동시에 새 시대의 표적이었다.
물항아리 여섯의 용량을 환산하면 600리터가 넘는다. 이 양은 동네 잔치의 필요를 한참 넘는다. 풍성함의 표적이다. 그러나 본문은 손님들이 그 풍성함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적는다. 잔치 진행자도, 신랑도 몰랐다. 안 사람은 하인들과 제자들이었다.
가버나움으로
32 그 뒤 예수가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Capernaum · ㉸ 카파르나움 — 갈릴리 호수 북서안)으로 내려가 며칠 머무셨다.
이 장은 요한 1:35-51, 요한 2:1-12을 통합했다. 첫 제자 부르심은 요한 고유 자료다. 마태 4:18-22, 마가 1:16-20, 누가 5:1-11의 갈릴리 호숫가 부르심은 따로 11장에서 다룬다. 가나의 결혼식과 첫 표적도 요한 고유다. 공관복음에는 가나 사건이 없다. 그래서 이 장은 요한복음의 시간표를 그대로 따랐다.
다음 장 — 예수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성전 뜰의 환전상들이 상을 차리고 있다. 그리고 한밤중, 한 바리새파 지도자가 그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