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0장 사마리아의 우물가
사마리아를 지나가야 했다
1 예수가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를 얻고 세례를 준다는 말이 바리새파에게 전해졌다.
2 사실 예수 자신이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었다.
3 예수가 이 말을 들으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다시 가셨다.
4 그 길에 사마리아(Samaria)를 거쳐 가야 했다.
1세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 때 보통 사마리아를 우회했다. 요단 강 동쪽 길을 둘러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의 북왕국 정복 이후 외래 민족과 섞여 살아온 후손이었다.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삼고,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 산을 성지로 여겼다. 양쪽의 반목은 8세기를 거치며 깊어져 있었다. 본문은 두 글자로 끝낸다 — “거쳐 가야 했다.” 우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5 예수가 사마리아의 수가(Sychar · ㉸ 시카르)라는 마을에 오셨다.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6 야곱의 우물이 거기 있었다.
예수가 길을 오느라 지치셔서 그 우물 곁에 그냥 앉으셨다.
때는 정오쯤이었다.
‘야곱의 우물’은 현대 나블루스 외곽의 비르 야쿱(Bir Yaqub)으로 비정된다. 깊이 약 30미터의 실재하는 우물이다. 4세기 부르디갈라(보르도) 순례자의 여행기(333년)가 이 우물을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로 처음 기록했다. 19세기 동방정교회 그리스 정교회가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고, 우물은 지금도 사용된다.
정오의 우물 —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새벽이나 해가 진 뒤에 물을 길었다. 더위를 피하고 사회적 만남을 위해서였다. 정오에 혼자 오는 것은 다른 여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시간표였다.
”물을 좀 주시오”
7 사마리아 여인 하나가 물을 길러 왔다.
예수가 말씀하셨다.
“물을 좀 주시오.”
8 제자들은 음식을 사러 마을에 들어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인이 멈칫하며 말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그릇을 함께 쓰지 않았다.
10 예수가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물을 좀 달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여인이 말했다.
“선생님, 두레박도 없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자기도 마시고 자기 아들들과 짐승들도 마셨습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십니까?”
13 예수가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나는 샘이 될 것이다.”
15 여인이 말했다.
“선생님, 그 물을 내게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목마르지 않고 여기 물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게 해 주십시오.”
다섯 남편
16 예수가 말씀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17 여인이 대답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가 말씀하셨다.
“남편이 없다고 한 것이 맞다.
18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 네 말이 맞다.”
19 여인이 말했다.
“선생님, 선지자이시군요.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당신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이 산” — 사마리아인들의 성지 그리심 산(Mount Gerizim · ㉸ 그리짐 산 — 현대 나블루스 인근)이다. 신명기 11:29에서 모세가 축복을 선포할 산으로 지명된 곳이다.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4세기에 여기 성전을 세웠다. 기원전 128년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가 그 성전을 파괴했다. 여인의 질문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니다. 200년 전 무너진 자기 민족의 성전이 그 질문 안에 들어 있다.
21 예수가 말씀하셨다.
“나를 믿어라. 여인이여,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25 여인이 말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불리는 분이 오실 줄 저는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26 예수가 말씀하셨다.
“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그다.”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임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첫 번째 자리다. 공관복음서에서 이 고백은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 한 뒤에야 나오고, 거기서도 예수는 제자들에게 함구하라고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사마리아 여인 — 이름도 없는 여인 — 에게 먼저 직접 말씀하신다. 학자 레이먼드 브라운은 이 비대칭이 요한 공동체의 특성을 보여 준다고 본다. 변두리에서 먼저 인식되고 중심에서 거부당하는 패턴.
물동이를 두고
27 바로 그때 제자들이 돌아왔다. 예수가 여인과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도 “왜 그 여인과 이야기하십니까?”라고도 묻지 않았다.
28 여인이 물동이를 두고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들에게 말했다.
29 “와서 보십시오. 내가 한 일을 모두 말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30 그들이 마을에서 나와 예수께로 왔다.
31 그동안 제자들이 예수께 청했다.
“랍비, 드십시오.”
32 예수가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것이 있다.”
33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누가 드실 것을 갖다 드렸나?”
34 예수가 말씀하셨다.
“내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 넉 달이 있어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
36 거두는 사람이 이미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열매를 모은다. 씨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게 된다.
37 이것이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맞는 이유다.
38 나는 너희를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곳에 거두러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수고했고, 너희는 그 수고의 열매를 받은 것이다.”
물동이를 두고 갔다는 한 줄의 기록이 정밀하다. 여인이 물 길으러 온 본래 목적을 잊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 부끄러움을 그대로 말한다 — “내가 한 일을 모두 말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정오에 혼자 오던 여인이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 사람들을 모은다.
이틀의 머묾
39 그 마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믿었다. “그분이 내가 한 일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라고 증언한 여인의 말 때문이었다.
40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 예수가 거기서 이틀을 머무셨다.
41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
42 그들이 여인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의 말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이 정말로 세상의 구원자이신 줄 알았소.”
사마리아 여인은 요한복음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 전체가 그녀의 증언으로 움직였다. 정오에 아무도 없을 때 물 길러 온 여인 — 한밤중에 몰래 온 지도자 니고데모와 대비된다. 둘 다 예수를 만났다. 한 사람은 이름이 있고 한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은 산헤드린 의원이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 여인이다. 요한복음의 이 의도된 대조는 9장 니고데모 장면을 거꾸로 비춘다.
두 번째 표적
43 이틀 뒤 예수가 갈릴리로 떠나셨다.
44 예수 자신이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셨다.
45 갈릴리에 이르셨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그를 환영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일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었다.
46 예수가 다시 갈릴리 가나에 가셨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곳이었다.
가버나움에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들이 병들어 있었다.
47 그 사람이 예수가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께 와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다. 아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48 예수가 말씀하셨다.
“너희는 표적과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왕의 신하가 말했다.
“선생님,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50 예수가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났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종들이 마주 나와 아들이 살았다고 알려 주었다.
52 그가 아들이 좋아진 때를 물으니, 종들이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다고 했다.
53 아버지는 그것이 예수가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하신 바로 그 시간인 줄 알았다.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었다.
54 이것은 예수가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뒤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었다.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와 마태복음 8장·누가복음 7장의 백부장 종 치유는 비슷해 보인다. 둘 다 가버나움이 무대다. 둘 다 멀리서 말씀만으로 치유된다. 둘 다 이방인 또는 이방계 인물이 등장한다. 레온 모리스(『요한복음 주석』 1971)는 두 사건을 같은 사건의 변형으로 본다. 왕의 신하가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아마 이방인)이고 백부장도 로마인이었으니 동일 인물의 다른 보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글라스 무(2017)와 D.A. 카슨(1991)은 별개의 사건으로 본다. 환자가 다르다 — 왕의 신하의 경우 아들, 백부장의 경우 종. 환자의 병도 다르다. 신하는 “네가 표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고 책망받는 반면, 백부장은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받는다. 통합본은 두 사건설을 따라 백부장 사건을 13장에서 따로 다룬다.
이 장은 요한 4:1-42(사마리아 여인)과 요한 4:43-54(왕의 신하의 아들)를 통합했다. 사마리아 여인 일화는 요한 고유 자료다. 공관복음서에는 사마리아인이 적극적인 역할로 등장하는 장면은 누가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누가 17장의 나병환자 열 명 중 한 명 정도로 제한된다. 요한복음은 사역 초반에 사마리아 마을 전체가 회심하는 장면을 둠으로써 누가복음의 사마리아 호의를 더 멀리 밀어붙인다.
다음 장 — 갈릴리에서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첫 도시 나사렛에서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동족이 그를 절벽 끝까지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