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5장 물 위, 생명의 빵, 가나안 여인

어둠 속의 호수

1 오천 명을 먹이신 그 저녁이었다. 예수가 무리를 흩으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우셨다.

2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Bethsaida · ㉸ 벳사이다) 쪽으로 가게 하셨다.

3 무리를 보내신 뒤에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혼자 거기 계셨다.

4 저녁이 되자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다. 예수는 홀로 땅에 계셨다.

5 바람이 거슬러 불었다. 제자들이 노 젓느라 시달리고 있었다. 사경(밤 세시에서 여섯시 사이)이 되었다.

6 예수가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가셨다. 그들 곁을 지나가려 하셨다.

7 제자들이 호수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알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 그를 보고 놀랐다.

8 즉시 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9 베드로(Peter)가 대답했다.

“주님, 정말 주님이시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하십시오.”

10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갔다.

11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다. 가라앉기 시작했다. 소리쳤다.

“주님, 저를 구하소서.”

12 예수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

13 두 사람이 배에 올라타자 바람이 그쳤다.

14 배 안에 있던 자들이 그에게 절하며 말했다.

“진실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5 그들이 가려던 땅 게네사렛(Gennesaret · ㉸ 겐네사렛)에 닿았다.

마태와 마가, 요한이 모두 이 사건을 기록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는 부분은 마태에만 있다. 마가는 “그들이 마음이 둔하여 빵 사건을 깨닫지 못했다”고 덧붙인다(마가 6:52). 요한은 사건의 종결로 “배가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닿았다”고 적는다(요한 6:21) — 물 위 보행 자체에 또 하나의 표적을 더한 것이다.

“나다(에고 에이미 — ἐγώ εἰμι)“는 출애굽기 3:14에서 야훼의 자기 호칭이다. 호수 위의 어둠 한가운데서 예수는 모세에게 들렸던 그 이름을 자기 입에 올렸다. 마가의 본래 헬라어 본문은 “그들 곁을 지나가려 하셨다”고 적는데, 출애굽 33:22에서 모세 앞을 야훼가 “지나가시는” 동사와 같은 단어다.


가버나움 회당, 생명의 빵

16 다음 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무리가 다른 작은 배가 한 척만 있었던 것과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떠나지 않으셨던 것을 알아챘다.

17 디베랴(Tiberias · ㉸ 티베리아스)에서 작은 배 몇 척이 와 있었다. 무리가 그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Capernaum · ㉸ 카파르나움 — 갈릴리 호수 북서안)으로 건너왔다.

18 호수 건너편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19 예수가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0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그것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인증하셨다.”

21 그들이 물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22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23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도록 무슨 표적을 행하시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기록되기를 ‘그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빵을 주어 먹게 했다’ 하였습니다.”

24 예수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하늘에서 빵을 준 자는 모세가 아니다.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에서 참 빵을 주신다.

25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분이다.”

26 “주님, 이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27 예수가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일곱 번 등장하는 “에고 에이미”의 첫 번째다. “나는 ~이다.” 출애굽 3:14의 야훼 자기 호칭과 같은 그리스어 표현. 가버나움 회당의 한 강화 안에 일곱 번 반복된다.


어려운 말씀

28 그곳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요셉(Joseph)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우리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는가?”

29 예수가 대답하셨다.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누구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30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으나 죽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이다. 사람이 먹고 죽지 않게 하는 빵이다.

3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그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다.”

32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며 말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게 하겠는가?”

33 예수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다.

3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35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이 말씀을 하셨다.

36 제자 가운데 많은 자가 듣고 말했다.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는가?”

37 예수가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그러면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떠하겠느냐?

38 영이 살리는 것이다. 육은 무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39 이 일 이후에 제자 가운데 많은 자가 물러갔다.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40 예수가 열둘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떠나려느냐?”

41 시몬 베드로(Simon Peter)가 대답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

42 우리는 주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심을 믿었고 알았습니다.”

43 예수가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다.”

44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Judas Iscariot · ㉸ 유다 이스카리옷)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였으나 장차 예수를 넘겨줄 자였다.

“이 말씀은 어렵다(스클레로스 호 로고스 — σκληρός ὁ λόγος).” 어렵다고 옮긴 단어 스클레로스는 “거칠다, 단단하다,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가버나움 회당의 청중 다수가 이 한 강화 끝에 떠났다. 요한복음 안에서 이 장면은 베드로의 작은 고백을 끌어낸다 —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마태 16장의 가이사랴 빌립보 고백과 평행한다는 학자들의 지적이 있다.


장로의 전통

45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온 바리새인(Pharisees · ㉸ 바리사이)들과 서기관 몇이 예수께 모여들었다.

46 그들이 보니 예수의 제자 가운데 어떤 자들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고 있었다.

47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은 장로의 전통을 지켜 손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시장에서 돌아오면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잔, 항아리, 놋그릇, 침상을 씻는 일 등 받아 지키는 것이 많았다.

4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의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않습니까? 왜 그들이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

49 예수가 대답하셨다.

이사야(Isaiah)가 너희 위선자에 대해 잘 예언했다. 기록되기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가르치며 헛되이 나를 경배한다.

50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굳게 잡는다.”

51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자기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52 모세(Moses)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했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난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라’ 했다.

53 그런데 너희는 말한다 —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가 드려 당신께 유익이 될 것은 코르반(곧 하나님께 드림)이라’ 하면, 그 사람을 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54 그래서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이런 일을 너희가 많이 행한다.”

코르반 — 히브리어 קָרְבָּן (제물). 어떤 재산을 “코르반이다” 곧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라고 서원하면 그 재산은 다른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게 묶인다. 미슈나 네다림(Nedarim) 1–11장이 서원법을 다룬다. 1세기 일부 사람이 부모 부양 재산을 코르반으로 묶어 부양 의무를 회피했다. 서원이 끝나도 그 묶임은 풀리지 않았다. 예수의 비판은 형식 율법이 본 율법(부모 공경)을 무력화한 사례를 정확히 짚었다.


안에서 나오는 것

55 예수가 다시 무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듣고 깨달아라. 무엇이든 사람 밖에서 들어가 그를 더럽게 하는 것은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56 무리를 떠나 집에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비유에 대해 물었다.

57 “너희도 이렇게 깨닫지 못하느냐? 무엇이든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에 들어갔다가 뒤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말씀으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셨다.

58 또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온다 —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시기, 비방, 교만, 어리석음.

59 이 모든 악한 것이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마가 7:19의 “이 말씀으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셨다”는 마가의 편집자 주다. 1세기 후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정결법 적용 문제가 첨예했다. 사도행전 10장 베드로의 환상, 갈라디아서 2장 안디옥 사건도 같은 맥락. 마가는 예수의 가르침이 정결법 폐지의 신학적 근거가 된다고 본다. 마태는 같은 사건을 전하면서 이 한 줄을 빼고 본문을 닫는다(마태 15:20). 두 복음서가 같은 말씀에서 다른 결론을 끌어냈다.


두로의 여인

60 예수가 거기를 떠나 두로(Tyre · ㉸ 티로) 지방으로 가셨다. 한 집에 들어가셨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 하셨다. 그러나 숨길 수 없었다.

61 그 지방에 사는 한 여인이 그에 관해 듣고 와서 발 앞에 엎드렸다. 그 여인은 헬라인이었고 수로보니게(Syrophoenician · ㉸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다.

62 자기 어린 딸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했다.

여인이 외쳐 말했다.

“주여, 다윗(David)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 들렸습니다.”

63 예수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와서 청했다.

“이 여인을 보내소서. 우리 뒤에서 외칩니다.”

64 예수가 대답하셨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65 여인이 와서 절하며 말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66 예수가 대답하셨다.

“자녀의 빵을 가져다가 개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67 여인이 말했다.

“주여, 옳습니다. 그러나 식탁 아래 강아지도 자녀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68 예수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이 말 때문에 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69 여인이 집에 돌아가니 아이가 침상에 누워 있고 귀신이 나가 있었다.

수로보니게(시리아-페니키아) — 마가의 표현. 마태는 같은 여인을 “가나안 여인”으로 부른다. 두로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 약 50km, 지중해변의 페니키아 도시. 1세기 행정상 시리아 속주에 속했다. 예수가 이방 지역에 들어간 첫 명시적 기록이다. “개”라 불리는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치는 여인의 응답은 4복음서 가운데 예수가 누군가의 말 때문에 입장을 옮긴 드문 장면이다. 본문은 인종적 거절 같은 이 첫 응답을 부드럽게 하지 않는다. 그대로 적는다.


사천 명을 먹이심

70 그 무렵 또다시 큰 무리가 모였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71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 그들이 나와 함께한 지 이미 사흘이다. 먹을 것이 없다. 굶겨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것이다. 가운데 멀리서 온 자들도 있다.”

72 제자들이 대답했다.

“이 광야에서 어디서 빵을 얻어 이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겠습니까?”

73 예수가 물으셨다.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일곱입니다.”

74 그가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빵 일곱 개를 가지시고 감사기도하신 뒤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셨다. 제자들이 무리에게 놓았다.

75 작은 물고기 몇 마리도 있었다. 축복하신 뒤 그것도 놓게 하셨다.

76 사람들이 먹고 배불렀다.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다.

77 먹은 자들은 약 사천 명이었다.

78 예수가 무리를 보내신 뒤 곧 제자들과 배에 올라 달마누다(Dalmanutha · ㉸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오천 명과 사천 명 — 같은 사건의 두 보고인지, 별개 사건인지. 두 사건설을 옹호한 학자로 D.A. 카슨(『마태복음 주석』 1984)과 크레이그 키너(『매튜』 1999)가 있다. 한 사건의 변형설은 B.H. 스트리터(『네 복음서』 1924)와 루돌프 불트만(『공관복음 전승사』 1921)의 입장이다. 본문 자체가 마태 16:9-10에서 두 사건을 분리해 회상하는 점, 광주리(코피노스 — 작은 유대식 바구니)와 광주리(스퓌리스 — 큰 이방식 바구니)의 단어가 일관되게 다른 점이 두 사건설의 본문 내적 근거다.

이 장은 마태 14:22-33, 15:1-39 / 마가 6:45-56, 7:1-8:10 / 누가 (없음) / 요한 6:16-71을 통합했다. 베드로의 물 위 걸음은 마태 고유, 생명의 빵 강화는 요한 고유, 코르반과 가나안 여인은 마태와 마가, 사천 명은 마태와 마가에 있다. 누가는 이 일련의 사건을 거의 전하지 않는다 — 누가의 “큰 누락(Great Omission)“으로 불리는 마가 6:45-8:26 부분이 누가복음에 없기 때문이다. 학자 B.H. 스트리터는 누가가 사용한 마가 사본에 이 부분이 없었거나 누가가 이방 사역 중복을 피해 의도적으로 뺐다고 본다.

다음 장 — 가이사랴 빌립보 길목, 헤르몬산 기슭에서 예수가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