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7장 천국의 비유들
호숫가의 배
1 예수가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2 큰 무리가 그에게 모여들어 그가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호숫가 땅 위에 있었다.
3 그가 비유로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씨 뿌리는 자
4 “들어라.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
5 뿌릴 때에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6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났으나, 해가 돋자 타고,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다.
7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가 자라 그것을 막으니 결실하지 못했다.
8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자라서 결실하니 어떤 것은 삼십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었다.
9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1세기 갈릴리 농부는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렸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이 한 밭 안에 다 있었다. 비유의 그림은 추상이 아니라 청중이 매년 본 풍경이다.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10 예수가 홀로 계실 때 그를 따르던 자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이 비유들에 대해 물었다.
11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비유로 주어진다.
12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돌이켜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3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하느냐. 그러면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지만 즉시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린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다.
15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쁘게 받지만, 자기 안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는 자다.
16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는 자다.
17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자다.”
비유 해석사 — 1888년 독일 신학자 아돌프 율리허(Adolf Jülicher)가 『예수의 비유』(Die Gleichnisreden Jesu)에서 비유는 “한 점(tertium comparationis)“만 가진다고 주장하며,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3세기) 이래의 알레고리 해석 전통과 단절했다.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32개 알레고리로 풀어 읽은 것이 알레고리 해석의 극단이었다. 율리허는 그 전통을 끊고 비유를 한 가지 메시지로 환원했다. 20세기에는 영국의 C.H. 다드(C.H. Dodd)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1935)에서 “실현된 종말론”을 적용해 비유를 예수 사역의 현재성으로 읽었고, 독일의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가 『예수의 비유들』(1947)에서 Sitz im Leben Jesu — 비유의 본래 자리 — 를 복원하려 했다.
등불
18 또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말 아래나 침상 아래 두느냐. 등잔 위에 두지 않느냐.
19 드러나지 않을 감추어진 것이 없고, 알려지지 않을 비밀이 없다.
20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1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지 삼가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더 받게 될 것이다.
22 가진 자는 더 받겠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자라는 씨
23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24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자라는지는 그가 알지 못한다.
25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 처음에는 싹이고, 다음에는 이삭이며,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다.
26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라는 씨 비유는 마가에만 있다. 농부가 자는 동안에 땅이 자율적으로 일을 한다는 그림 — 하나님 나라의 자기 동력에 대한 비유다. 짧지만 마가의 가장 짧은 비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가라지
27 예수가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
28 사람들이 잠을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29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30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했다. ‘주여, 좋은 씨를 밭에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났습니까.’
31 그가 말했다. ‘원수가 그렇게 한 것이다.’
종들이 물었다. ‘우리가 가서 그것을 뽑을까요.’
32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한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할 것이다 —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으라.’”
가라지(지자니아 — ζιζάνια)는 독보리(Lolium temulentum). 1세기 팔레스타인 농업의 흔한 잡초다. 어릴 때 모양이 밀과 거의 같아 구별이 어렵고, 이삭이 익어야 검은색 알갱이로 차이가 드러난다. 뿌리가 밀과 얽혀 함께 뽑힌다. 농부의 실제 경험이 비유의 디테일을 정확히 결정짓는다.
겨자씨와 누룩
33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할까.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4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이나 채소밭에 뿌렸다.
35 그것은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라서 모든 채소보다 커지고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 만하다.”
36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여자가 가져다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두니 전부가 부풀어 올랐다.”
겨자씨와 누룩의 짝 — 겉으로 보이는 작은 시작과 겉에서 보이지 않는 침투. 두 비유가 한 쌍으로 묶인다. 누가는 같은 두 비유를 13:18-21에 두고, 마태와 마가는 호숫가 비유 묶음에 둔다. 갈릴리 농촌의 두 일터, 곧 밭과 부엌이 하나의 그림 안에 들어왔다.
가라지의 해석
37 예수가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나아와 청했다.
“밭의 가라지 비유를 우리에게 풀어 주십시오.”
38 예수가 대답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다.
39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40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다.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고,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41 가라지를 모아 불사름같이 세상의 끝에도 그러할 것이다.
42 인자가 자기 천사들을 보내겠다. 천사들이 그의 나라에서 모든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43 풀무 불에 던질 것이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4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가라지 비유의 알레고리 해석 — 율리허 이래 한 점만 보는 흐름과 충돌한다. 본문 자체가 일곱 요소를 일곱 의미로 풀어준다. 학자들 다수는 이 해석부를 마태의 편집(혹은 초기 교회의 해석 전통)으로 본다. 한편 르네 라투렐(René Latourelle)과 D.A. 카슨은 비유 자체가 알레고리적 요소를 가질 수 있고, 율리허식 일점 환원이 과도하다고 본다. 비유 안에 알레고리가 부분적으로 들어 있는 경우(혼합형)가 정상이라는 입장이다.
보화와 진주, 그물
45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다시 감추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다.
46 또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과 같다.
47 매우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것을 산다.
48 또 천국은 바다에 던져 각종 물고기를 모은 그물과 같다.
49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끌어내어 해변에 앉아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린다.
50 세상의 끝에도 이러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가운데서 악인을 갈라내어
51 풀무 불에 던질 것이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2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렇습니다.”
53 예수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모든 서기관은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옛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에 모인 일곱 비유 — 씨 뿌리는 자, 가라지, 겨자씨, 누룩, 감추인 보화, 진주, 그물. 마태의 다섯 가르침 단락 가운데 셋째에 해당한다(마태복음 13장 비유 강화). 마태는 모세 오경의 다섯 책 구조를 반향하듯 다섯 가르침 묶음으로 자기 복음서를 구성했다 — 산상수훈(5–7장), 제자 파송(10장), 비유 강화(13장), 교회 강화(18장), 종말 강화(24–25장). 같은 비유들이 마가에서는 4장에 부분적으로(씨 뿌리는 자·등불·자라는 씨·겨자씨), 누가에서는 8장과 13장에 흩어져 있다.
이 장은 마태 13:1-52 / 마가 4:1-34 / 누가 8:4-15와 13:18-21을 통합했다. 일곱 비유의 묶음은 마태의 구조이고, 마태에만 있는 비유는 가라지·감추인 보화·진주·그물 넷이다. 자라는 씨는 마가에만 있다. 누가는 씨 뿌리는 자와 겨자씨·누룩 둘만 보존한다. 본 통합복음서는 마태의 일곱 비유 구조를 따르되 마가의 자라는 씨와 누가의 약간 다른 어법을 보충했다. 누룩 비유의 해석사에서 흥미로운 점 — 전통적으로 누룩은 부패의 상징(고린도전서 5:6,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한다”)이지만, 여기서는 천국의 침투력을 가리키는 긍정 비유로 쓰였다.
다음 장 — 누가만 보존한 세 비유.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의 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