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복음서 12장 산상수훈

산에 올라

1 그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다.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2 그가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예수가 앉는다. 1세기 랍비 전통에서 가르치는 자는 앉는다. 일어선 자는 듣는 자다. 제자들이 먼저 가까이 온다 —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이 일차 청중이다.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 산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고른 것은 학자들이 일치하는 해석이다. 데일 앨리슨은 『새 모세 마태』(1993)에서 마태복음 전체가 모세의 다섯 책에 평행하는 다섯 강화로 짜여 있음을 보였다. 산상수훈은 그 첫 강화이자 새 시내 산이다.


팔복

3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이어받을 것이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8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9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로 인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너희는 복이 있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너희보다 앞선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다.”

팔복(八福 — Beatitudes)에서 여덟 번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한 자들은 복이 있다. ~하리라.” 첫 번째(3절)와 마지막(10절)은 같은 결론이다 —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머지 여섯은 미래형이다. 복은 지금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가난하고 슬프고 박해받는 자들이 복 받았다고 선언된다. 격언이 아니라 선언이다.

누가복음 6:20-26의 평지수훈은 다른 형태로 전한다. 누가는 “가난한 자”라 하고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자”라 한다. 누가는 4복에 4화(저주)가 짝을 이룬다 — “화 있도다,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마태에는 화의 짝이 없다. W.D. 데이비스(『산상설교의 배경』 1964)는 같은 사건의 두 보고로 본다. 마태가 흩어져 있던 어록들을 한 강화로 묶고 평지를 산으로 옮겼다는 가설이 다수설이다. 다른 사건이라는 입장도 있다 — D.A. 카슨 등은 갈릴리 사역에서 비슷한 가르침을 여러 차례 반복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소금과 빛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더 이상 쓸 데가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길 수 없다.

15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는다. 등경 위에 두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준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라.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율법을 완성하러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중에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이를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크다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섯 대조 — 옛 사람들에게 들었으나

21 “옛 사람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화내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 형제에게 ‘라가(쓸모없는 자)‘라고 하는 자는 공의회 앞에 설 것이다. ‘미련한 자’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가졌음이 생각나거든,

24 거기서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 그런 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25 “옛 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6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것이다.

27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빼어 던져 버려라.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지체를 잃는 것이 낫다.”

28 “또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써 주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면 그녀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아내를 취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0 “또 옛 사람들에게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주께 한 맹세는 지키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31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네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아라.

32 오직 너희 말은 ‘예’면 ‘예’, ‘아니오’면 ‘아니오’로 하라. 이를 넘어서는 것은 악에서 나온다.”

33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35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도 주어라.

36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를 가라.

37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를 외면하지 말아라.”

38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40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신다.

41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 세리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42 너희가 형제들에게만 인사하면 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렇게 한다.

43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섯 대조의 구조 — “옛 사람들에게 들었다(에레테 — ἐρρέθη),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에고 데 레고 휘민).” 이것은 율법을 폐기하는 선언이 아니다. 율법의 외적 준수에서 내면의 동기까지 파고드는 심화다. 살인하지 않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분노의 뿌리를 다스려야 한다.

‘옛 사람들에게 들었다’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두 입장이 있다. 모세 율법 자체설 — 16세기 소키누스(반삼위일체 신학자)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채택. 예수가 토라 자체를 갱신했다는 입장이다. 랍비 전통설요아힘 예레미아스(『예수의 메시지』 1971), 데이비드 도브(『랍비 유대교와 신약』 1956), W.D. 데이비스(『산상설교의 배경』 1964)가 정식 변호. ‘에레테’는 랍비 인용 도입구의 셈어 어법(쉐넨 — שנן)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모세가 아니라 당대 랍비들의 표층 해석을 비판한다는 독법이다. 사해문서 4QMMT의 율법 해석 논쟁이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 추가 근거다.

‘눈은 눈으로’ — 출애굽기 21:24의 탈리오 법(lex talionis)이다. 이 법은 본래 보복의 상한선을 정한 제한 원칙이었다. 눈 하나를 잃었으면 최대 눈 하나만 가져올 수 있다. 무제한 보복을 막기 위한 법이었다. 예수는 그 제한 원칙을 한 단계 더 밀어붙여 보복 자체를 거두라 한다.


보이지 않게 — 의의 실천

44 “사람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게 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로부터 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45 그러므로 구제할 때 위선자들이 회당과 거리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하듯이 나팔을 불지 말아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46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너의 구제가 은밀하게 되도록. 은밀히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이다.

47 또 기도할 때 위선자들과 같이 하지 말아라. 그들은 회당과 큰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48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이다.

49 또 기도할 때 이방인들과 같이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심을 얻는 줄 안다.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 줄 알고 계신다.

5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51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52 “또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처럼 슬픈 모양을 짓지 말아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 얼굴을 흉하게 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53 너는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보이도록.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이다.”

주기도문 —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다. 일곱 청원으로 구성된다. 처음 셋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청원이고 나머지 넷은 사람의 필요에 대한 청원이다. 누가복음 11장에 더 짧은 형태가 있다. 학자들은 둘이 같은 기도의 두 전승이라고 본다. 마태가 더 의례적인 형식을 보존했고, 누가가 더 짧고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보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물과 근심

54 “너희를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

55 너희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도둑질하지도 못한다.

56 네 보물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을 것이다.

57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58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하게 여기고 다른 쪽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

5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중하지 않으냐?

60 공중의 새를 보아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지도 않는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기르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않으냐?

61 너희 가운데 누가 염려하여 자기 키를 한 자라도 더 자라게 할 수 있느냐?

62 또 너희가 어찌 옷을 위해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라.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다.

6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솔로몬(Solomon)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못 하였다.

6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믿음이 작은 자들아.

65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함을 아신다.

66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67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심판과 진주와 좁은 문

68 “비판하지 말아라. 그래야 너희가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69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받을 것이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 받을 것이다.

70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71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에서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뺄 수 있을 것이다.

72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것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을까 한다.

7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74 너희 가운데 누가 자기 아들이 빵을 달라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또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5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시겠느냐?

76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다.

77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78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찾는 자가 적다.

79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다.

80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81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82 나에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두 집

83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84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85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86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니, 곧 무너졌다. 그 무너짐이 컸다.”

87 예수가 이 말씀을 마치셨다.

무리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그가 권위 있는 자처럼 가르치셨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와 누가 두 복음서에는 마가에 없는 공통 자료가 있다. 19세기 학자 크리스티안 헤르만 바이세(1838)가 처음으로 이 공통 자료의 존재를 가설로 세웠고, 1907년 독일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이 그 자료를 본격적으로 재구성했다. 학자들은 이 자료를 ‘Q’라 부른다 — 독일어 ‘Quelle(샘, 자료)‘의 첫 글자다. 산상수훈 대부분이 Q에서 왔다고 본다.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국제 Q 프로젝트(International Q Project)는 학자 40여 명이 참여해 Q의 본문을 줄 단위로 재구성했다.

캐나다 학자 존 클로펜보그는 『Q의 형성』(1987)에서 Q를 세 층으로 구분했다. Q1은 지혜 어록(산상수훈의 핵심), Q2는 종말론적 심판 어록, Q3는 시험 이야기를 포함한 가장 후대 층이다. 클로펜보그의 층위 구분은 가설이지만 Q 연구의 표준 작업틀이 되었다.

마태의 산상수훈과 누가의 평지수훈은 거의 같은 자료를 다르게 배치한다. 마태는 5장-7장에 걸쳐 한 큰 강화로 묶었다. 누가는 비슷한 핵심을 6:17-49에 짧게 두고, 나머지를 11장(주기도문, 구하라), 12장(보물과 근심), 13장(좁은 문)에 흩어 두었다. 어느 쪽이 원형에 가까운가에 대해 학자들의 합의는 없다. 다만 마태가 자료를 모아 큰 강화로 짜낸 편집이라는 견해가 다수설이다(W.D. 데이비스 1964, 데일 앨리슨 1988-97).

이 장은 마태 5장-7장과 누가 6:17-49, 11:1-13, 12:22-34의 평행 부분을 통합했다. 마태의 골격을 따르되 누가의 짧고 직설적인 어투에서 도움을 받았다. 산상수훈의 모든 단락을 다 포함하지는 않았다. 핵심을 살리고 반복은 줄였다. 산상수훈은 한 번의 강화가 아니라 예수의 갈릴리 사역 동안 반복되어 굳어진 가르침의 정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다수의 학자가 받아들이는 견해다.

다음 장 — 산에서 내려와 성으로 들어간다. 한 백부장의 종이 죽어 가고, 풍랑이 호수를 덮치고, 군대 귀신이 무덤 사이에서 나온다.