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4장 박사들과 헤롯의 칼
동방에서 별을 따라
1 헤롯 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나셨다. 그때에 동방에서 박사들(Magi · ㉸ 동방 박사)이 예루살렘에 와서 물었다.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를 경배하러 왔다.”
‘박사들’로 옮겨진 그리스어 마고이(μάγοι)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급을 가리킨다. 헤로도토스 『역사』 1권은 마고이를 메디아 부족의 한 분파로, 꿈의 해석과 천체 관측을 직무로 하는 자들이라 적는다. 다니엘서 2장에서 바벨론의 “갈대아인 박사들”과 같은 계열이다. 본문은 그들이 몇 명인지 밝히지 않는다. 이름도, 나라도 적지 않는다. 후대 전승이 세 가지 예물에서 역산해 셋이라 부르고, 8세기 라틴 본문에서 발타사르·카스파르·멜키오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마태는 그저 “박사들”이라 적는다.
베들레헴 별의 정체에 관해 학자들의 가설은 갈라진다. 1604년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자기 시대에 관측된 초신성을 단서 삼아 기원전 7년 5월·9월·12월에 있었던 목성과 토성의 삼중합(triple conjunction)을 후보로 제시했다(『새로운 별』 1606). 두 행성이 물고기자리에서 세 번 가까워지는 드문 천문 현상이다. 또 다른 가설은 기원전 5년 3월·4월에 중국 천문학자들이 기록한 혜성(『한서』 천문지)을 든다. 신학자 레이먼드 브라운은 마태가 천문 사건을 알고 적었는지, 민수기 24:17의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리라”는 발람의 예언을 신학적으로 활용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본다(『메시아의 탄생』 1977).
헤롯의 불안
3 헤롯 왕이 이 말을 듣고 불안해졌다. 예루살렘 온 성도 함께 불안해했다.
4 왕이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다.
5 그들이 말했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선지자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통치자들 가운데 결코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목양할 것이다.’”
미가 5:2의 인용이다. 마태는 히브리어 원문과 칠십인역을 섞어 가져온다. 미가의 원문에서 베들레헴은 “유다의 천천 가운데 가장 작은 자”였다. 마태는 “결코 작지 않다”로 뒤집는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됨 — 마태가 즐기는 역전의 패턴이 인용 안에서도 작동한다.
7 헤롯이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알아냈다.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했다.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뒤에, 찾거든 내게 알려라. 나도 가서 경배하겠다.”
헤롯 대왕(기원전 73~기원전 4년)은 로마의 임명을 받아 유다를 통치한 이두매(Idumea · ㉸ 에돔) 출신 왕이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왕위의 정당성이 늘 흔들렸다. 그는 자기 아내 마리암네와 두 아들 알렉산드로스·아리스토불로스, 그리고 또 다른 아들 안티파테르를 차례로 처형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7권은 임종 직전의 헤롯이 경쟁 후보를 모두 제거하는 데 집착한 모습을 길게 적는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다”는 단 한 마디가 그를 흔들 만한 토양이 충분히 있었다.
별이 멈춘 자리
9 그들이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그들 앞에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추었다.
10 그들이 그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했다.
11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했다.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세 가지 예물이 후대에 세 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신성, 몰약은 죽음의 향료다. 이 해석은 2세기 이레네우스의 『이단 반박』 3권에서 처음 등장한다. 본문 자체는 단지 귀한 예물이라고 전한다. 몰약(myrrh)은 방부 처리와 애도에 쓰이는 향료였다. 요한복음 19:39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의 시신에 같은 향료를 가져온다.
12 그들은 꿈에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집트로 가는 밤길
13 그들이 떠난 뒤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말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Egypt)로 피하라.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 있어라.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찾을 것이다.”
14 요셉이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다.
15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 있었다.
이로써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호세아 11:1의 인용이다. 호세아의 원문에서 “내 아들”은 출애굽 사건에서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불려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다. 마태는 그 본문이 예수 한 사람에게서 다시 한번 일어난다고 읽는다. 이스라엘이 한 백성으로 행한 출애굽을 예수가 한 몸으로 다시 살아낸다 — 마태복음 전체의 독법이 이 한 인용에 농축되어 있다.
라마의 통곡
16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매우 노했다.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역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다.
17 이로써 선지자 예레미야(Jeremiah)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Ramah)에서 소리가 들렸다. 통곡하는 소리, 심히 애통해하는 소리. 라헬(Rachel)이 자기 자녀를 위해 울고 있다. 자녀가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부한다.”
예레미야 31:15의 인용이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베냐민 지파의 어머니다. 창세기 35:19은 그가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 베들레헴 가는 길에 묻혔다고 적는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포로기에 라헬이 무덤에서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통곡으로 우는 모습을 그렸다. 마태는 그 통곡이 같은 베들레헴에서 한 번 더 울린다고 읽었다.
영아 학살의 외부 기록은 없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의 잔혹한 행위 — 자기 아들을 처형하고, 죽기 직전 예루살렘 유력자들을 가두어 자기 장례식 날 처형하라 명한 일까지 — 를 『유대 고대사』 17권에서 길게 적지만, 베들레헴 영아 학살은 그의 기록에 없다. 학자들 사이의 입장은 갈린다. 레이먼드 브라운(『메시아의 탄생』 1977)과 존 P. 마이어(『변두리의 유대인』 1권 1991)는 마태의 신학적 구성으로 본다 — 출애굽 1장의 바로의 영아 학살을 모형으로 삼아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그렸다는 입장이다. W.D. 데이비스 & 데일 앨리슨(ICC 마태복음 주석 1988)은 1세기 베들레헴이 작은 촌락이었음을 고려하면 피해 아동 수가 많아야 20명 안팎이었을 것이며, 헤롯의 다른 잔인한 행위들 사이에서 외부 기록에 남지 않았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나사렛 사람
19 헤롯이 죽은 뒤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말했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우스(Archelaus · ㉸ 아르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가기를 두려워했다. 꿈에서 경고를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났다.
23 거기서 나사렛이라는 마을에 가서 살았다.
이로써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리라”는 구약의 직접 인용을 찾을 수 없다. 마태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 “선지자들”이라고 적은 것이 단서다. 학자들은 두 가지 후보를 제시한다. 이사야 11:1의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가지(네쩨르 · נֵצֶר)가 나오리라”가 ‘나사렛’의 어근과 같다는 언어 유사성, 그리고 사사기 13:5에서 삼손이 “나실인(Nazir · נָזִיר)“이라 불린 것과의 음운 유사성이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마태가 두 흐름을 한 번에 끌어안았다고 보는 것이 ICC 주석(데이비스 & 앨리슨)의 입장이다.
아르켈라우스(기원전 23~기원후 18년)는 헤롯 대왕의 아들 중 가장 잔인했다. 즉위 직후 유월절에 성전 뜰에서 3천 명을 학살했다(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권 1장). 기원후 6년 로마가 그를 폐위하고 갈리아로 추방했다. 갈릴리는 그의 동생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다. 본 통합복음서 5장에서 누가 3:1이 그를 다시 호명한다.
열두 살의 성전
24 예수의 부모는 유월절마다 예루살렘에 갔다.
25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 절기 관례를 따라 함께 올라갔다.
26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부모는 알지 못했다.
27 동행하는 무리 가운데 있는 줄로 알고 하룻길을 갔다. 그 다음에야 친족과 아는 자 가운데서 찾았다.
28 찾지 못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찾았다.
29 사흘 후에 그가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30 듣는 자가 다 그의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다.
31 부모가 보고 놀랐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야,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너의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다.”
32 예수가 말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33 그들은 그가 한 말을 깨닫지 못했다.
34 예수가 함께 내려가 나사렛에 이르러 부모에게 순종했다.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겼다.
35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가 처음 입을 여는 장면이다. 그 첫 말이 “내 아버지의 집”이다. 요셉은 거기 함께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가리킨 아버지는 다른 분이었다. 누가는 이 한 장면을 24장 부활 서사 직전까지 길게 끌어가는 질문 — 예수가 누구인가 — 의 입구로 배치한다.
이 장은 마태 2:1-23 전체와 누가 2:40-52를 시간 순서로 통합했다. 마태는 박사들의 경배·이집트 피난·영아 학살·나사렛 정착이라는 정치적 위기의 연쇄로 출생 후 수년을 그린다. 누가는 같은 시간대를 평범한 가족의 일상과 열두 살의 한 장면으로 채운다. 두 복음서가 다른 자료에서 출발해 같은 결말 — 예수가 나사렛에서 성장한다 — 으로 수렴한다.
동방박사의 방문 시점은 학자들 사이에서 출생 직후가 아니라 1–2년 뒤로 본다. 마태 2:11이 “아기”가 아니라 “어린아이(파이디온 — παιδίον)“라 적었고, 헤롯이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학살한 기준이 박사들에게서 들은 별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본 통합복음서는 시간순 배열을 따라 누가 2장의 정결예식과 마태 2장의 박사 방문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었다.
다음 장 — 약 30년이 흐른다. 광야에서 한 사람이 외친다. 그의 옷은 낙타털,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