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8장 잃어버린 자의 비유들
함께 먹는 자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다가왔다.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렸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함께 먹는다.”
3 예수가 그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셨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일은 단순한 끼니 행위가 아니었다. 같은 식탁은 같은 신분과 같은 정결도를 의미했다. 바리새인들의 식탁법은 하부라(הֲבוּרָה — 친교 모임)의 정결 규정을 따랐다. 세리는 로마 점령 권력의 협력자로 분류되어 회당에서도 배제되곤 했다. 예수가 그들과 한 식탁에 앉는 것은 사회적 경계를 깨는 행위였다.
잃어버린 양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가지 않겠느냐.
5 찾아내면 즐거워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친구와 이웃을 불러 말한다. ‘나와 함께 즐거워하라. 잃은 양을 찾았노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더 큰 기쁨이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동전
8 “어느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이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지 않겠느냐.
9 찾으면 친구와 이웃을 불러 말한다. ‘나와 함께 즐거워하라.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 기쁨이 있을 것이다.”
드라크마(δραχμή)는 하루 임금에 가까운 그리스 은화. 1세기 팔레스타인 시골 여인의 집은 흙바닥과 작은 창 한 개.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쓸어야 동전을 찾을 수 있는 어둠이다. 누가는 세 비유 가운데 하나의 주인공으로 여인을 두었다. 목자(남자), 여인, 아버지 — 신적 추적자의 세 얼굴이다.
두 아들
11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12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십시오.’
아버지가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둘째 아들이 자기 것을 다 모아 먼 나라로 갔다. 거기서 방탕하게 살아 재산을 허비했다.
14 다 없앤 뒤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그가 궁핍해지기 시작했다.
15 그 나라 백성 가운데 한 사람에게 붙어 살게 되었다. 그가 그를 자기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했다.
16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 했으나 주는 자가 없었다.
17 비로소 스스로 돌이켜 말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다.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말하리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품꾼 중 하나로 받아 주십시오.’
20 일어나 아버지께로 갔다.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겼다.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22 아버지가 종들에게 말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잃었다가 찾았다.’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25 큰아들은 밭에 있었다. 돌아오다가 집에 가까워졌을 때 풍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한 종을 불러 무슨 일인가 물었다.
27 종이 대답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그를 건강하게 다시 맞이하므로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 그에게 권했다.
29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내게는 염소 새끼 하나 주어 친구들과 즐거워하게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30 그런데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킨 이 아들이 돌아오니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다. 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잃었다가 찾았다. 그러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큰아들이 잔치에 들어갔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누가는 결말을 닫지 않는다. 비유의 청중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음을 기억하면(15:2), 큰아들은 그들의 자리다. “내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라는 한 줄이 그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탕자 비유의 해석사 —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가 1959년 베를린에서 행한 설교집 『탕자의 아버지』(독일어 Das Bilderbuch Gottes)는 비유의 중심을 둘째 아들에서 아버지로 옮긴다. 1976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가 『탕자』(Poet and Peasant)에서 중동 농촌 사회학적 독해를 시도했다. 둘째 아들이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한 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는 것과 같다는 점, 아버지가 달려간 것이 동방 어른으로서 수치를 무릅쓴 행위라는 점, 큰아들이 잔치에서 아버지를 공개 비난한 것 또한 가족 명예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점 — 한 사회의 문화 안에서 비유의 중력이 어디에 놓이는지를 베일리는 정확히 짚었다.
불의한 청지기
33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34 주인이 그를 불러 말했다. ‘내가 들은 이 일이 무엇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더 이상 내 청지기가 될 수 없다.’
35 청지기가 속으로 말했다.
‘주인이 청지기 직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팔 힘은 없고 빌어먹기는 부끄럽다.
36 직에서 쫓겨났을 때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에 영접하게 할 일을 알겠다.’
37 주인의 빚진 자들을 하나씩 불렀다. 첫째에게 물었다.
‘네가 우리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38 ‘기름 백 말입니다.’
‘네 증서를 가져다 앉아 빨리 오십이라 적으라.’
39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얼마냐.’
‘밀 백 석입니다.’
‘네 증서를 가져다 팔십이라 적으라.’
40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슬기롭게 한 것을 칭찬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빛의 아들들보다 더 슬기롭다.
41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것이 다할 때에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게 할 것이다.
42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
43 어떤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 사람은 미워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하거나, 한 사람을 받들고 다른 사람을 가벼이 여길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부자와 나사로
44 “어떤 부자가 있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를 누렸다.
45 그 대문 앞에 나사로(Lazarus · ㉸ 라자로)라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버려져 있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했다. 그뿐 아니라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46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Abraham)의 품에 들어갔다.
47 부자도 죽어 묻혔다.
음부에서 그가 고통 가운데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
48 그가 외쳤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49 아브라함이 말했다.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은 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는다.
50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는 자가 못하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오려는 자도 못한다.’
51 부자가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여, 그를 내 아버지의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내게 다섯 형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이 고통의 곳에 오지 않도록 그가 가서 증언하게 하소서.’
52 아브라함이 말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 그들의 말을 들을 것이다.’
53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가야 회개할 것입니다.’
54 아브라함이 말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도 권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비유 안에서 이름을 가진 유일한 인물은 거지 나사로다. 부자는 끝까지 익명이다. 후대에 라틴어 본문에서 부자는 “디베스(Dives — 부자라는 뜻)“라 불리게 되지만, 본래 이름이 아니다. 나사로(엘레아자르 — אֶלְעָזָר)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다. 이름의 의미가 운명을 바꿨다.
부자와 나사로 — 1세기 유대 음부(שאול, Sheol)와 천국의 분리 묘사가 이 비유에서 정형화됐다.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은 헬레니즘 영지주의의 영혼 여행 모티프 영향을 가설로 제시했다. 그러나 존 콜린스(John J. Collins)의 1979년 Apocalypse: The Morphology of a Genre는 에녹1서(특히 22장)와 에스라4서 같은 유대 묵시문학에 이미 음부의 구획 분리 — 의인의 자리와 죄인의 자리 — 가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유대 내재 발전으로 본다. 비유 자체는 사후 세계의 지리학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모세와 선지자들”이 이미 충분하다는 마지막 응답이 그것이다.
불의한 재판관
55 또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56 “어떤 도시에 한 재판관이 있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57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와서 청했다. ‘내 원수에 대해 내 한을 풀어 주소서.’
58 그가 얼마 동안은 듣지 않았다. 후에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한을 풀어 주리라. 그가 자주 와서 나를 괴롭게 하지 않게 하리라.’”
59 주가 말씀하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한 말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그에게 부르짖는 자기 택하신 자들의 한을 풀어 주지 않으시고 오래 참기만 하시겠느냐.
60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속히 그 한을 풀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바리새인과 세리
61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62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63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했다.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 토색하는 자들, 불의한 자들,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64 내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65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나님이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66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의롭다 인정받고 자기 집에 내려간 자는 이 사람이지 그 사람이 아니다.
67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바리새인의 일주일 두 번 금식은 율법 요구를 넘는 자율적 경건이었다. 모세 율법의 의무 금식은 대속죄일 한 번뿐이다(레위기 16:29). 1세기 후반 미슈나의 타아닛(Ta’anit)은 추가 금식일을 다룬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곡식·기름·포도주에만 의무였으나, 바리새인은 채소와 향료까지 십일조를 했다(누가 11:42). 본문은 그 자율적 경건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 의가 될 때를 본다.
이 장은 누가 15:1-32, 16:1-13, 16:19-31, 18:1-14을 통합했다. 모두 누가 고유 자료(L자료)다. 마태와 마가에 평행 본문이 없다. L자료의 신학적 일관성 — 가난한 자, 잃어버린 자, 이방인, 여인, 세리 — 이 누가 비유들에 일관되게 흐른다. 누가 자신이 의사이자 이방인이었다는 전통(골로새서 4:14)이 그의 편집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학자들의 지적이 있다. 헨리 캐드베리(Henry Cadbury)의 『누가-사도행전 만들기』(1927)가 이 시각의 출발점이고, 할 카운터(Hal Taussig)의 식탁 신학 연구가 이 흐름을 이어받았다.
다음 장 — 베다니의 한 집에서 기별이 온다. “주여,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예수가 이틀을 더 머무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