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2장 두 가정에 임한 천사

향단 오른쪽에 선 천사

1 유대 왕 헤롯(Herod · ㉸ 헤로데) 때에 사가랴(Zechariah · ㉸ 즈카르야)라 하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는 아비야(Abijah) 반열에 속한 자였다.

그 아내는 아론(Aaron)의 자손으로 이름이 엘리사벳(Elizabeth)이었다.

2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흠 없이 지켰다.

3 자식이 없었다. 엘리사벳이 임신하지 못했고, 둘 다 이미 나이가 많았다.

제사장 직분은 다윗 시대부터 24개 반열로 나뉘어 있었다(역대상 24장). 아비야 반열은 여덟 번째 반열이다. 한 반열이 1년에 두 차례, 한 번에 일주일씩 성전 직무를 맡았다. 사가랴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분향의 차례를 그 주에 받았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 — 사라, 리브가, 라헬, 한나가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시작한 아이가 이삭, 야곱, 요셉, 사무엘이었다. 누가는 첫 장면에서 이 패턴을 의식적으로 활성화한다.

4 사가랴가 자기 반열의 직무 차례를 맞아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일을 행했다.

5 제사장 직무의 관례를 따라 제비를 뽑았다. 분향하러 주의 성소에 들어가는 차례가 그에게 떨어졌다.

6 분향하는 동안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7 주의 사자가 향단 오른쪽에 서서 그에게 나타났다.

8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두려워했다.

9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사가랴여,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기도가 들렸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름을 요한(John)이라 하라.

10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그의 출생을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이다.

11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다. 포도주나 독한 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할 것이다.

12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을 그들의 하나님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13 그가 엘리야(Elijah)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이키고, 거스르는 자들을 의인의 슬기로 돌이켜, 주를 위해 예비한 백성을 세울 것이다.”

14 사가랴가 천사에게 물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15 천사가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Gabriel)이다. 너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다.

16 보라,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네가 내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다.”

17 백성이 사가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18 사가랴가 나왔다. 말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성소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다. 그는 손짓만 했다. 말을 잃은 채로 있었다.

19 그의 직무 기간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갔다.

20 얼마 뒤에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했다.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다. 그가 말했다.

“주께서 내 부끄러움을 사람들 앞에서 거두시려고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이렇게 행하셨다.”


나사렛에 보내신 가브리엘

21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 같은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Galilee · ㉸ 갈릴래아 — 현대 이스라엘 북부) 지방의 나사렛(Nazareth · ㉸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갔다.

22 다윗의 집안 사람 요셉(Joseph)과 약혼한 처녀에게 보내신 것이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Mary)였다.

23 천사가 들어와 말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하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24 마리아가 그 말에 몹시 당황했다. 이 인사가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25 천사가 말했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

26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예수(Jesus)라 하라.

27 그가 크게 될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다.

28 그가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릴 것이다. 그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이다.”

29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30 천사가 대답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31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가졌다. 임신하지 못한다 불리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

32 하나님께는 어떤 말씀도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다.”

33 마리아가 말했다.

“주의 여종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천사가 그에게서 떠났다.

마리아의 응답은 한 문장이다. 항의하지도, 협상하지도 않았다. 사가랴가 의심하다 입을 잃은 것과 대비된다. 누가는 두 응답을 나란히 두고 차이를 부각한다.


요셉의 꿈

34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뒤, 함께 살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드러났다.

35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파혼하려 했다.

36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를 네 아내로 받아들여라. 그녀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

37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다.”

예수(이에수스 — Ἰησοῦς)는 히브리어 예슈아(יֵשׁוּעַ)의 그리스어 표기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이다. 천사는 이름의 뜻과 사명을 한 문장으로 묶었다.

38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39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Immanuel)이라 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와 누가는 출생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쓴다. 마태는 요셉의 시각이다 — 꿈을 꾸고, 천사의 명령을 받고, 행한다. 요셉은 마태복음 전체에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누가는 마리아의 시각이다 — 천사와 대화하고, 친족을 찾아가고, 노래한다. 두 시각이 합쳐져야 한 가족이 된다.

마태가 인용한 이사야 7:14의 히브리어 원문은 알마(עַלְמָה)다.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반드시 처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그리스어 번역본 칠십인역(Septuagint)은 이 단어를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 처녀로 옮겼다. 마태는 칠십인역을 따랐다.

40 요셉이 잠에서 깨어 주의 천사가 명한 대로 행하여 아내를 받아들였다.

41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를 알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예수라 했다.


마리아가 산골을 찾아가다

42 그 무렵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 동네로 갔다. 유다(Judah) 지방의 한 동네였다.

43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했다.

44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 소리를 들을 때, 그 태 안의 아이가 기쁨으로 뛰었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했다.

45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성 가운데 복받은 자입니다. 당신 태 안의 아이도 복받은 자입니다.

46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오시다니, 이 은혜가 어찌 된 일입니까?

47 당신의 문안 소리가 내 귀에 닿을 때 태 안의 아이가 기쁨으로 뛰놀았습니다.

48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은 여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니피카트

49 마리아가 말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합니다.

50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합니다.

51 그가 이 여종의 낮은 상태를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복이 있다 할 것입니다.

52 능하신 이가 내게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거룩합니다.

53 그의 긍휼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릅니다.

54 그의 팔로 힘을 보이셨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5 권력자들을 자리에서 내리셨습니다. 낮은 자들을 높이셨습니다.

56 주린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습니다. 부한 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셨습니다.

57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긍휼히 기억하심으로 하셨습니다.

58 우리 조상에게, 곧 아브라함(Abraham)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하셨습니다.”

59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머물다 집으로 돌아갔다.

마니피카트(Magnificat)는 4세기 라틴어 번역인 불가타의 첫 단어 “magnificat”(찬양한다)에서 온 이름이다. 사무엘상 2장에서 한나가 사무엘을 얻은 뒤 부른 노래와 구조와 내용이 거의 같다. 두 노래는 사회적 역전을 선포한다. 누가복음 전체의 신학적 방향이 이 노래에 압축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요한

60 엘리사벳의 해산할 날이 찼다. 아들을 낳았다.

61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큰 긍휼을 베푸셨다는 말을 듣고 함께 기뻐했다.

62 여덟째 날이 되었다. 아이를 할례하러 모였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려 했다.

63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이라 할 것입니다.”

64 사람들이 말했다. “친족 중에 그 이름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65 아버지에게 손짓으로 아이의 이름을 무엇이라 할지 물었다.

66 사가랴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적었다. 모두가 놀랐다.

67 그 순간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다.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68 그 근처에 사는 자들이 두려워했다. 이 모든 일이 온 유대 산골에서 두루 이야기되었다.


베네딕투스

69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했다.

70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여. 그가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속량하셨도다.

71 우리를 위하여 그 종 다윗의 집에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도다.

72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으로 말씀하신 대로,

73 우리 원수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로다.

74 우리 조상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도다.

75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그 일이로다.

76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평생토록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게 하시리로다.

77 이 아이여, 너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불릴 것이다.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리로다.

78 죄 사함으로 인한 구원의 지식을 그 백성에게 알게 하리로다.

79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위로부터 돋는 해가 우리에게 임하여,

80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81 아이가 자랐다. 심령이 강해졌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서 지냈다.

베네딕투스(Benedictus)는 라틴어로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이다. 사가랴는 아홉 달의 침묵 끝에 첫 말로 찬양을 쏟아냈다. 침묵이 사가랴에게 어떤 준비였는지 본문은 풀어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했다고만 적는다.

이 장은 누가 1:5-25, 1:26-38, 1:39-56, 1:57-80과 마태 1:18-25를 시간 순서로 통합했다. 누가는 사가랴와 마리아 두 잉태를 평행시켜 쓴다 — 천사가 같은 가브리엘이고, 의문에 대한 응답이 대비되며, 두 노래(마니피카트·베네딕투스)가 서로의 거울이다. 마태는 같은 사건을 요셉의 꿈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마태와 누가의 출생 narrative는 누가 마리아 시각, 마태가 요셉 시각으로 갈라지지만, 두 복음서 모두 같은 두 구약 본문을 인용한다 — 미가 5:2(베들레헴)이사야 7:14(동정녀 잉태)다. 학자 레이먼드 브라운은 『메시아의 탄생』(1977)에서 이 두 본문이 1세기 후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미 메시아 예언으로 통용되었으며, 마태와 누가가 각자 다른 출처에서 같은 인용 패턴을 받아들였다고 본다.

다음 장 — 호적령이 내리고, 만삭의 임산부가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여관에는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