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20장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한 몸
1 예수가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편 유대 지방으로 들어가셨다. 큰 무리가 따랐다. 거기서 다시 가르치셨다.
2 바리새인들이 와서 그를 시험하여 물었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3 예수가 대답하셨다.
“창조주께서 처음에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고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4 그러므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5 그들이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Moses)는 이혼 증서를 주어 버리라 명령했습니까?”
6 “모세는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리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한 것이다.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누구든 음행한 이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고, 버림 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8 제자들이 말했다.
“만일 부부 사이가 그렇다면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9 예수가 말씀하셨다.
“이 말을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없다. 받을 수 있는 자만 받을 것이다.
10 모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에게 되어진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으라.”
1세기 유대 이혼 논쟁 — 신명기 24:1의 “수치되는 일”의 해석을 놓고 두 학파가 맞섰다. 샤마이 학파(Beit Shammai) — 음행에 한정. 힐렐 학파(Beit Hillel) — 음식 태운 일까지 포함. 미슈나 기틴(Gittin) 9:10이 두 입장을 나란히 적는다. 1세기 후반 랍비 아키바는 더 자유로운 해석을 더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 “어떤 이유로든지”는 힐렐 학파의 입장을 시험한 것이었다. 예수의 답은 모세 이전 창세기 1–2장으로 돌아간다. 음행의 예외만을 인정하는 마태 본문은 샤마이에 가깝지만, 마가와 누가는 예외 없이 절대적이다(마가 10:11-12, 누가 16:18). 예외 조항은 마태에만 있다.
어린아이들
11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와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꾸짖었다.
12 예수가 보시고 분히 여기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다.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누구든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않으면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14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셨다.
부자 청년
15 그가 길에 나서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16 예수가 대답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자가 없다.
17 네가 계명을 안다.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속여 빼앗지 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18 그가 대답했다.
“선생이여,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19 예수가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 말씀하셨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0 그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21 예수가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22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랐다. 예수가 다시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23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24 제자들이 더욱 놀라 서로 말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25 예수가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6 베드로(Peter)가 말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27 예수가 대답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나와 복음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전토를 버린 자는
28 지금 이 시대에 백 배 — 핍박을 겸하여 — 받지 못할 자가 없고, 또 오는 시대에 영생을 받을 것이다.
29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들이 많다.”
“낙타가 바늘귀” — 두 가지 완화 시도가 있었다. 9세기 비잔틴 주석가 테오필락트(Theophylact of Bulgaria)가 처음 언급한 ‘바늘귀 성문설’ — 예루살렘에 좁은 협문이 있어 낙타가 짐을 내리고 무릎을 꿇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 19세기 미국 설교자 헨리 워드 비처가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19–20세기 고고학에서 그런 성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 D.A. 카슨(『마태 EBC』 1984)과 윌리엄 바클레이가 모두 후대 해석으로 정리한다. 다른 시도는 헬라어 카멜로스(낙타)를 카밀로스(밧줄)로 바꾼 사본 변형 — 시리아어 쿠레토니아 사본 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이른 사본 전통(시내·바티칸·알렉산드리아)은 일관되게 낙타다. 비유의 충격은 그대로 두는 것이 본문의 뜻이다.
포도원 품꾼
30 “천국은 마치 자기 포도원에 일꾼을 들이려고 새벽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
31 그가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다.
32 또 제삼시(아침 9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합당한 것을 주리라.’
33 그들이 갔다.
제육시(정오)와 제구시(오후 3시)에도 또 나가 그렇게 했다.
34 제십일시(오후 5시)쯤 또 나가 보니 다른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35 저물 때에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먼저 온 자에게까지 삯을 주라.’
36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37 처음 온 자들도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38 그들이 받고 집주인에게 원망했다.
‘나중 온 이 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뎠습니다.’
39 주인이 그 가운데 한 사람에게 대답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다. 한 데나리온에 합의하지 않았느냐. 네 것이나 받아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다.
40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못하겠느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41 그러므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다.”
한 데나리온 — 1세기 팔레스타인 일용직 노동자의 표준 일급. 로마 군인 일급도 같은 수준이었다. 한 가족 한 끼 정도가 가능한 액수. 십일시에 들어와 한 시간만 일하고 같은 일급을 받는 것은 1세기 노동시장 관행상 충격적인 처사다. 이 비유는 마태에만 있고 마태가 부자 청년 직후에 둔 점 — 처음 된 자와 나중 된 자, 곧 율법 자랑하는 유대인과 늦게 들어온 이방인의 구도 — 이 마태 공동체의 자기 이해와 연결된다.
셋째 수난 예고
42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가시며 가르쳐 말씀하셨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들이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능욕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43 그리고 사흘 만에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44 그러나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감추어졌다.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두 자리
45 그때 세베대(Zebedee · ㉸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James)와 요한(John)이 나아왔다. 마태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함께 와서 무엇을 청하려 했다고 적혀 있다.
46 그들이 말했다.
“선생이여,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우리에게 행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47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주의 영광 안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소서.”
48 예수가 대답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한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49 “할 수 있습니다.”
50 예수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것이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우편과 좌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다.”
51 열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 대해 분히 여겼다.
52 예수가 그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통치자들이 그들을 다스리고, 그 큰 자들이 권세를 부리는 것을 너희가 안다.
53 너희 가운데서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 크게 되려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려는 자는 모두의 종이 되어야 한다.
54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
마태 20:20은 청구를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입에 둔다(살로메로 알려진 인물). 마가 10:35는 두 아들이 직접 청한다. 아람어 원전에 가까운 마가가 더 이른 형태고, 마태가 두 사도의 체면을 일부 살리려 어머니를 등장시킨 편집으로 학자 다수가 본다. 결과는 어느 쪽이든 같다 — 다른 열 제자가 분개했다. 곧 이어지는 예수의 종 됨 가르침이 그 자리에서 직접 응답으로 나왔다.
여리고의 맹인
55 그들이 여리고(Jericho · ㉸ 예리코)에 이르러 떠나갈 때에, 예수와 제자들과 큰 무리가 함께 떠났다.
56 길가에 한 맹인 거지가 앉아 있었다. 디매오(Timaeus)의 아들 바디매오(Bartimaeus · ㉸ 바르티매오)였다.
57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외쳤다.
“다윗(David)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58 많은 사람이 그를 잠잠하라 꾸짖었으나 그가 더욱 크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59 예수가 머무르시고 명하셨다.
“그를 부르라.”
사람들이 맹인을 불렀다.
“안심하라.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60 그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로 갔다.
61 예수가 물으셨다.
“내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랍오니여, 보기를 원합니다.”
62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63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다.
여리고 맹인 사건의 위치 차이 — 마태 20:29와 마가 10:46은 “여리고에서 나오실 때”로, 누가 18:35는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로 적는다. 1세기 여리고는 두 도시였다 — 구 여리고(여호수아 시대 도시 유적, BC 7천년경 여호수아 지역의 텔 에스 술탄)와 신 여리고(헤롯 대왕이 BC 1세기 후반 와디 켈트 입구에 건설한 겨울 궁전 도시). 두 도시 사이에 광장이 있었다. F.F. 브루스(『복음서의 신뢰성』 1943)와 D.A. 카슨은 예수가 구 여리고를 나와 신 여리고로 가는 사이에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본다. 마태는 두 맹인을, 마가와 누가는 한 맹인만 적는다. 마가만 이름(바디매오)을 보존했다. 마가가 이름을 적는 것은 드문 일이라 — 마가복음 안에서 치유 받은 사람 가운데 이름이 나오는 유일한 경우다 — 본 사건의 역사적 무게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학자들은 본다.
삭개오
64 예수가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다.
65 거기 삭개오(Zacchaeus · ㉸ 자케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리장이며 부자였다.
66 그가 예수를 보려고 했으나 키가 작고 무리가 많아 볼 수가 없었다.
67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가 그리로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68 예수가 그곳에 이르러 쳐다보시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9 그가 급히 내려와 즐거이 영접했다.
70 모든 사람이 보고 수군거렸다.
“그가 죄인의 집에 머물러 들어갔다.”
71 삭개오가 서서 주께 말했다.
“주여,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았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72 예수가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Abraham)의 아들이다.
73 인자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
삭개오(자카이 — זַכַּי) — 히브리어 어근 자크(זַךְ) “순결한, 깨끗한”에서 왔다. 이름의 뜻이 그의 직업과 정반대였다는 점이 누가의 이야기 구도다. 세리장(아르키텔로네스 — ἀρχιτελώνης)은 일반 세리들 위에 있는 지역 우두머리. 1세기 로마 세금 청부(publicani) 시스템에서 청부업자가 미리 세금을 로마에 납부한 뒤 지역에서 거두어 차익을 챙겼다. 여리고는 발삼나무 향유와 종려 열매 무역 중심지로 세관 요지였다. 삭개오의 부는 그 자리에서 나왔다. 출애굽 22:1과 민수기 5:7이 도둑질에 대해 두 배~다섯 배 보상을 명한다. 삭개오의 네 배 보상은 율법 한도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누가는 18장 부자 청년의 거부 직후에 19장 삭개오의 자발적 헌금을 둠으로써 둘을 짝짓는다.
므나
74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예수가 한 비유를 더 말씀하셨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무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 나타날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75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76 그 종 열 명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77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절을 뒤로 보내어 말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78 그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불렀다.
79 첫째가 와서 말했다. ‘주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80 둘째가 와서 말했다. ‘주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습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81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주여,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습니다. 수건에 싸 두었습니다.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둡니다.’
82 주인이 말했다.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리라. 그럴 줄을 알았으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찾았을 것이다.’
83 곁에 선 자들에게 말했다.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가진 자에게 주라.’
‘주여, 그에게는 이미 열 므나가 있습니다.’
8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가진 자에게는 더 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그 가진 것까지 빼앗을 것이다.
85 또 내 왕 됨을 원하지 않던 그 원수들을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누가의 므나 비유와 마태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평행한 비유지만 별개 사건으로 본다 — 마태는 종말 강화(감람산 위) 안에 두고, 누가는 여리고 여행길 끝에 둔다. 시점이 다르고, 액수가 다르고(므나는 약 100드라크마, 달란트는 약 6,000드라크마), 종 수도 다르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예수의 비유들』 1947)는 하나의 원형이 마태와 누가의 별도 전승에서 변형됐을 가능성을 본다. 누가의 “왕위 받으러 먼 나라로” 부분은 BC 4년 헤롯 대왕 사망 후 그의 아들 아켈라오스가 로마에 가서 왕위 인준을 받으려 하다가 유대 사절단의 반대를 받은 사건과 정황이 맞물린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300-314). 누가의 청중에게는 이 정황이 즉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장은 마태 19:1-20:34, 누가 18:15-19:27, 마가 10:1-52를 통합했다. 부자 청년·이혼 가르침은 셋 모두에, 여리고 맹인은 셋 모두에 있다. 포도원 품꾼은 마태 고유, 삭개오와 므나 비유는 누가 고유다. 부자 청년의 “선한 선생” 호칭에서 마태(19:16-17)와 마가·누가의 본문이 약간 다르다. 마태는 “내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묻느냐”로, 마가·누가는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로 옮긴다. 학자 다수는 마가가 더 이른 형태고 마태가 후대 그리스도론적 우려에서 표현을 부드럽게 한 편집으로 본다.
다음 장 — 베다니에서 향유 한 옥합이 깨진다. 다음 날 어린 나귀가 풀려 끌려온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