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24장 겟세마네의 밤

감람산으로

1 그들이 찬미하고 다락방을 나가 감람산으로 갔다.

2 가는 길에 예수가 말씀하셨다.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3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4 베드로가 답했다.

“비록 다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5 예수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6 베드로가 더 격하게 말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같이 말했다.

공관복음의 닭 울기 예고는 마태 26:34, 마가 14:30, 누가 22:34, 그리고 요한 13:38에 분포되어 있다. 마가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라고 한다. 다른 셋은 “닭이 울기 전에.” 마가가 가장 오래된 보고이고, 마태와 누가가 마가를 짧게 다듬었다는 것이 B.H. 스트리터(『네 복음서』 1924) 이래의 표준 설명이다.


겟세마네 동산

7 그들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Gethsemane · ㉸ 겟세마니)라 하는 곳에 이르렀다. 거기 동산이 있었다. 예수가 자주 제자들과 가서 만나던 곳이었다. 유다도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

8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어라.”

9 베드로와 세베대(Zebedee · ㉸ 제베대오)의 두 아들 — 야고보와 요한 — 을 데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셨다. 슬퍼하시고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10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영혼이 극도로 슬퍼서 죽을 것 같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11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주십시오.”

아바(אַבָּא, abba) — 아람어로 ‘아빠’에 가까운 친근한 호칭이다. 1세기 유대인이 하나님에게 직접 이 호칭을 쓰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새로운 신약신학』 1971)는 이 한 단어가 예수의 하나님 호칭의 독특함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후대 학자 제임스 바(James Barr, 1988)는 ‘아빠’까지의 친근함은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어원이 어떻든 이 부르심이 친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2 천사가 하늘에서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였다.

13 예수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

피땀(hidrosis sanguinis) — 누가 22:43-44 — 의학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땀에 피가 섞이는 현상이 보고되어 있다(레이먼드 브라운, 『메시아의 죽음』 1994). 그러나 이 두 절은 4세기 시내사본바티칸사본에 빠져 있다. 브루스 메츠거(『신약 본문 비평 주석』 1971)는 후대 추가설을 표준으로 본다. 반면 레이먼드 브라운은 누가의 원본문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본문비평적으로 어느 쪽도 결정적이지 않다.


14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들이 자고 있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15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영은 원하나 육이 약하다.”

16 다시 두 번째로 나아가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주십시오.”

17 다시 오시니 그들이 또 자고 있었다. 눈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어라 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18 그들을 두고 다시 나아가 세 번째로 같은 말로 기도하셨다.

19 그 후에 제자들에게 와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어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진다.

20 일어나라. 가자. 보라, 나를 넘기는 자가 가까이 왔다.”

겟세마네 — 감람산 서편 기슭의 작은 정원. 헬라어 겟세마니는 아람어 가트 셰마님(기름 짜는 틀)에서 왔다. 1세기 동산은 감람나무 숲과 기름 짜는 틀이 있는 작은 농원이었다. 현대 같은 자리에는 4세기 비잔틴 교회 유적과 1924년에 지어진 프란치스코회의 모든 민족 교회가 있다. 그 옆에는 수령 2천 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감람나무 여덟 그루가 남아 있다 — 그날 밤 일을 본 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입맞춤

21 예수가 아직 말씀하실 때 열둘 중 하나인 유다가 왔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보낸 큰 무리가 검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 등불과 횃불도 들고 있었다.

22 유다는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정해두었다.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다. 그를 잡아 단단히 끌고 가라.”

23 유다가 즉시 예수께 다가가 말했다.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

24 예수가 말씀하셨다.

“친구여, 무엇 하러 왔느냐.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기느냐.”


25 예수가 자기에게 닥쳐올 모든 일을 아시고 그들을 향해 나아가 물으셨다.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다.”

26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그다.”

배신자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27 “내가 그다”라고 하시자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쓰러졌다.

28 예수가 다시 물으셨다.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다.”

29 예수가 답하셨다.

“내가 그라고 너희에게 말했다.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두어라.”

요한 18:6의 “그들이 뒤로 물러서서 땅에 쓰러졌다” — 요한 고유. 헬라어 에고 에이미(“내가 그다”, 또는 “내가 있다”)는 출애굽기 3:14의 하나님의 자기 호칭과 같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쓴다.


칼을 빼지 마라

30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일어날 일을 보고 말했다.

“주여, 우리가 칼로 치겠습니까.”

31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잘라냈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Malchus · ㉸ 말코)였다.

32 예수가 말씀하셨다.

“이만하면 됐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33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구하면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34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어야 한다는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아버지가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35 예수가 그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

베드로의 칼 — 마태·마가는 칼을 휘두른 자를 익명으로 둔다. 누가는 귀가 잘렸다고만 한다. 요한만 베드로의 이름과 종의 이름(말고)을 둘 다 보존한다. 익명화는 1세기 후반 박해 상황에서 베드로를 보호하기 위한 편집으로 추정된다(오스카 쿨만, 『베드로』 1953). 베드로가 이미 죽은 뒤(AD 64년경) 쓰인 요한복음에서 이름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강도에게 하듯이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36 예수가 그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셨다.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앉아 가르쳤는데 나를 잡지 않았다.

37 그러나 이것은 너희의 때이고 어둠의 권세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선지자들의 글이 이루어지려는 것이다.”

38 그 때 제자들이 다 그를 버리고 도망쳤다.


알몸으로 도망친 청년

39 한 청년이 알몸에 베 홑이불 한 장만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무리가 그를 잡으려 하자

40 그가 베 홑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쳤다.

마가 14:51-52에만 나오는 짤막한 단락.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이 청년의 정체에 대한 학자들의 추정이 갈린다. 빈센트 테일러(『마가복음 주석』 1952)는 이 청년이 마가복음 저자 자신이라고 본다 — 자기를 익명으로 그림에 끼워 넣은 1세기 화가의 서명 같다는 것이다. R.T. 프랜스(NIGTC 마가복음 2002)는 단순히 익명의 목격자로 본다. 어떤 학자(모턴 스미스)는 후대에 알렉산드리아의 비밀 마가복음과 연결시키려 했지만 본문비평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본문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 다만 한 청년이 알몸으로 도망쳤다는 사실만 남긴다.


출처 매핑

이 장은 마태 26:30-56, 마가 14:26-52, 누가 22:39-53, 요한 18:1-12를 통합했다. 감람산 가는 길의 목자 인용과 닭 울기 예고는 마태·마가에 있고 누가는 다락방 안에서 같은 예고를 보고한다(누가 22:31-34). 이 통합본은 첫 예고를 다락방에서, 두 번째 강화를 길에서로 배치했다. 겟세마네의 세 번 기도는 마태·마가의 보고이고 누가는 한 번의 기도와 천사·핏방울만 보고한다(누가 22:43-44). 마태와 마가는 천사도 핏방울도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은 겟세마네 기도 자체를 보고하지 않는다 — 17장의 대제사장 기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체포 장면에서 유다의 입맞춤은 마태 26:48-50, 마가 14:44-46에 있고, 누가 22:47-48은 입맞춤이 멈춰진 것처럼 그린다(“유다야,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요한 18:4-9의 “내가 그다” 장면과 무리가 쓰러지는 사건은 요한 고유. 칼을 휘두른 자가 베드로라는 것과 종의 이름이 말고라는 것도 요한 고유. 누가만 잘린 귀를 예수가 고치셨다고 보고한다(누가 22:51). 알몸의 청년은 마가 14:51-52 — 마가 고유. 모든 제자가 도망친 것은 마태·마가가 명시하고 누가·요한은 분명한 도망 표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다음 장 — 결박된 예수가 어둠 속을 끌려간다. 첫 번째 장소는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 그리고 그 사위 가야바 앞에 산헤드린이 모여든다. 새벽까지 네 번의 재판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